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산골짜기 둠벙의 모습입니다.^^


최근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의성 산골짜기 둠벙에서 밤새 꽝치고 서울로 올라간다.
최근 며칠동안 날씨가 좋아 밤낚시에서 입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아직 시기가 아닌 모양이다.
하루이틀의 햇볕으로 수온이 오르기엔 턱없이 부족한 탓인 지 밤새 말뚝이다.ㅋㅋ
허접꾼이라 매번 그렇지만 또 다음을 기약하며 공기 좋고 물 맑은 깊은 산골 소류지를 벗어나 중앙고속도로로 차를 올려 잘 올라오던 중이다.  

중앙고속도로는 평소에도 차량통행량이 많지 않은 편인데 일요일 아침이라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텅비어 있는 느낌이다.
2차선으로 붙어 연비모드로 100~110을 유지하며 순항중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로 아직은 볼품 없지만 군데군데 눈에 띄는 푸른색 새순은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고속도로 주변의 봄풍광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데 어느새 나타났는지 검은색 쏘렌토 한 대가 순식간에 내 곁을 지나 멀어져가는게 보인다.
바쁜 일이 있나보다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벌써 저만치 가버리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그순간, 저 바닥 깊숙한 곳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하는 질주본능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도대체가 알 수 없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이젠 식솔도 하나 더 늘어 괜한 객기를 부릴 때가 아닌데 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차량을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건 왜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 벌써 오른손은 기어봉을 힘껏 부여잡고 4단 쉬프트 다운에 들어간다.
간격이 꽤 벌어진 터라 어지간히 밟아서는 따라잡기 힘들다는 생각에 풀로 쌔리밟는다.
오늘은 뭐 도로에 차도 없고 카메라도 드문드문 있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그런데 오늘 따라 차가 왜 이리 굼뜬 것이여.

한참을 쫓아갔는데도 아까 그 쏘렌토는 보이질 않는다.
벌써 틀린건가 싶어 아쉬움의 눈물을 뒤로 하고 배틀 모드를 풀려고 하는 찰나 저 멀리 그 쏘렌토로 보이는 검정색 차량이 희미하게 시야에 포착된다.
그럼 그렇지....
허접하긴 해도 이차는 그 유명한 G4GF 엔진으로다가 합법적으로 구조변경을 마친차 아닌가!

열씨미 도로 위의 차량들을 하나둘 제치면서 Y00 정도의 속도로 죽기살기로 밀어부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쏘렌토와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긴 하나 쉽게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
흐미!!
내 여지껏 쏘렌토는 적수가 못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이차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아마 제천을 지날 즈음부터 레이스가 시작됐던 거 같은데 벌써 수 km는 쏘렌토 뒤꽁무니만 바라보며 쫓아왔으니 오늘 이거 2.0 아방이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쏘렌토 운전자도 뒤를 쫓는 나를 의식했는지 죽어라 달린 모양이다.
하여간 천신만고 끝에 쏘렌토 뒤꽁무니에 근접할 수 있었고 호시탐탐 추월의 기회를 노린다.
그나저나 쏘렌토가 이렇게까지 잘 달릴 줄 내 미처 알지 못한게 죄다.

어쨌든 최고속은 마력당 무게가 가벼운 아방이가 근소하게 앞서는 모양이다.
미친넘 마냥 죽어라 따라오는 나를 의식했는 지 쏘렌토는 2차선으로 길을 내주며 내 앞길을 흔쾌히 열어준다.
고속코너를 매우 안정감 있게 돌아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운전매너 또한 일품이다.
정말 오늘 제대로 임자 만났다는 생각이 뇌리를 쌔리면서 오버페이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하게 와닿는다.
여기서 자칫 삐끗하면?
아~~~~~
생각하기도 싫다.

약간 경사가 진 언덕길 코너에서 드디어 쏘렌토와 조우하고 나란히 달리기 시작한다.
약 170~180 사이의 속도쯤 됐을 거고 고속코너링 중이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볼 겨를이 없다.
그냥 느낌으로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정도다.
쏘렌토 2차선 난 1차선....
차 무게가 가벼운 탓에 고속으로 갈수록 핸들이 가벼워지고 주행안정성이 떨어져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조금씩 쏘렌토를 앞서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순 없다.
이 기회를 틈타 얼른 상대를 떨쳐버리고 저멀리 도망간 후 상대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케 한 후 다시금 얌전모드로 돌아가
한숨을 돌리는게 오늘 나의 절체절명의 미션이다.

