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이 3주간의 독일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많은 짐과 아기를 데리고 공항으로 가려니 불가피하게 차량 두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파삿 바리안트를, 내가 R32를 몰고 공항에서 식구들과 아쉬운 이별을 한 후 아내와 주차장으로 향하며 내가 묻는다.

“어떤 차를 타시겠습니까?“
“파사트로 하지요“

우리는 하노버에 있는 일본식료품점에 들른 후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고 Wolfsburg로 귀가를 하게 되었는데, 네비게이션이 파사트에 장착되어 있는 관계로 아내가 앞서고 내가 R32로 뒤쫒아가게 되었다.

점심을 먹은 곳이 내가 전혀 모르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내를 바짝 쫒아가야지 자칫 아내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되는 상황이었다.
잠시 걱정되었던 부분은 R32의 연료게이지가 ¼이 채 남지 않았고, 달려야하는 거리는 105km, 트립컴퓨터상 달릴 수 있는 가능거리는 120km, 하지만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빡세게 달리느냐에 따라 짧아질 수도 늘어날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 무시…

좀 빠듯하지만 그래도 집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옥탄 100을 넣기 위해서는 남은 연료를 잘 운영해야하는 상황.

아내가 앞서가고 함께 아우토반에 올라탄다.
아우토반에 올라가자마자 풀쓰로틀을 하는 아내의 파삿을 멍하니 바라보며 뒤에서 약간 방심한 틈에 거리가 약간 벌어졌다.

벌어진 거리를 만회하기 위해서 난 잠시지만 230km/h로 달려야했고, 아내는 210km/h 정도로 1차선의 차들을 2차선으로 내동댕이를 치며 질주하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갈아타는 램프에서도 제법 빠른 속도로 클리어하는데, 항상 옆에서 모는 차를 타던 것과 비교해 뒤에서 함께 달리면서 보니 코너를 도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기어도 3단으로 내려놓고 달리고 있었고, 램프에서 본선으로 합류할 때 코너아웃하면서 가속을 때리는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동쪽으로 향하는 A2고속도로로 갈아타자마자 또다시 잽싸게 3차선에서 1차선까지 차선을 바꾸며 풀쓰로틀로 치고나가는 파삿.
내가 출력에서 충분히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지체없이 가속패달을 후리는 아내의  뒤를 쫒아가는 입장에서는 나도 열심히 변속하느라 제법 바쁘다.

또다시 200km/h오버로 질주하는 아내를 쫒아가는 나는 새가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다가 주유소도 없는데, 이런식으로 달리다가는 기름이 바닥나버릴 것이 뻔하다.
200km/h로 달릴 때의 R32의 연비는 리터당 7.5km정도다. 160km/h 로 달릴 때는 리터당 10km정도가 되며, 5세대 R32의 고속 주행연비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참고로 240km/h항속일 때는 리터당 4km.

와이프가 1차선으로 달리면서 수많은 차들이 2차선으로 자리를 내주는데, 뒤에서 보니 크지 않은 체구에 8개월된 아기의 엄마가 운전하는 차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과감하게 어설픈 속도의 1차선 차들을 청소하듯이 달린다.

거리를 좁혀가자니 역시 기름통이 가벼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따라가는 것이 벅차다.
이런식으로 25km정도를 달리고 나면 120km/h속도제한 구간이 나오는데, 이 구간에서 연비를 벌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이 구간에서 130km/h를 유지하면 제한구간이 끝나는 시점과 A39로 고속도로를 갈아타는 무제한 구간에서 아내를 앞지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처음에 140km/h정도로 제한구간을 달리던 아내가 갑자기 1차선으로 차선을 바꾸며 170km/h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다. 아내는 1차선으로 좀 빠르게 지나가는 차를 뒤쫒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자주 쓰는 수법으로 제한구간에서 혼자 달릴 때는 제한속도 +10km/h가 안전하지만 앞에 빠른 차를 앞에 두고가면 단속에서 조금 자유롭고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긴다.

그날 따라 1차선으로 제한속도를 어기고 가는 차들이 어찌나 많던지 아내는 그런 차들을 어김없이 바짝 쫒으며 내게 배운 트릭을 120% 활용하고 있었다.

젠장 연비를 확보해야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예상치 않은 속도전을 펼쳐야하다니…
120km/h구간에서 가장 빨리 가는 차를 추종하는 아내의 평균속도는 160km/h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이 구간이 워낙 사람들이 제한속도를 잘 안지키는 구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상황에서 빠른차를 따라가는 아내를 나무랄 처지가 안되었다.
나도 늘 그렇게 하니까…

연료주입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떴고, 이런 상황에서 빌어먹을 제한속도가 없어졌다.
1차선에 아내를 리드하던 차 뒤에 바짝 붙어있다가 제한속도가 없어졌다는 표지판이 아내에게는 요이땅이었고, 아내를 리드하던 차는 뒤에서 바짝 쪼는 파삿에게 1차선을 내주고 2차선으로 튕겨져 나간다.

뒤에서 R32를 모는 나는 또다시 풀쓰로틀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쓰로틀을 과감하게 여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아내 잃은 어린 병아리 신세가 될 수는 없었다.
A39로 갈아탈 때 아내가 미리 속도를 줄여서 3차선에 붙어 서행을 해주면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아내를 뒤에서 그리워하며 160km/h로 항속하고 있었다.

