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달리기에 집중한 차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987 복스터S로 이른 아침 미시령 와인딩을 신나게 달린 후론 언제나 포르쉐를 꿈꾸고 있죠. 
태생 자체가 스포츠카인데다 소위 조져도 차가 다 받아내는 최고의 엔지니어링, 보태서 톱 오픈까지...! 
제 기준엔 팔방미인인 차입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기본이 평범하더라도 몇 가지 튜닝을 더해 만든 GTI나 M3 같은 스포츠 모델도 좋습니다. 
네. 결론은 달리는 차를 좋아하는 거죠. 

한편 조금 부끄럽지만 아우디 S8을 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오래전 영화 ‘로닌’에서 강하고 튼튼한 차를 요구한 킬러?테러범? or 주인공들에게 준비된 차가 S8이었고 검정색 보디에 큰 덩치를 갖고도 엄청나게 빨리, 자알 달렸던 그 차. 
주인공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까먹었지만 S8의 기억만은 생생한걸 보면 인상이 강하긴 했나봅니다. ^^
그러고보니 트랜스포터에서도 나왔었네요. 

달리는 차를 좋아하는데다 영화에서 만났던 고성능 S8을 처음 만나는 날. 
스포츠카 만큼은 아니지만 솔찍히 많이 설렜습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S8 시승 한 달 정도 전에 RS5를 탔고 S8과 함께 준비된 차들이 새로 런칭한 S6, S7이라 비교하기 좋았습니다. 

RS5는 아우디 고성능 라인업 중 젤 산뜻한 스포츠모델의 느낌이었습니다. 
S6는 회전 상승이 빠르고 명쾌했고 S7은 대체로 S6와 달리는 품새가 닮았습니다. 
반면 S8은 아주 차분하고 조용하며 고급스러워 “이거 S 맞아?”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S8을 타다 S6나 S7 실내로 들어서면 HG와 MD 수준 정도의 격차가 느껴지거든요.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S8이 제일 빨랐다는 것. 제일 재밌는 차는 아니었지만요. 
대체로 모델명 뒤에 붙는 숫자가 낮아질수록 재밌고... 대신 높을수록 빠르긴 합니다. 

신형의 가장 큰 변화는 엔진입니다. 
V10 5.2L 엔진을 얹었던 구형 대비 배기량을 1.2리터나 썰어내 V8 4.0리터 엔진으로 만들고 여기에 터빈을 두 개 더해 520마력을 냅니다. 
구형 S8보다 배기량은 줄었지만 출력은 70마력 오른거죠. 
함께 팔리는 S6, S7과 기본은 같고 출력만 다릅니다. 얘네 둘 출력은 420마력이고 7단 듀얼클러치를 쓰지요. 

66kg.m의 토크를 받아낼 듀얼클러치가 없었는지 S8은 아래급과 달리 보편적인 토크컨버터 방식의 8단 자동변속기를 씁니다. 
변속 속도나 직결감은 S6과 7보다 분명 떨어지지만 시승 자리에 이 차들이 없었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 것 같습니다. 
변속속도도 정말 빠르고 직결감은 예술에 스포츠모드로 두고 타면 약간의 변속충격까지 살려줘서 완전 끝내줍니다. 
이러니 수동차들의 자리가 좁아졌겠죠...(그치만 전 10년째 수동차만 탑니다^^)

새 V8 엔진은 예전 미국 차들이 많이 썼던 실린더 몇 개를 죽이는 기술을 써서 정속주행 같은 부하가 적은 상황에선 4기통만으로 주행하기도 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적은 에미션과 좋은 연비를 위한 시스템이죠. 
다운사이징를 기조로한 친환경은 고성능차에도 예외가 될 수 없으니까요. 
(*4기통으로 주행할 때 계기판에 ‘4기통 모드’ 표시됨)

연비 얘기가 나온 김에 먼저 하자면 시승하는 동안 계기판에 찍힌 연비는 6.7km/l 이었습니다(공인연비는 7.7km/l). 
좋고 나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테니 수치만 적겠습니다. 

앞서 얘기한 4기통 모드로 달리면 10km/l 이상도 쉽게 찍을 수 있기는 한데 문제는 4기통 모드가 잘 안들어옵니다... ㅋㅋ 웬만큼 깃털 악셀링을 하지 않는 이상은요.

경험상 400마력대와 500마력대는 느낌이 다릅니다. 
400마력 까진 '조금 더 달려봐!'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500마력 넘는 차로 풀액셀을 하면 어쩔 땐 무서운 느낌도 들거든요. 
아무래도 5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심리적인 것도 있겠지만 같은 브랜드의 450마력인 RS5나 420마력의 S6같은 차로 아무리 밟아봐야 ‘그냥 잘 나가는군...’ 싶었던 것과 달리 520마력 S8은요... 