뒤쫓아 오면서 봐온 상대의 드라이빙 능력은 SUV에 대한 나의 편견을 180도 뒤바꿔놓은 일대 계기가 됐을 정도로 탁월했다.
중저속에서는 완만한 코너라도 180~200을 오르내리는 속도에서는 전방의 도로 사정을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엑셀 페달의 미세한 조절만으로 코너를 공략해야 하는 상황이라 극도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 정도의 속도와 상황에선 브레이킹을 할 수도, 힐앤토를 칠 수도 없다.
그저 내차가 이 상황에서 꿋꿋이 버텨줄 수 있을 거라 100% 신뢰하고 몸을 맡기는 수 밖에 없다.

쏘렌토 같은 SUV 차량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무게중심을 가진 차에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으며 코너를 돌고 있는데 이 쏘렌토 운전자는 어떻게 된게 그 높은 무게중심을 가진 차로 브레이킹 한번 없이 꾸준히 밀어부친다.
정말이지 간튜닝에서는 쏘렌토 운전자에게 완전한 역부족을 느낀다.
어떻게 SUV 차량으로 저렇게 운전할 수가 있을까를 내내 생각하며 쫓아온 터라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서 시야에서 벗어나고픈 마음뿐이다.  

조금씩 쏘렌토와 간격이 멀어져간다.
이대로 계속 달리면 조만간 승부는 갈리겠지....
언덕길이 끝나고 다시 평지가 나오고 치악휴게소에 거의 다다랐다.
꽤 거리가 벌어졌으리라 생각하고 룸미러를 쳐다보는 순간 으악~~~~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넘의 쏘렌토 떨어지기는 커녕 내 뒤에 딱 붙어서 줄기차게 쫓아온다.
오냐 너 한번 도망가봐라. 이번엔 내가 쫓아가 주마
완전히 이꼴났다.
아 이런 쓰바~~~~
쏘렌토 우습게 봤다가 졸지에 새됐다!

아까와는 반대로 한참을 쫓기는 처지가 되어 달리다 보니 고속코너에서의 심리적 부담이 장난이 아니다.
상대의 엄청난 강심장과 드라이빙 실력을 알았기에 자칫 이 상태로 계속 진행하다간 오버페이스로 패가망신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아 이거 일반 승용차도 아닌 SUV 차량에게 이렇게 속절 없이 당하긴 또 처음인 것 같다.
그것도 내 안방처럼 드나들던 중앙고속도로에서 말이다.

여지껏 많이도 쫓아는 가봤지만 앞서서 달려본 적은 별로 없어 이런 되먹지못한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잘 모르겠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내어주고 다시 또 쏘렌토 뒤에 붙었다.
크흑~~~~

쏘렌토와 내 아방이!
여전히 풀 가속 상태로 끝간 데 없이 달리고 있는 중이다.
드디어 마의 구간에 다다랐다.
다름 아닌 치악휴게소를 지나면 곧 만나게 되는 터널 앞 내리막 S자 코너....

그 공포의 코너를 머리속에 그리며 약 140~150의 속도로 쏘렌토를 뒤쫓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급코너가 시작되는 부근에서 앞차들의 브레이크등이 여지없이 점멸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쏘렌토라고 별 수 있나? 역시 빨갛게 브레이크등이 들어오며 약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일찌감치 브레이킹을 마무리하고 엔진브레이크로 자세를 다잡고 있는 상황이라 쏘렌토의 움직임을 정확히 살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쏘렌토 운전자 정말 강심장이다.
그 내리막 코너에서,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빈공간을 찾아 요리조리 치고 나가더니 결국 앞차들에 막혀 있는 나를 따돌리고 사라져버리고 만다.

점점 더 많은 차량의 합류로 인한 정체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 이상 쫓아가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한번 더 따라잡은 후 사실상의 배틀종료 라는 메시지를 전한 후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싶었는데....

다시금 2차선으로 빠져 속도를 줄이고 가뿐 호흡을 가라앉히며 서행하고 있는데 비머 한 대가 쏜살 같이 달려오는게 보인다.
아까 쏘렌토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순간적으로 치고 나간게 괘씸했던 모냥이다.^^

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검은색 쏘렌토 운전자의 그 대단한 주행능력은 5년 여 기간 동안 중앙고속도로에서 만났던 최고의 배틀 상대로서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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