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작성한 시승기를 옮겨왔습니다. 말이 짧은 것을 너그럽게 봐주세요. ^^

 

 20여년 전에 마쯔다의 유노스 로드스터에서 시작된 스포츠카의 부활을 서두로 한동안 경량 스포츠카의 열풍이 불었었다. 많은 자동차 매니아의 마음을 설레게 한 이니셜 디에서는 한창 버블 경제로 인해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의 스포츠카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는 소개되지 않은 혼다의 NSX가 아쉽기는 하지만 공도에서 재미나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 공도에서 빠르게 달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자동차를 이기는 AE-86이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제원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사실 무시무시한 머신이었다. 그란 투리스모 5를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1000kg가 안나가는 무게와 200마력이 넘는 고회전 엔진을 놓고 보았을 때, S2000을 이기는 것 또한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오랫동안 대중이 선호하는 무난한 자동차 만들기에만 전념한 도요타가 오랜만에 내놓은 FT-86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의 86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차가 나오자마자 유투브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면 86의 핸들링에 연신 감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반응과 아울러 많은 기대를 했을 것이고, 그만큼 실망도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요새의 자동차 트랜드를 살펴보면 Gran Turismo가 대세라고 말하고 싶다. 좀더 고급스럽고 편하면서 스포티한 주행을 즐기고 싶은 대중의 욕구에 부흥하여 자동차 메이커는 점점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를 갖춘 자동차를 만들게 되었고, 그 결과 차는 커지고 무거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골프가 적절한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기술의 향상으로 인해 과거보다 더 안정감있고 빨라졌다. 하지만 운전의 즐거움도 그만큼 커졌을까?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흐름은 독일을 따라가고 있다. 독일차의 특징은 완성도 높은 고급성과 어느 누가 몰아도 안전할 수 있는 정교한 세팅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주행을 하는 많은 독일차에서 운전자가 잡을 수 없는 위험한 순간을 차가 잡아주는 순간을 많이 목격했다.

 

 FT-86 시승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요새의 자동차가 자동차라는 기계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장난감이 되었고, FT-86은 바로 이 요소를 대중에게 어필하고 싶은 자동차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이 차를 비슷한 가격대의 제네시스 쿠페와 같은 자동차와 비교하는 것은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는 당연히 질 수 밖에 없다. 솔직히 필자도 처음 이 차의 성능을 데이터 상으로 놓고 보았을 때에는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거나, 성능이 생각 외로 아쉬울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시승한 자동차는 자동 미션이 장착되었고 주행 거리가 8천 킬로 정도 되는 시승차였다. 주행 코스는 남산 소월길과 그 주변 시가지였다. 와인딩 중에 VDC는 완전히 Off했고, 수동모드로 두었다.

 

 일단 엔진의 경우 5천 rpm부터 토크가 살아나기 시작하는 고회전 엔진이라 저회전에서는 맛깔나는 엔진의 출력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회전수가 높아질수록 엔진 소리가 강조되는 편이라 6천 rpm이 넘어가면 동승자와의 나긋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혼다의 V-tec엔진처럼 부드러운 질감은 아니지만 만족스러운 편이다.

 

 자동 미션의 경우 스포츠 모드에서 변속은 완전히 운전자가 통제할 수 있다. 골프의 DSG의 경우 S로 두면 최대한 고회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변속이 이루어지지만, 86의 경우 운전자가 변속을 하지 않으면 레드존을 계속 치는 한이 있어도 변속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현대의 8단 미션(제네시스 쿠페, 세단)과 달리, 조금이라도 회전 한계 안에 있으면 바로바로 다운 쉬프트를 허용한다. 다시 말해 3단에서 2단으로 변속 시에 2단에서 7천 rpm 근처가 될지라도 레드존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변속을 허용한다. 변속 속도는 듀얼 클러치보다는 당연히 느리지만 현대 8단 변속기보다는 빠르며, 회전 보정이 더 양호하여 울렁이는 느낌이 거의 없다. 물론 듀얼 클러치와 비교하면 당연히 떨어지는 부분이다.