나의 작전은 A39로 갈아탈 때 최대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1차선에서 3차선으로 차선을 짜르며 램프로 빠져 상당한 난이도의 램프에서 기술로 격차를 따라잡을 생각이었다.
나의 작전은 간단하다. 최대한 속도의 가감속없이 가야 연비에서 득이 되며 동시에 아내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것…

A39가 나타나는데, 3차선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며 고속도로를 갈아탈 줄 알았던 아내가 멀리서 보니 내가하는 짓거리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속도를 줄이기는 커넝 실컷 달리다가 막판에 새치기를 하듯이 램프로 쏙 빠져서 램프를 역시 과감한 속도로 클리어했는지 나도 작전대로 달렸다만 아내는 이미 보이지도 않는다.

램프가 끝나고 약간 오르막으로 펼쳐진 무제한 구간에 들어서니 아내는 1km는 더 달아나 있는 상태였다.
맘은 이미 가속패달을 바닥에 꽂아버리고 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
기름만 충분했다면 R32로 늘 260km/h로 달리던 구간이다.

전의를 상실한 나는 도저히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기회는 한번 더 남았다.
Wolfsburg로 빠지면 로컬구간인데 속도제한이 100km/h 이다. 시가지로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제한속도는 100, 90, 80, 70으로 서서히 줄어들게 되어 있다.
이 구간에 접어들어 140km/h를 유지하면 제한속도에 맞춰 달리는 아내를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아우토반에서 빠지자마자 최대한 멀리 시야에 있는 아내를 발견했지만 아내는 100km/h이 아니라 120km/h로 빠듯하게 달리고 있었고, 내가 잠시 140km/h로 질주하지만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시가지에 들어와 신호등이 있는 구간 아내가 교차로 통과했는데, 내가 걸린다면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참패가 될 것이고, 최대한 찬스를 노렸다.
노란불로 바뀌는 찰라에 교차로 신호에서 6단 60km/h 항속에서 2단으로 내려 풀가속 3단으로 바톤 터치 간신히 교차로를 통과해 아내의 뒤를 밟았다.

내가 앞서가야만 집앞에 있는 주유소에 들른다는 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차선을 어찌나 요리조리 잘 바꾸는지 도저히 앞서기는커녕 옆에 나란히 가기도 힘들다.

나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아내의 뒤에 서있기는 하지만 내가 거주하는 Vorsfelde로 좌회전하자마자 있는 주유소 직전에 내가 앞서지 않으면 난 아내를 놓치게 된다.

연료게이지는 달릴 수 있는 거리가 0 이라고 표시된 후 벌써 10km이상을 달렸다.
도저히 기회가 나지 않다가 아내가 Vorsfelde로 좌회전하기 위해 1차선으로 차선을 옮길 때 기회가 왔다.

난 2차선에서 2단 순발력을 이용해 풀쓰로틀 3단 변속 1차선 아내 앞으로 급하게 끼어들면서 2단 힐&토우 후 좌측으로 감아들어갔다.
그렇다. 마지막 남은 한방울의 기름으로 3단에서 2단 힐&토우를 하며 액셀을 칠 때 고요한 Wolfsburg를 깨우는 우렁찬 R32의 머플러는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해냈다.

우측깜빡이를 켜면서 주유소에 진입 아내가 뒤를 따른다.
휴우…..

옥탄가 100짜리 주유기는 언제나 free..
차에서 내리며 던지는 말
“이 아줌마 따라가기 무지 힘들구만….“
게슴치레 눈이 1/3쯤 감긴 아내가 하는 말 “졸려 죽겠다….“
  
그렇다. 아내는 졸린 잠을 쫒기 위해 가속패달이 부러져라 밟았던 것이고, R32가 못쫒아 오길래 전화가 왔거나 아니면 세나가 울어서 그러려니 자기는 그저 자기 페이스(?)대로밟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추월은 서킷 직선구간에서 자리싸움을 벌리면서 late braking으로 상대를 간발의 차이로 앞서면서 반발짝 먼저 코너인을 하는 상황과 아주 흡사했다.

누가의 작품이란 말인가?
이제 도로에서 아내의 존재는 그냥 애엄마가 아니었다.
아일톤 세나의 엄마보다 빠른 그녀는  권세나의 엄마였다.

2차선으로 200km/h를 달리다가 3차선 100km/h짜리 트럭이 추월을 위해 2차선으로 들어올 때 아우토반의 경우 1차선이 비어있으면 3차선의 트럭이 2차선에서 아무리 빠른차가 와도 주저하지 않고 차선을 바꾼다.

아우토반 경험이 짧은 사람들은 이럴 때 대부분 급브레이크를 밟지만 익숙한 사람은 높은 속도지만 차분하게 1차선 상황을 보고 살짝 1차선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차선으로 복귀한다.

여자 운전자들이 이 부분을 익혔다면 대단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유는 늘 1차선에서 빨리 오는 차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 차선을 바꿀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뒤에서 아내를 따라가며 혹시 지적해줄 것이 없나 살폈던 나는 언급된 상황에서 유유히 차선을 변경하는 아내를 향해 브라보를 날렸다.

특수교육의 힘으로 아내는 수동변속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높은 속도에서 차를 다루는 방법도 터득했다. 회전수를 높게 사용하면서 변속을 해야 차가 잘나간다는 것을 아는 아내는 신호등에서 가장 빨리 튀어나가는 차의 운전자이다.

다운시프트를 할 때 가속패달을 살짝 쳐주는 것도 할 줄 안다.
제동과 함께 다운시프트를 할 때는 항상 제동이 먼저라는 것도 귀가 닳도록 들어서 제동을 거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주유후 집에 도착해 주차시킨 후 시동을 끈 후 기어를 1단에 집어넣으며 하차하는 아내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testkwon-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