스포츠드라이빙을 취미로 한다는건 일반적인 취미활동과 차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차는 누구나 운전하는 일상영역인데 뭐하러 몰입하는거니?" 라는 질문을 받을때가 있지요.

골프나 스키, 등산등 다양한 레저스포츠는 매니아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스포츠드라이빙은 도로를 달리는 모든 드라이버와 탑승자가 관객일 수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스파이더(컨버터블)의 존재감은 단지, 낭만적인 에메랄드빛 해안을 달리거나 햇살이 쏟아지는

와인딩로드를 달릴때만 빛나는게 아니라.. 도심과 도시고속로를 달리며 많은 차들 사이를 가로지를때

더 큰 부러움을 사게 됩니다.  보통 운전하는 드라이버의 얼굴 부분은 그늘이 드리워져 어둡게

보이지만, 선루프가 있는 차는 맑은날 드라이버 얼굴에 햇살이 드리워져 낭만적인 인상을 주며,

컨버터블의 탑을 열어 제끼면 드라이버와 탑승자의 얼굴과 어깨위에 드리워진 햇살에 의해,

보는이로 하여금 이국의 낭만을 듬뿍 느끼게 해줍니다.

 

여기에 고성능 파워트레인으로 무장한 스포츠카라면 더더욱, 낮게 깔린 차체로  차들 사이를

빠른속도로 누비며 달리는 모습이, 드라이버 자신뿐 아니라 보는이로 하여금 일탈의 대리만족을

선사하게 될겁니다.  아우디 R8 스파이더는 이러한 드라이빙 매니아의 여러가지 요구사항을

90% 이상 충족시켜주는 드림카로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034-1.jpg

 

R8 스파이더는 기존 쿠페바디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이드 투톤판넬(사이드블레이드) 없는 디자인이지만,

전체비례와 강한 프론트 마스크에 의해, 금방 정체성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V10 5204cc 엔진의 위용을 즐길 수 있는 리어글라스가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낭만적인 소프트탑이

있으니 충분히 용서 됩니다.  미드쉽 세팅을 위해 길어진 휠베이스에 따른 사이드뷰가 지루해 보여 디자인

포커스로 적용된, 투톤판넬이 없어 다소 R8 의 아이덴티티가 덜 어필되는 면은 분명히 있어 보이네요.

 

 

021-1.jpg

 

5200cc V10 에 525 마력의 폭발적인 파워를 뿜어내는 R8 의 프론트 뷰.

아우디 패밀리룩을 그대로 반영했지만, 에일리언..다스베이더를 연상시키는 날카롭고 강인한 눈매와

부드러움을 잃지않는 바디의 곡선라인.. 클래시컬한 전면그릴에서 뿜어져 나오는 럭셔리하면서도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가, 한눈에 R8의 잠재성능을 짐작케 합니다.

 

아우디의 대형그릴 디자인은 일종의 '발명'에 비견될 정도로 21세기 들어 최고의 디자인 잇슈가 되었다 봅니다.

리트랙터블램프나 슬림디자인으로 스포츠카의 속도감과 날렵함을 강조하는데 치우쳤던 20세기 말 디자인

공통점에서 벗어나, 공력을 유지하면서 냉각효율을 증대하고, 앞서 달리는 차의 룸미러에 걸치면 위압감을

줄 수 있는 강인한 마스크로 변신하는데, 아우디가 첨단 잇슈를 제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023-1.jpg

 

대형그릴의 대명사였던 벤츠마저도 생각 못했던 부분이, 범퍼부분까지 그릴면적에 포함시켜 아래의 인테이크

부분과 위의 그릴부분을 하나로 묶었다는 점.  이 디자인은 폭스바겐과 랜서로 대표되는 미쓰비씨,  크라이슬러

300c 등에도 전염되었고, 현대도 육각그릴 형태로 수용하게 됩니다.

 

스포츠카에 전면그릴은 금기 시 되던 디자인인데,  경량 스포츠카 아우디TT 에서 시작되어 골프 5세대 모델에서

노골화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머스탱 등 복고 디자인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스포티한 차종에 점점 적용되었다

봐지는데요.. 원조는 역시 애스턴마틴이 아닌가 싶네요.  대형 그릴을 장착한 스포츠카는 전통의 애스턴마틴 디자인

을 연상시키는 노스탤지어를 오버랩 시킨다는 면이 매력으로 작용하는것 같습니다.