 

 기어비는 수동은 몰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자동의 경우 2단이 약간 느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보통은 재가속에서 1단을 넣지 않지만 포천 44고개와 같은 경사가 심한 깊은 헤어핀의 업힐에서는 1단으로 변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이것은 낮은 회전수에서 토크가 낮기 때문에 느껴지는 부분이다.

 

 핸들은 살짝 무겁고 노면의 상황을 많이 전달해 주는 편이다. 제네시스 쿠페처럼 앞바퀴가 떠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둥실한 느낌도 없고, 아우디 A5와 같은 전자식처럼 약간 이질적인 느낌도 없다. 하지만 논 파워 스티어링의 로터스만큼 직감적이진 않다. 최대한 전자 장비의 제어를 억제한 느낌이다.

 

 브레이크의 답력은 일정하고 무거워서 정밀한 제동력 조절이 가능하다. 유로 시빅 타입 알이나 S2000과 비슷한 느낌이다. 현대나 폭스바겐의 브레이크에 익숙한 사람에겐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디스크의 용량이 다소 작다고 생각하지만 순정 타이어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이그립 타이어 장착 시에 하드코어 주행을 한다면 브레이크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서스펜션은 기본적으로 스트로크가 짧고 감쇄력이 약간 높으며 스프링은 다소 부드러운 세팅인데, 더 뉴 제네시스 쿠페보다는 다소 초반 반응이 부드럽지만 롤링은 억제되어 있다. 공도에서 타기에는 적합해 보이나 서킷에서는 취향에 따라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코너링 시의 서스펜션의 반응은 S2000보다 덜 신경질적이고 일정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약간은 부드러운 세팅이지만 차가 가볍기 때문에 좀더 타이트한 느낌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골프 GTI 5세대 (6세대 GTI는 안몰아봤음)보다 한 수 위의 세팅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차대에서 느껴지는 강성은 차가 짧고 지붕이 있어서 한덩어리를 끌고 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로우 그립 타이어를 장착했기 때문에 좀더 강한 횡G에서 어떤 느낌이 들지는 모르겠다. 요새 나오는 차가 대체로 강성이 높은 편이기 떄문에 여기에서 불만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다.

 

 코너링 시에 차의 하중이 운전자 쪽 아래로 몰려 있어서 롤링이 상대적으로 억제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S2000이나 마쯔다 미야타(3세대 로드스터)보다도 더 낮은 무게 중심이 느껴지며 S2000보다는 yaw의 발생이 좀더 천천히 일정하게 발생하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언더스티어의 성향을 가지면서 약간만 핸들을 더 말거나 브레이크를 물거나 스로틀을 열면서 yaw를 만들어 나가기 용이한 편이다. 유투브의 시승자들이 극찬하는 부분이 아마도 이 점이 다른 차보다 재미있고 쉽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오디오의 음질은 그저 그랬고, 버킷 시트의 착석감은 만족스러웠다. 약간 굵은 핸들 또한 손에 잘 감기는 편이었고, 센터페시아의 시인성과 조종성도 단순해서 조작이 용이하다.

 

 이 차를 빠른 자동차로 만드려면 타이어와 브레이크, 쇼바 정도는 튜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네시스 쿠페와 같은 차와 비교하면서 이 차의 가치에 대해서 회의를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요타에서 순정으로 낀 로우 그립 타이어와 거기에 맞춘 하체 세팅은 남들보다 빠르게가 아닌 남들보다 즐겁게 타라고 요구하고 있다. 좀더 부담없이 일상에서 차를 던져가면서 몰아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해보자. 도요타는 86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를 바란다.

 

 물론 저렴하지 않은 가격과 수입차라는 사후 관리 부담이 구입 의욕을 감소시킨다. 게다가 이 차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요새의 기술을 고려하면 그렇게 남다르지도 않다. 성능만 놓고 보면 13년 전에 나온 S2000이 코웃음을 칠 것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고 싶다면 이 차는 과감히 관심 목록에서 지우는 편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