‘날라다닙니다.’

연동 신호를 받을 수 있는 늦은 밤 성남대로. 
이 시간이면 구미동에서 정자동까진 신호에 걸리지 않을 수 있죠. 
구미동 신호가 터지면 그 다음 신호가 터지고 금곡동 - 정자동 순으로 따다닥 신호가 들어와 80km/h만 유지하면 신호 한방에 갑니다. 

신호 제일 앞에 서서 액셀을 끝까지 밟습니다. 0-100km/h 가속 4.2초! 역시 빠릅니다. 
길이 5.1m에 너비 1.95m인 차가 4.2초 만에 100kph 까지 가속하니 육중한 포탄이 권총 총알 속도로 나가는 수준입니다.

얼마나 빠르냐면...
구미동 신호 앞에 서서 로켓 스타트를 하면 다음 사거리 신호를 받은 차들이 그 때서야 슬금슬금 출발하고 있어서 풀 브레이킹을 때려야 하고, 다시 바느질해서 제일 앞에 서서 풀액셀하면 다음 신호의 차들이 슬금슬금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풀액셀과 풀브레이킹을 반복하는 '붕-끽 붕-끽' dog운전 상황에서도 실내는 너무나 고요해서 과장 조금 보태 TV 소리 끄고 자동차 오락하는 느낌입니다.
서두에 말했던 것 처럼 이토록 조용한건 일부 S8 고객에게는 장점이겠지만 차 이름 앞의 S를 보면 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과거 V10 S8은 '오로롱' 하는 꽤 멋진 소리가 들렸었는데...

최고시속은 250km에서 제한됩니다.
하지만 다들 잘 아시듯 최고시속보다는 그 속도까지 올라 가는 시간이 중요하잖아요. 
분당 로마주유소에서 내곡간 도로 터널 진입해서 풀액셀 하면 터널 중간에서 250을 찍어버립니다. 
그 동안 여기서 최고속 찍어보려고 액셀 밟고 일어설 기세로 달렸던 과거의 기억들에 똥물을 끼얹는 느낌입니다. 
다시 속도를 줄이고 오르막에서 풀가속 해도 또 250! 하... ^^;

요약하면 엔진, 미션, 효율을 비롯한 ‘파워트레인 계통의 점수는 100점을 주고싶다’ 입니다.

쓰다보니 뭐 500마력 체험기가 돼 버렸는데, 지금부턴 아쉬웠던 점을 좀 적어볼까 합니다.

일단 고속안정성. 500마력짜리 독일제 대형 세단이면 고속안정성은 세계 최강 수준이어야 합니다. 
게다가 S8은 네바퀴굴림 이죠. 
다른 차들이 교보재 삼아야 할 정도로 좋아야 맞습니다. 
그치만 고속에서 둥실 떠 있는 듯한 가벼운 느낌과 칼 같이 움직일 줄 알았던 차체는 급한 차선 이동에서 몸을 추스르기 바쁜 눈치입니다. 
많이 타본 300마력짜리 파나메라4가 고속안정성은 훨씬 나았습니다. 
파나메라는 200kph로 강변북로를 달려도 전혀 무섭지 않을 정도로 극강의 고속안정성을 보여줬거든요. 

그리고 재미. 서두에서 언급했듯 빠르기는 제일 빠릅니다. 
밤에 청계산 와인딩을 몇 번 달렸는데 노면이 살짝 젖어있는데도 차체는 롤 하나 없이 안정적으로 돌아나가는 걸 보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이차 로보트인가?'

근데 재미가 없어요. S8이 아니라 A8 4.0 T2FSI(트윈터보ㅎㅎ) 랄까...
아무리 달려도 배기음 하나 안 들어오고 핸들링은 락투락은 짧지만 그렇다고 차가 경쾌하게 움직이진 않습니다. 
그냥 출력높인 A8인 것 같습니다. 
반면 S6과 S7은 출력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S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포쓰! S8 하면 저를 포함한 마니아들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하나하나 구분하며 환호하죠. 
하지만 일반인들은 역시 다르더군요! 
신호대기나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가도 어느 누구 하나 최신 S8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21인치의 초대형 휠과 알루미늄 사이드미러가 번쩍거리며 ‘나 뭔가 좀 달라요.’를 아무리 외쳐도요.

 

S201210.jpg
좌로부터 S8, S7, S6. (폰카라서 엉망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