 

아뭏든 엔진이 뒤에 있는 미드쉽 설정에서 대형 전면그릴의 의미는 냉각 효율성 보다는 디자인 컨셉에 치우쳐

있는게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렉서스 IS 신형 디자인에서도 '아우토반에서의 카리스마' 에 신경을 곤두세우는걸 보면,

최근의 세계적인 프론트 디자인 추세는 당분간 공통잇슈에 충실할 듯 싶네요.

 

 

 026-1.jpg

 

통상적으로 RPM 계기반이 우측에 있는게 스포츠카의 기본설정이고 보면 조금 의아하지만, R8 의 인스트루먼트

판넬은 주변덮개와 총체적인 디자인 설정이, 집중도가 매우좋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스티어링의 스포크 윗부분으로

쏙 들어오도록 감싼 라운드 형태의 카본부분 형태와 삼각 타원형 형태의 속도계, 타코미터가 시선을 유도하네요.

R8의 최고시속은 316km 이지만, 350 까지 표기된 속도계에서 수퍼카의 잠재성능에 숙연함을 갖게 합니다.

 

 

 

 027-1.jpg

 

싱글클러치 타잎의  R트로닉 미션은  기어놉이 항상 중앙에 위치해 있고, 좌로 한번 밀었다 놓으면 오토모드,

제자리에서 위로밀면 업시프트, 아래로는 다운시프트 됩니다.  주행 중 패들시프트를 당기면 바로 스포츠모드로

전환되고, 신호대기 시에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삑` 소리가 나면서 자동으로 뉴트럴 상태가 됩니다.

아마도 R 트로닉 싱글클러치 오토미션의 과열을 막기 위한 배려로 보이네요. V8 과 이전의 R8 에서도 있었던

설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V10 5200cc 엔진의 감성과 배기음은 매우 경쾌합니다.

R8 을 전면과 후면에서 보면 굉장히 거대하고 넙적해 보이는데,  콕핏에 앉아 액셀페달을 밟아보면  마치

소형 스포츠카를 타고있는 듯한 경쾌한 느낌을 받습니다.  드라이버를 압도하는 화려한 인테리어가 아니고,

집중도를 높여주는 심플한 디자인, 5200 cc 라는게 믿겨지지 않는 라이트한 엔진 반응이, '내 손안에 있는 녀석'

이란 자신감을 선사합니다.

 

 

 029-1.jpg

 

올림픽대로를 타고 교외로 나갈까 하다 미사리서 유턴해 도심고속로를 타기로 했습니다.

200km 언저리까지밖에는 밟을 수 없겠지만, 수퍼카의 이상적인 성능보다 데일리카로서의 매력에 집중해

달려보기로 한거죠.  익숙한 강변로에서는 더욱 녀석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을거 같았습니다.

 

액셀페달은 여느 유럽차와 같이 단단합니다.  수퍼 스포츠카라는 위화감이 없을정도로  적당한 답력에

출발 시엔 점진적인 가속으로 처음 타는 드라이버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오토모드에서는  부드러운

출발과 변속감을 주지만, 수동모드로 전환하면 의도적인 듯한 변속 충격이 작용하고,  액티브한 감성으로

전환됩니다.  중간 알피엠부터 40kg 이 넘는 두터운 토크로 리니어하게 올라가는 가속감은 크게 위화감이

없어, 두려움을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4000 알피엠 정도부터는 콰트로의 4륜 그립이 받쳐줘서인지 전방

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안정적이고 중간의 급격한 토크변화가 없어 어지간히 강하게 페달을 밟아도

스티어링을 잡은 손에 불필요한 긴장감을 주지 않습니다.

 

180 정도의 고속코너링에서 4륜의 움직임은 매우 섬세해서, 4륜 구동 특유의 언더에서 급격히 오버로 변환되는

느낌이 극히 자제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미드쉽의 특성이라 해야할 지 콰트로의 장점이라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뉴트럴한 고속 코너링의 느낌이, 포르쉐나 다른 스포츠모델에서 느낄 수 있는 양어깨를 탁탁 쳐주는 다이나믹한 느낌이

없이, 너무나 편안한 감성으로 다가옵니다.

