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 R (6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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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R을 시승하기 전에 의심부터 했다. 과연 5세대 골프 R32의 자리를 이어받을 자격이 충분한가 하고 말이다.

R32의 V6 3.2L 250마력 엔진이 네바퀴를 굴려 ‘방방’거리며 튀어나가는 성능은 당시 핫해치 GTI도 감히 넘어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6세대 골프로 바뀌면서 R32가 쓸쓸히 퇴출당하고 그 자리에 2.0급 ‘R20’이라는 새파란 놈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심히 걱정에 의심을 했다. 이렇게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20’의 숫자 계급장을 떼고 단순하게

골프 R로 이름을 정했다.

 

최고출력 270마력에 최대토크 35.7kg·m, 일단 이력서에 쓰인 제원은 이전 R32를 능가한다. 하지만 터보 엔진의

출력이야 끌어올리기 나름 아닌가? 자동차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룰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배기량 빨’이다.

 

이전 3.2L 배기량에서 쏟아내던 풍부한 토크의 카리스마를 고작 터보 숫자놀음 따위로 넘보려는 것 같아 그 의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반짝이는 LED 데이라이트와 날렵해진 블랙베젤의 강렬한 눈빛을 가진 R과 의심이 가득찬 눈초리를

보내는 나와 눈싸움을 하며 그렇게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작고 반짝이는 R배지를 앞뒤로 붙인 것 이외에는 전체적으로 검은색 포인트로 꾸며 튀지 않고 차분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휠 하우스를 가득 채운 18인치 5스포크 휠 안에는 R이 새겨진 검은색 4 피스톤 캘리퍼가 자리잡고 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듯 뒷 범퍼 가운데에 모아놓은 듀얼 머플러도 겸손해보일 지경이다.

 

차라리 지난해 만났던 6세대 골프 GTI가 군데군데 빨간색 포인트를 주고 동글동글한 블랙 리볼버 휠로 튀는 느낌이 더했다.

 

골프답게 심플하면서 실용적인 분위기는 실내로도 이어진다. 대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급스럽고 꼼꼼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다. R 배지를 박아놓은 D컷 스티어링 휠 안으로 파란색 포인트를 준 계기판 바늘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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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척 하지 말고 R의 본색을 드러내보란 말이야!’하고 마음 속으로 외치며 처음부터 가혹하게 다뤘다. 왜건과

화물차들만 띄엄띄엄 다니는 아우토반 길가에 잠시 멈춰서 ESP를 끄고 기어 레버를 S 모드에 놓았다. 왼발로 브레이크를

누르고 오른발로 액셀을 밟아 rpm을 한껏 높여 출발했다.


개구리가 점프하듯 아스팔트를 박차고 나가면서 앞바퀴뿐만 아니라 뒷바퀴에도 동력이 전달되고 있음을 느껴진다.

듀얼 클러치식 DSG는 변속 순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매끈하고 빠르게 단수를 올린다. 속도계의 파란 바늘도 따라서

치솟으며 시속 100km를 금세 넘어선다.

 

‘워워~’ 성질을 부리듯이 날뛰는 골프 R을 오른발로 다스리며 일단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 5.5초(6단 DSG)를 의심

없이 믿기로 했다. (5.7초: 6단 수동변속기) 화끈한 가속을 한번 맛보자 의심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작은 해치백 차체에 달린 18인치 앞바퀴 두 개로는 270마력의 출력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할덱스 네바퀴굴림 4모션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운전자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약 10-20%의 토크를 뒷바퀴로 넘겨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군데군데 젖어 있던 아우토반 도로였지만 골프 R을 타고 시속 200km를 넘어서는 것은 옆자리에

앉은 여자친구가 입속으로 넣어주는 떡을 받아먹는 것만큼 안정적이고 쉽다. 이미 2,500rpm부터 35.7kg·m의 최대토크를

내며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엔진 덕분에 시속 200km를 가뿐히 넘긴다.

 

시속 240km에 도달하자 더 이상 가속이 이어지지 않는다. 속도계에는 시속 300km까지 새겨져 있고 눈앞에는 속도제한

없는 아우토반이 펼쳐져 있는데 이게 무슨 태클인가!


