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경우 가지고 싶은 차들의 목록, 소위 드림카 리스트에 올라있는 차들은 꽤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좀 구식인

차들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 중 하나로 로터스 엘리스와 엑시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엘리스나 엑시지는 작고 귀여울 뿐만 아니라 경량차체를 바탕으로 한 성능은 정말 일품이죠.

한번은 엑시지 240S로 트랙을 달리던 중 브레이킹 포인트를 놓쳐 제동을 채 마치지 못한 채 의도한 것보다 빠르게

코너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슬로우인 패스트 아웃이 아니라 패스트 인 스핀 아웃이 될 상황이었죠.



코너 입구에서부터 크게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스핀을 피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코너 출구가 다가올 무렵

차를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섀시가 제 실수를 커버해준 덕분이었지요. 이 사건은 로터스에 대한 저의

신뢰도를 한층 더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로터스는 경제력뿐만 아니라 열정도 있어야 탈 수 있는 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약간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차종이면서 그 가격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스포츠카들도

많으니까요. 예전에 교회에서 어쩌다가 자동차 얘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제가 로터스 엘리스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 차는 장난감같이 생긴 게 값만 비싸서 싫고 그 돈이면 포르쉐를 사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겠죠.

하지만 거꾸로 들여다보면 그런 점을 감수하고 로터스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포르쉐는 드라이버즈 카이기도 합니다만 스펙테이터즈 카(이런 말이 있기나 하던가요…??) 라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르쉐로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운전을 즐기는 분들도 많지만 ‘내가 포르쉐를 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차를 사는 분들도 아마 적지는 않을 겁니다.

포르쉐라면 성능은 물론이고 과시욕을 충족시켜주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니까요.

그런 반면 로터스는 과시하기에 어울리는 차는 아닙니다. 차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로터스 엘리스나 엑시지를 보여주면

장난감 같고 작다고 할 테고 가격을 이야기하면 헛돈 썼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할 가능성까지 있지요.

하지만 스포츠 주행을 즐긴다면 운전하면서 이만큼 만족감을 선사해주는 차도 흔치 않을 겁니다.

일반도로와 트랙 양쪽을 아우르는 면에서는 가장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죠.

엘리스는 로터스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모델 중 하나입니다. 에스프리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일반도로용 로터스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압출성형 알루미늄으로 만든 구성품을 접착제로 붙여서 만든 프레임에 FRP 차체패널로 익스테리어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죠. 로터스의 전통을 확실히 계승한 엘리스는 그 이후 다른 로터스 차들의 바탕을

이루어 왔습니다. 엑시지나 2-11처럼 엘리스의 외관이 엿보이는 차들 말고도 340R과 유로파 같은 차들도 엘리스의

플랫폼을 이용해 개발되었습니다.

2008년 발표된 에보라는 13년만에 새로운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로터스의 로드카입니다.








(위 사진들은 이번 시승이벤트 공식 사진작가 Richard Prince 씨의 작품들입니다. 구분을 위해 공식 사진에는
RICHARD PRINCE PHOTOGRAPHY라는 각주를 넣었고 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PASSIONCAR 각주를 넣었습니다.)

엘리스나 엑시지는 승하차성이 나쁜데다 좁고 시끄럽기 때문에 퍼스트카로 쓰기에는 좀 어려운 차입니다만 에보라는

이런 점을 보완해서 만들어졌지요. 에보라는 현재 생산중인 유일한 2+2 미드엔진 차입니다.

2+2는 2인승을 바탕으로 2개의 작은 뒷좌석이 추가된 형태를 이야기합니다. 뒷좌석은 성인을 충분히 수용하기는

어렵고 아이들이 타거나 짐을 두기에 적당한 정도의 공간이지요. 실제로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집어넣는 자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미드 엔진에 2+2는 과거를 살펴보아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언뜻 생각해보아도 페라리 디노 308 GT4와 페라리

몬디알 정도네요. 대부분의 2+2는 프론트 엔진이거나 포르쉐 911같은 리어 엔진입니다.

