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K7 3.5 트림을 시승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문 시승회는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아 차를 직접 주행한 시간은 20분 정도로 짧았습니다만 그 느낌을 올려봅니다.

시간 제약으로 테스트 항목은 몇 개 안됩니다. 슬라럼과 급선회, 급가속과 급제동, 그리고 전문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조수석에서 고속주행로 체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K7의 성능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산 FF세단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익스테리어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왜냐 하면 제가 피터 슈라이어의 스타일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슈라이어 시절의 아우디 스타일을 미친 듯이 좋아했던 만큼 그의 입김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K7의 디자인이 제 눈에 이쁘지 않을 리가 없지요 -_-;;;

첫 구간인 슬라럼에서 서스펜션 세팅을 느껴 봤습니다. 60~80km 속도로 슬라럼을 통과했는데 K7의 몸놀림은 저를 상당히 놀라게 했습니다. 유사한 코스(남양, 서산)에서 제가 체험한 세단이 NF, TG, 어코드(6세대), 제네시스, 포르테 정도였는데 K7은 제네시스를 제외한 다른 차들을 압도하는 안정성을 보여줬습니다. 전날의 비로 노면이 상당히 미끄러웠는데도 불구하고 자세가 불안정하거나 미끄러지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거든요. 많이 딱딱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좌우 롤링도 적고 차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더군요.

제 경험 한에서는 제네시스 정도만이 이 수준의 몸놀림을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무게가 가벼운 만큼 K7이 보다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과거 테스트에서 NF, TG, 어코드는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면서 머리 속에 그린 라인을 한참 벗어나곤 했는데 K7은 라인을 거의 생각대로 밟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훨씬 가벼운 포르테보다도 몸놀림이 좋더군요.

슬라럼을 벗어나 직선주로에서 엑셀을 끝까지 밟아봤습니다. 부밍음은 절제의 미덕을 지나치게 발휘했더군요 -_-;;; 3.5 엔진이면 그에 어울리는 사운드 튜닝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가속력은 고개가 젖혀질 정도는 아닙니다만 속도계가 시원스럽게 올라갑니다. 일행 중 한분이 핸드폰의 스탑워치로 측정한 바로는 제로백이 8초 전후라고 하시더군요. 제 차인 SM7 3.5와 비슷한 가속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급가속에서 느낀 점 하나는 현기차의 미션 세팅 능력이 확실하게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현기차 주행감각의 가장 큰 특징이자 불만은 동력 직결감이 떨어져서(라고 쓰고 후지다라고 읽는다) 엑셀을 꾹 밟아도 차가 반박자 늦게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4년 전 EF에서 차를 바꿀 때 TG와 오피러스는 처음부터 구매 대상에서 아예 제외할 정도였거든요. 젠쿱은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네시스 세단만 하더라도 이 느낌이 아주 약간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딜레이가 K7에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더군요. 엑셀을 밟으면 처음부터 정직하게 차가 가속이 되고 람다엔진을 자체 6단 미션이 제대로 컨트롤 하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합니다. 엑셀에서 발을 떼면 rpm이 떨어지는 속도가 여전히 느리더군요. 주행에서 스포티함을 느끼기엔 아쉬운 점이지요.

직선주로가 그리 길지 않아 150~160km 정도까지 가속하고 급제동을 테스트했는데 브레이크 세팅은 많이 불만스러웠습니다. 초기에 꽂히는 맛이 거의 없고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동안 제동력이 배분되는 느낌입니다. 패밀리세단 컨셉에 2.4/2.7 모델을 주력으로 생각했기에 이런 세팅이 이뤄진 것 같은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3.5 모델의 가속력도 감안하고 브레이크 세팅을 해야져. 브레이크는 차후에 반드시 보강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남양에서 오신 엔지니어 몇 분이 진행요원으로 계셔서 브레이크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더니 급제동을 많이 해서 일시적으로 밀리는 게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탄 차는 그날 제가 첫 탑승자였거든요. 지나치게 패밀리 세단의 기준으로 브레이크 성능을 맞춘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속주행로로 들어갔습니다. 고속주행로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한번도 핸들을 내주지 않아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고속주행로에서 운전하려면 따로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이건 전혀 몰랐던 사실입니다) 230km 정도까지 속도를 올렸지만 거동이 크게 불안해지지 않더군요. 차체강성과 밸런스가 잘 잡혔다는 얘기지요. TG는 말할 것도 없고 세팅이 잘됐다는 SM7도 190~200 영역부터는 뒤가 들리는 느낌이 들면서 거동이 급격하게 불안해지는데 K7은 상당한 안정감을 줍니다.

짧은 시승이었지만 K7은 여러 모로 좋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3.5 트림을 구입해서 브레이크 성능만 보완한다면 ‘공도의 제왕’이자 ‘보배드림 슈퍼카’인 SM7 3.5보다 더 큰 운전의 즐거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FF 베이스로는 일본차의 현재 모델과 비교해도 우위에 설만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남양의 엔지니어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 마감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테리어에 만족감을 표시했습니다만 소재 사이의 단차, 바느질 처리 등 마감 수준만 비교하다면 유감스럽게도 YF보다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봅니다. 차급과 가격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는 기아차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같습니다.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K7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내년 말, 내후년 초로 예정된 북미시장 데뷔에서 아만티의 부진을 씻기를 기대합니다.

사족 1. 람다엔진은 3.3/3.8 모두 3.5로 통합된다고 엔지니어 분들이 확인해 주시더군요.

사족 2. 2.4 GDI엔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소음, 진동을 잡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