스파이더 모델의 시트는 쿠페바디 시트에 비해 굉장히 소프트코어한 디자인이지만, 급격한 R 의 코너가 아닌 이상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 나갈 수 있을 듯한 안정감을 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Eag3U-O231U

 

용량이 충분한 8피스톤 대용량 캘리퍼에 의한 브레이킹 답력은 1.7톤의 만만치 않은 차체를 가볍게 제어합니다.

서킷이 아니라 반복 브레이킹 테스트는 할 수 없었지만, 제네시스 쿠페의 4피스톤과 비교하면 답력 반응속도나

답력 감성이 약 1.4 배 정도 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캡포워딩 된 캐노피 위치로 인해 시야는 일반 스포츠카에 비해 양호한(아주 넉넉하진 않은) 편이고, 0도 정도의

추운 날씨에 오픈에어링 임에도 잘 만들어진 공력디자인 덕에 사이드 윈도를 올린 상태에서 그리 춥지 않습니다.

시트 포지션은 낮은 편이지만, 다른차들 하고 나란히 달리는 중에도 시선높이가 아래로 깔린 듯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로터스 등의 극단적인 낮은 포지션이 아니고, 드라이빙 자세 또한 지나치게 낮게 누운 느낌이 아니여서

편안합니다. 시트의 질감은 지나치게 미끄럽지 않아 약간의 다이나믹한 움직임에도 몸이 미끄러지는 일이 없습니다.

써스펜션은 단단하지만, 텐더스프링이 작용하는 듯 작은 돌기는 걸러주는 느낌이 듭니다.


스파이더 오픈바디임에도 강력한 강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복합적인 거친 노면에서는 산만한 흔들림이

느껴집니다. 극단의 UHP 타이어임에도 노면 니블링이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스티어링은 흔들리지만 4륜의

적절한 구동제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좋지않은 노면에서의 급가속에서도 불안한 느낌이 없습니다.

후륜구동의 앞이 퉁퉁 튀는 듯한 느낌이 없어, 가속 시 스티어링을 잡은 손이 긴장되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매혹적인 R8 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면모도 돋보이지만, 역시 백미는 중고음의 배기사운드..

페라리의 칼칼한 포효음과, 카레라 GT 의 앙칼진 사운드와는 완전히 차별되는 절제된 음색이지만, 마치 발성연습

중인 테너의 음색처럼 맑고 옹골찬 배기음이 액셀페달을 밟을때마다 양귀를 즐겁게 해줍니다.

 

 

8000 알피엠에서 뿜어내는 525 마력을 통째로 느껴보긴 어려웠지만, 한시간 여 달리는 동안 R8 의 파워감성은

젠쿱의 300 마력에 딱 1.5 배 정도 더 강하다는 인상이여서, 의외로 위화감을 주지 않으며 고출력에 어느정도

적응한 드라이버라면 컨트롤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 보입니다.

 

 

BMW 나 벤츠의 여느 스포츠세단과 연장선상에 있는 편안한 질감과 스포티감성이고 ' 이정도면 데일리카로서도

전혀 불편함이 없겠다.' 는 수준입니다. 타이어를 비벼대는 서킷 수준의 감성은 느껴보지 못해 정확히 판단 할 수

없지만, 드라이버에게.. 차에 이끌리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듯 재미있는 드라이빙을

친절하게 선사하는 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차인 가야르도나 람보르기니의 우월함을 뽐내는 감성이

아니라, 주행중인 다른차의 사이를 다소 공격적으로 치고 지나가도 발견하는 운전자가 흐믓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수퍼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퍼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 3억이 넘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와 비등하게 달리고, 밀리지 않는 고성능을 품고 있으면서 2억 초반의

합리적인(?) 가격대로 도심을 누빌 수 있는 '미워할 수 없는 수퍼카'가 바로 R8 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033-1.jpg 

 

 

깜장독수리..

 

 

 

 

profile

사람을 가장닮은 매체인 자동차를 통해,

사람과 자연, 이성과 감성, 문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