로터스도 예전에 2+2 모델을 생산했었는데 모두 프론트 엔진이었죠. 그럼 로터스의 2+2 계보를 살펴볼까요?



사진 위부터 엘란 +2(Elan +2; 1967~1974),

엘리트(Elite; 1973~1983),

이클렛(Éclat; 1975~1985),

그리고 엑셀(Excel; 1985~1992)이 있습니다.

1948년부터 1996년까지 로터스 로드카 생산량의 20% 이상이 2+2 였지요.







에보라는 2+2면서도 늘어지지 않는 비례감을 가졌으며 곡면과 엣지가 적절히 배합된 외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언뜻 보아도 미드엔진 스포츠카라는 것이 확연한 모습이며 운전석이 전진 배치된 캡포워드 스타일이죠.

수퍼카에도 뒤지지 않을 당당한 존재감을 가진 외모에서 엘리스나 엑시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앞부분에 작게 열리는 액세스 패널을 통해 냉각수와 브레이크 오일을 점검 및 보충할 수 있습니다.





차 뒤쪽을 열면 엔진룸과 트렁크가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트렁크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골프클럽 한 세트를 수용할 수

있는 170L 용량이라고 하네요. 엔진룸에는 LOTUS PERFORMANCE 라고 쓰인 커버가 덮여 있습니다만 클립 두 개만

풀면 바로 탈거할 수 있습니다.







커버를 들어내고 나면 그다지 볼품은 없는 2GR-FE엔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요타 캠리, 렉서스 RX350를 비롯해

하이랜더와 시에나 미니밴 등 많은 차에 쓰이는 3.5리터 V6 엔진이지만 로터스의 독자적인 제어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최고출력은 276마력(6400rpm), 최대토크는 35.6kg-m(4700rpm)입니다. 엔진을 눕혀서 배치하여 차의 길이방향에서

공간을 적게 차지하도록 한 것도 패키징의 미학입니다. 미드엔진으로 이루어낸 무게배분은 앞뒤 39:61이라고 하네요.







로터스답게 섀시도 최대한 경량화를 이끌어내 프레임의 무게는 200kg에 불과하며 차의 전체 무게도 1350kg입니다.

에보라는 압출 성형 공법으로 만든 알루미늄 부품을 접착제로 붙여서 기본 골격을 구성한다는 점에서는 엘리스와 같지만

차대가 세 부분으로 분할된다는 점이 큰 차이점입니다.

중앙에 욕조형 메인 프레임을 두고 앞쪽에 알루미늄 서브프레임이, 뒤쪽에는 아연도금 강판으로 만든 서브 프레임이

볼트로 고정되는 방식으로 VVA (Versatile Vehicle Architecture)라 불립니다.



충돌사고시 서브프레임만 교체하는 것으로 수리가 가능해지므로 엘리스의 플랫폼에 비해 유지보수에서 유리합니다.

실제로 에보라의 섀시 개발과정에서 6번의 충돌시험을 했는데 희생된 차는 4대였다고 하더군요.

메인프레임이 온전했기 때문에 전면부와 후면부 서브프레임만 교체하여 다른 충돌시험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약간의 변형으로 다른 파워트레인을 얹기도 쉽다는 것이 로터스측의 설명이지요.

에보라와 같은 가로배치 미드십뿐만 아니라 세로배치 미드십으로 신차를 개발하기에 유리합니다.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섭니다. 가볍게 열리는 도어를 열고 차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엑시지 보다는 훨씬 쉬우나 다른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승하차성이 떨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전방 시야는 꽤 시원합니다. 윈드실드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큰 호를 그리고 있고 A필러가 뒤쪽으로 많이 밀려나 있기 때문에 와이드스크린을 보듯 시야 폭이 상당히

넓습니다. 대신 A필러쪽 각도와 미러로 인해 생기는 사각지대가 다른 차들보다 더 외곽쪽에 존재하죠.