순간 계기판 정보창에는 독일어로 ‘Winterreifen Maximal 240km/h’라는 글자가 떴다. 독일어를 모르지만 비슷한 영어 단어로

조합해보니 ‘겨울이라 속도를 시속 240km/h까지 제한한다?’ 대충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스노 타이어를

신고 있기에 최고속도를 시속 240km으로 제한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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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240km에서 6단으로 엔진회전수가 6,000rpm에 달했는데 일반 타이어를 신고 ‘스노 리미트’를 풀어도 제원상 밝힌

최고속도인  시속 250km가 한계일 듯싶다. 분명 엔진 출력은 여유 있는 느낌인지라 6단 DSG의 기어비를 늘릴 수 있다면

더 높은 속도도 가능해 보인다.


“바앙~ 퍽퍽퍽~” 둔탁하면서 묵직한 R만의 사운드는 이전 R32의 것과 비슷하다. 하루 종일 골프 R과 지내고 나니

그 다음날까지 그 배기음이 귓가를 맴돈다. 두어 달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소리만 나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는 ‘R 사운드 환청’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골프 R의 드래그 실력은 제1막에 불과하다. 2막은 구불구불한 와인딩 도로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4모션 네바퀴굴림이지만

앞바퀴가 메인이고 남는 토크를 살짝 뒤쪽으로 보내는 방식이라 전체적으로 앞바퀴굴림차의 움직임을 보인다.

 

코너를 파고들다가 액셀 페달을 살짝 놓고 턱인으로 앞머리를 집어넣은 후에 다시 풀 드로틀로 치고 나간다. 네 개의

타이어가 미세하게 미끄러지며 언더스티어가 나다가도 이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차선을 잡으며 빠르게 코너를 탈출한다.


GTI(6세대)는 앞바퀴에 XDS라는 꼼수를 달아 앞머리를 인위적으로 돌리며 가볍고 빠르게 돌아나갔다. 하지만 R은 보다

운전자 신경 조직에 의존한다. 액셀 조작으로 네 바퀴에 토크만 제때 실어주면 묵직한 힘이 바닥에서 느껴지면서 더욱

빠르게 뛰쳐나간다. 차가 받쳐준다는 GTI의 느낌보다 운전자가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크게 와 닿는다.


고성능 해치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고속주행, 와인딩 그리고 시내주행에서 보여준 서스펜션과 차체의 밸런스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5세대 GTI가 국내에서 유행했던 시절 (벌써 옛날이다...^^) 각종 튜닝을 더해 엄청나게 빠른

포켓로켓들이 등장했었지만 앞바퀴굴림의 한계와 각종 하드웨어 수준이 따라주지는 못하는 벽이 있었다.


하지만 골프 R은 이런 한계를 모두 뛰어넘었다. 2.0L 터보 엔진에서 나오는 성능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안정된

270마력의 출력을 뽑아내고 이를 네바퀴에 전달한다. 또한 폭스바겐 R 디비전에서 손을 본 차체와 서스펜션은 여기에

잘 어우러진다.

 

V6 해치백의 독특한 매력을 뽐냈던 골프 R32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6기통을 버리고 터보 엔진 골프 R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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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국내에 골프 R 이 들어오긴 하는 건가요?

 

이미 어느 일간지에서 유럽 FTA 발효 유럽산 휘발유 차 쿼터제에 관한 기사가 떴듯이 조만간 골프 GTI를

비롯해 골프 R, 골프 TSI (160마력 터보수퍼차저) 까지도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전 R32를 국내에서 4,990만원에 32대 한정판매 했던 (이후에 조금 더 가져왔던 것으로 알고 있슴) 전례를

보아 이번에도 한정판으로 들여오지 않을까 조심히 예상해보는데 유럽에서 GTI 값의 25% 정도 비싼

골프 R 이라 국내 GTI 값을 예상해본다면 R도 비슷하게 맞춰볼 수 있지 않을 까 싶습니다.

  

       

 

 

by RAD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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