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스트릿 배틀이라고 할 만한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그냥 잠깐의 즐거운 '함께 달리기'라고 해야겠죠.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던 달리기라 짧게 써봅니다. 혹시 상대 차 차주분이 테드를 보시는 분일지도 모르겠구요.

어젯밤 일입니다.
연이은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잔뜩 지쳐 있었습니다. 이미 시간은 새벽 1시. 일의 진도상 또 사무실에서 밤을 새야할 것 같았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일찍 출근해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 팀원들을 귀가시키고 저도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탔습니다. 저는 비가 오지 않는한 1년 내내 탑을 열고 다니기 때문에 여느때처럼 오픈한 채로 출발. 퇴근길은 경복아파트 사거리의 회사에서 출발해, 관세청 앞을 지나 도산대로를 타고 한남대교남단 램프에서 올림픽 대로로 진입하는 코스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미풍이 귓가를 간지럽히고 황사도 없는, 거리의 차도 많이 줄어든, 컨버터블을 즐기기 딱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기분이 좀 좋아진 채로 느긋이 주행하다 신사역 사거리에서 한남대교쪽으로 우회전 하려는데, (여기서 우회전 차들이 정차해있는 택시들 때문에 늘 조금 막히죠) 알파인 화이트 색상의 신형 3시리즈 컨버터블 한 대가 샤샤샥 차로를 좌우로 바꿔가며 우회전 코스를 앞질러 차지해 버리네요. 역시 오픈한 상태. 제가 좀 바른생활 강박, 질서 강박 이라 살짝 약이 오릅니다. 느긋이 양보해가며 우회전 대기하던 사람이 바보된 기분도 조금 들고...

그 차보다 몇 대 뒤로 쳐저 우회전 하자 마자 가속해 따라잡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런, 우회전 해서도 역시 한남대교로 진입할 것처럼 중앙쪽 차로로 빠져 달리다가 마지막에 슥 오른쪽 차로로 변경해 유유히 올림픽대로쪽 램프로 향하는 비머...

아아~ 이 대목에서 제대로 버닝한 저도 가속합니다. 졸리기도 하고 몸도 피곤한데 잘됐다 싶은 마음도 한몫 거듭니다. 급격히 가속하자 상대도 제 차를 의식한 눈치가 역력합니다. 비머의 배기음이 날카롭게 올라갑니다. 사브의 특기인 중속대 토크가 받쳐주는 급가속으로 비머와 거리를 좁힙니다. 올림픽 대로로 이어지는 램프 진입하는 순간엔 비머와 사브가 앞 뒤로 나란히 있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올림픽 대로 본로가 가까워 집니다. 램프가 끝나고 대로가 시작되는 순간의 상황은 불보듯 환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램프가 끝나자 마자 바로 가속하며 오른쪽 차로로 변경해 달려나가는 비머. 저는 왼쪽 차로를 선택합니다. 같은 컨버터블이고, 비슷한 체급이라는(물론 배기량 차이가 나니 이렇게 말하면 비머가 서운하겠지만^^) 게 일종의 묘한 호승심을 자극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승부욕 중에서도 독한 승부욕이 아닌 즐겁고 가벼운 승부욕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상대도 꼭 그렇게 즐거워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달리다 보니 재미있는 걸 알게 됩니다. 저나 상대나 무리한 칼질 비슷한 건 아예 하지도 않고, 그나마 차로 변경 때 꼬박꼬박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방향지시등을 깜빡입니다. 조금만 거리가 벌어지면 앞 차가 속도를 줄이고 정속 주행. 비슷해지면 다시 약속이나 한 듯 급가속해 내뺍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대충 눈치 챕니다. 아, 저 사람도 나처럼 간 작고 소심하고 나름 준법(?)하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구나, 하고요^^

중간중간 거리가 벌어져 따라잡으려고 가속하거나, 떼어놓으려고 가속할 때 마다 느낀 것은 역시 이정도 느린(?) 속도 영역대에서는 사브의 가속이 뛰어나구나, 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 역시 배틀을 한다거나 기를 쓰고 저를 이기겠다거나 하는 운전은 하지 않는 걸로 보였지만 그래도 드라이버의 감이라는 게 있지요.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거나 벌려놓는 면에서는 사브가 훨씬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조금 여유있는 상태에서 거리 조절이 가능했고 비머는 살짝 버거워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저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두 차 모두 고속으로 계속 거칠게 칼질해 가며 간튜닝 주행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사브의 특징이자 상대적 장점인 중속가속력/추월가속력이 더 잘 드러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형 3시리즈 컨버터블은 참 예쁘더군요. 알파인 화이트 색상이라고 생각하는데(틀릴지도 모릅니다) 밤에 보니 더 예뻐 보였습니다. 제가 운전하며 앞 차에 바짝 붙이는 걸 아주 싫어하기에 이번에도 비머 뒤에 가까이 붙지 않았고, 그래서 328인지 335인지 레터링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충 십여분 이상 나란히 달린 느낌으로는 328ci 컨버터블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느긋하게 여유있게 봐주고 달린 335ci였을 수도 있지요^^ 제 차는 완전 순정 상태의 2.0Turbo 에어로 컨버터블입니다. 흔한 칩튜닝도 이번 차량엔 하지 않았고 인치업도, 서스도, 기타 무엇도 일절 하지 않은 상태. 느낌으론 상대 차량도 그러했던 것 같구요. 순정 상태에서 제 차의 제원은 2,000cc, 210마력에 토크가 30 약간 넘는 정도입니다. 335였다면 어제 양상과는 꽤 다르게 전개되었으리라는 게 상대가 328일 거라는 제 추측의 근거인데, 앞서 말했듯 335가 막 봐주고 달린 걸 수도 있으니 정답은 알 수 없지요.

아쉽게도 오랜만의 즐거운 달리기를 마무리 할 때가 다가왔기에 저는 비상깜빡이를 켜며 감속했습니다. 양화대교쪽으로 빠지는 램프에 진입해야 했거든요. 날카로운 배기음을 내며 총알같이 달려나가는 비머가 비상깜빡이를 켜주길 기대했지만 무심하게도(^^) 그냥 가시더군요. 흑- 저와는 달리 비머는 사이드윈도를 모두 올리고 있었기에 차주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남자분 혼자 탄 것 같다는 정도만 식별 가능.

어쨌든 꽤 즐거운 드라이브였습니다. 저는 딱 이정도, 딱 여기까지의 운전을 즐기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더 빨리 더 심하게 달리면, 무섭고 죄스럽고 뭔가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물론 X40 넘는 영역의 달리기도 아주 가끔 합니다만 그건 그야말로 시야가 뻥 뚫린 고속도로등에 한정됩니다. 도발하는 차가 있는 경우-라는 전제조건도 더 붙고요^^

집으로 들어오니 아내가 의아해 합니다.
"연이어 야근하느라 파김치 되어있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쌩쌩하네?"
저는 씨익 웃어주며 대답합니다.
"간만에 재밌는 차를 한 대 만났거든! 그게 말이야 어떻게 된거냐 하면..."

아내는 무슨 소린지 안들어도 알겠다는 표정으로 아아- 하고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좋았겠네~" 하며 뒤돌아서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바야흐로, 소년으로 돌아간듯한 놀이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현실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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