후방시야는 미드엔진 차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옵션인 후방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사진은 직선도로에서 대충 겨냥하고 찍었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구도로 나왔네요.

인테리어는 심플하면서도 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 알루미늄 구조물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인테리어 구성요소로

활용한 엘리스와는 달리 GT적인 성격이 보이는 마감이지요. 수제차인만큼 실제 마무리에서는 고급 양산차보다 약간

어설퍼 보이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로터스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호화롭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계기판이나 스위치도 엘리스보다 훨씬 고급스러우며 7인치 터치 스크린 내비게이션 시스템도 옵션으로 선택이 가능하지요.

대시보드는 간결하며 기능적이고 글로브박스의 크기도 적당합니다. 7만3천 달러 정도에서 시작하는 미국 시판가격을 놓고

보면 그렇게 고급스러운 실내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능적이며 낭비가 없습니다. 포르쉐의 경우는 로터스에 비해

생산량이 많고 개발 예산도 높으며 만족시켜야 할 고객층도 넓으므로 인테리어의 마무리가 뛰어나지만 다소 무덤덤해진

느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반면 로터스 에보라는 지나치게 손질하려다가 도를 넘어서지도, 지나치게 스파르탄하지도

않은 실내 마무리를 보이고 있지요. 가죽이나 금속은 표면처리한 플라스틱이 아니라 진짜 보이는 그대로의 소재이며

기능적인 면에서도 스포츠카다운 직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계기판의 크롬 테두리가 태양광을 직접 반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짧은 시승기간 동안 찾은 흠이었죠. 장기 시승을 하거나 소유를 한다면 다른 점들도 찾을 수 있을겁니다.



도어트림에 포켓과 컵홀더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눈에 띄더군요. 레카로 시트는 쿠션과 등받이가 방석 한 장만큼 얇지만

운전자세를 잘 잡아주며 안락함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뒷좌석 공간은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수준입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앞좌석에 신장 186cm의 남성이 앉아있을 때 뒷좌석에 152cm 신장의 여성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나와있으나 정말 구겨 타고 잠깐 이동하는 정도로만 가능할 듯 합니다. 하지만 짐가방을 놓아두거나 아이들을

수용하기에는 어울릴만한 공간이며 유아용 좌석을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는 ISOFIX도 갖추고 있습니다.



시트는 수동식으로 조절됩니다. 발공간의 폭은 앞바퀴에 공간을 조금 양보하면서 좁아졌기 때문에 풋레스트는 고사하고

발을 놓을 마땅한 곳도 없습니다. 때문에 변속을 하지 않을 때는 왼발을 클러치 페달 아래에 놓아야 하는데 처음엔 좀

어색해도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풋레스트로 단단히 몸을 밀어붙이지 않아도 시트가 몸을 잘 잡아주는 덕분이기도

하지요. 클러치 페달의 움직임거리는 상당히 짧은데 비해 시프트레버는 움직임 거리가 좀 길게 느껴집니다.

엘리스 초기모델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나 여전히 변속감각이 아주 명쾌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조금 어렵네요.

스티어링은 스포츠카다운 직경으로 손에 딱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입니다. 틸트 스티어링도 갖추고 있어 상급루저인

제 체형으로도 완벽한 운전자세를 잡을 수 있습니다.



시동은 스타트 버튼이 아니라 키를 돌려서 겁니다.

이제는 버튼식이 많아지자 오히려 키를 돌리는 것이 더 스포티하게 느껴지네요.

엔진은 7천 rpm까지 부드럽게 올라갑니다. 토크감도 충분하며 반응성도 우수하죠.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면 드로틀

반응이 더욱 예리해집니다. 주행중에 스포츠모드 버튼을 누르면 그 후 가속페달을 완전히 놓아 TPS값이 0이 된 이후에

작동하기 시작하고 이는 해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설정은 가속페달을 반쯤 밟은 상태에서 갑자기 반응성이

바뀌면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하는 배려라고 하지요.





시내주행이라면 스포츠모드가 신경질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브레이크 페달도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가감속의 페달

반응이 비슷한 쪽으로 익숙해진다면 오히려 스포츠 모드를 일상적으로 켜고 다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브레이크가 정말 발만 올려놓아도 막 서려고 하는 정도거든요.

6단 수동변속기는 도요타의 유럽형 모델인 아벤시스에서 가져온 아이신 EA60입니다.

원래는 디젤 엔진과 조합되는 트랜스액슬인데 이를 바탕으로 에보라의 특성에 맞도록 기어비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3단부터 기어비를 조금 더 짧게 설정한 스포츠 레시오 기어박스도 옵션으로 준비되어 있죠.

이번 이벤트에 동원된 시승차는 모두 스포츠 레이쇼 기어박스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 기어비도 그리 짧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스탠다드 레이쇼 기어박스라면 이보다 더 길게 잡혀있다는 이야기일텐데…

300 마력이라는 출력도 최근에는 승용차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흔해진 데 반해 에보라의 출력은 숫자로만 보기에는

그닥 스포츠카답지 않은 276마력임에도 불구하고 체감 동력성능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로터스의 전통인 가벼운 차체가 주는 선물이죠. 물론 핸들링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벼운 몸무게를 활용해 핸들링이 높은 차를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벼우면서 승차감까지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로터스의 엔지니어 맷 베커Matt Becker씨는 에보라의 핸들링과 승차감을 아주 높은 수준에서 훌륭하게 양립시켰습니다.

웬만한 장거리 여행을 해도 차 때문에 지쳐 나가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더군요. 물론 스포츠카다운 하드함은

느껴지지만 얇은 쿠션의 시트로도 충분히 안락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노면충격을 완화하는 동시에 주행안정성도

우수합니다. 스티어링의 반응도 샤프하고 피드백도 정말 명쾌합니다. 동시에 만족시키지 어려운 다양한 요소들을

액티브 서스펜션이나 마그네틱 라이드 같은 전자장비를 갖추지 않고도 골고루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은 로터스의

섀시 기술력이 얼마나 높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턴인부터 코너 탈출까지 정직하고 빠르게

반응하면서 피드백도 끝내주는 파워 스티어링, 좌우 연속 코너의 변환점에서의 깔끔한 추스림, 혹사시켜도 성능이

유지되는 강력한 브레이크, 충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뽑아 쓸 수 있는 동력성능 등으로 아주 빠르고 경쾌하게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릴 수 있었거든요. 완만하게 굽어진 고속코너든 바짝 감기는 헤어핀이든 구분 없이 너무나도 쉽게 처리해버리는

차의 능력 때문에 갑자기 운전실력이 몇 단계는 격상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듭니다.

와인딩 로드에서 에보라를 모는 즐거움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Top Gear 시즌 2에서 Bowler Wildcat을

몰던 리처드 해몬드가 “I am a driving God!!” 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죠. 로터스 에보라를 타면서 저 멘트에

정말 무지무지하게 공감이 갔습니다. 갑자기 전지전능까지는 아니라 해도 정말 대단한 드라이버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차의 움직임이 수족부리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 분위기에 빠져 점점 속도를 올려나갔습니다. 웬만한 시승이라면 과속으로 적발되는 것이 두려워 제한속도를 크게

넘기지는 않으나 이번 이벤트에서는 그 부분을 완전히 운에 맡기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테스트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죠. 멀리서 다가온 풍경이 차 옆을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실제 계기판에 표시된 속도도 도로조건에 비해 상당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 했습니다. 몸에 걸리는 횡가속도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어가 소리를 내지 않고 사뿐히 코너를 감아나가는 것으로 보면 아직 여유가 충분하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를 넘어서자 차내 분위기가 여전히 평온함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부담감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지금까지 다른 차로 제가 몰아붙여 보았던 영역을 상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아무 투정 없이 계속 받아주고

있었거든요. 더 나가다가는 분명히 차의 한계에 훨씬 못 미쳐 제 운전실력의 한계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고속 코너링 도중 노면 기복이 꽤 심한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반사적으로 항문이 조여지며

손에 힘이 들어가더군요. 앞뒤가 가벼운 미드 엔진의 특성상 요Yaw관성이 적은데다 빠르게 코너를 돌던 중 그런 요철을

만난다면 의도한 라인에서 조금이나마 밀려날 것으로 생각을 해서 약간 긴장하면서 대비를 했는데 의외로 차는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원래의 라인을 그대로 유지하며 싱겁게 처리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차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높아져 계속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코스를 공략했습니다. 차의 성능으로 보면 속도를 더 올릴

여유가 있음이 분명했지만 그 이상으로 몰아붙일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습니다. 시승이나 드라이빙을 위해 가끔씩 와본

도로이기는 해도 익숙한 코스는 아니었기 때문에 출구 가까이서 한번 더 감기는 코너를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진입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코너 입구만 보고 가늠한 스피드로 뛰어들었다가 반경이 조여드는 상황이 닥쳐도

스티어링을 더 감아주면 조향특성의 변화 없이 그대로 안으로 더 파고듭니다. 차가 운전을 다 받아준다는 즐거움과 함께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보기는 너무 부담된다는 두려움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 되더군요. 속도를 더 올려도 충분할

것은 분명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어차피 이 차로 제 한계를 시험해보려면 트랙에 가야 한다는 것은

자명했으니까요.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차들이 있고 스포츠카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하지만 에보라만큼의 핸들링을 가진 차는

흔치 않죠. 그것도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할만합니다.

성능에 있어서 로터스 에보라가 세계 1류 급이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그럼 가격은 어떨까요? 미국 시장에서 에보라 2+0의 가격은 $72,990, 그리고 2+2는 $73,500에서 시작됩니다.

보험료를 감안한다면 2+2를 고르는 것이 낫겠죠. 물론 이는 포르쉐 케이먼 S의 베이스가격인 $61,500보다 1만2천

달러나 높은 가격입니다. 거기에 옵션까지 어느 정도 집어넣고 나면 포르쉐 911의 기본모델인 카레라의 $77,800 보다도

높은 가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스포츠 패키지 $1,275 (스포츠모드 전환기능, 티타늄 테일파이프, 크로스드릴 브레이크 로터, 블랙 캘리퍼), 프리미엄

패키지 $1,990 (풀 가죽 인테리어, 액센트 라이팅, 암레스트), 테크놀로지 패키지 $2,995 (7인치 터치 스크린

내비게이션, 오디오 업그레이드, 블루투스, 크루즈 컨트롤, 리어 파킹 센서), 알파인 다이나믹 이퀄라이저 $695,

후방 카메라 $495, 전동 접이식 미러 $450, 스포츠 레시오 기어박스 $1,500 등이며 휠, 페인트도 옵션이 있습니다.

시승 이벤트에 동원된 차들은 적용된 옵션으로 볼 때 8만 달러를 상회하는 가격대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터스 에보라와 포르쉐의 비교에서 포르쉐를 고르겠지요. 하지만 로터스 팬이라면 브랜드

명성에 어울리는 성능에 기본적인 실용성까지 갖춘 에보라가 아주 매력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스나 엑시지가

좋기는 해도 불편하고 매일 타기 힘든 차여서 포기했다면 반드시 에보라를 시승해보세요.

엘리스와 엑시지가 세컨드카로밖에 쓸 수 없는 차였다면 에보라는 퍼스트카로도 사용이 ‘가능’하거든요.

분명히 퓨어 스포츠카이면서도 GT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는 차가 바로 로터스 에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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