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아파트 뒷 동에 파란색 R32를 모는 주민이 한 명 있습니다.
원래는 제 R32만이 유일한 R32였는데 지난 번 여름동안 한국을 갔다오니 집앞으로 자꾸 오로롱 거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창밖을 보니 R32더군요. '어랏... 우리동네에 또 있네~'하면서 보낸 시간이 수 일... 결국, '언젠가는 마주치겠지~' 하다가 지난 번에 차고앞에서 인사를 하게 되었었지요.
그 파란 R32를 이전에도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이 녀석! 지난 번에 제 차의 휠을 보고 몇 번 아래위로 훌터보더니 이번에 보니 결국 똑같은 휠을 낑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쁜넘~!)
만나서 이래저래 니차엔 뭐해놨냐 하면서 보여주기+자랑하기 일색이다가 그 파란 R32의 엔진룸을 열어보니 Bypass valve가 달린 (지금은 망해버린) eip사의 Cold Air Intatke가 눈에 확~ 들어왔었지요. 전 그 보다 좀 싸구려제(EVOMS)를 쓰지만, CAI는 제 생각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았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eip CAT Back으로 배기튠을 해 놨더군요. 소리가 약간 더 크고 음색이 더 저음이 섞인 전투적인 소리를 내는 머플러였지요.
당시 조우에선 둘 다 N/A였고, 그 친구 역시 Chip Tune만 해 놓고 다니는 상태라 둘 다 달리기 실력은 엇비슷했을 거라 생각해 별로 말을 안했습니다.
-------------------------(여기까지가 Background 입니다)-------------------------

오늘 제 R32를 차고로 집어 넣으려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들어오고 있었지요.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는데, 결국 자랑을 하고 말았습니다.
안그래도 예전에 그 친구한테도 터보튠 안할거냐고 얘기를 꺼냈더니, 자기는 지금 R32 할부금 내기도 힘들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괜히 자랑했다 싶었습니다. 이놈의 오도방정...
ㅡ.ㅡ;;;

"야~ 쏴보자~"

결국, 둘다 굶주린 하이애나처럼 길을 나섭니다.

■ 정지에서 출발 ■
1단에서 그 친구 상당히 고알피엠을 쓰면서 준비를 합니다.
클러치가 닳을까 아까워하는 저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죠.
2천을 조금 넘긴 제 차의 출발보다는 역시나 빨리튀어 나갔지만, 따라잡는데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습니다. 클러치를 완전히 뗀 후부터는 저 역시 풀스로틀이었으니까요.
출력이 높아진 상태지만 Haldex 4motion은 동력을 네 바퀴에 고루 잘 전달해 주는 느낌입니다. 1단 레드존을 치기 전에 1대 정도의 차이를 벌려놓고 2단을 넣자마자 또 정신없이 나갑니다. 몇 대 차이인지도 모르게 계속 벌어집니다.
게이지 보랴 거울보랴 정신없었지요... ㅡ.ㅡ;;;
3단을 넣고 얼마밟지 않자 녀석 뒤에서 하이빔으로 싸인을 줍니다.

■ 롤링스타트 ■
① 25mph
저 역시 N/A로 충분히 즐겼던 기간이 꽤 되기 때문에 그 친구가 몇 단을 넣고 달리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지요. 아무래도 그동안의 정체 모를 차들과의 배틀과는 사뭇 느낌이 많이 다르게 참 편안하게 달렸던 것 같습니다. ^^
둘 다 2단을 넣고 '빵빵빵' 제가 유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2번 모두 그 친구가 신호를 넣었습니다. FT360 최대 토크가 약 3천 알피엠부터 터지고 그 곡선이 완만하게 6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가장 가속빨이 좋게 보였던 롤링스타트였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500마력짜리 SRT-4에게 당했던 것과 거의 흡사한 결과를 보였던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스텐딩스타트와는 다른 터보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점으로 만들어버릴테다'는 기세로 순식간에 10대정도의 차이를 벌려놓았습니다.

② 40mph
저에겐 기어선택이 약간 애매한 속도였습니다. 상대는 역시 2단. 전 2단으로 갈까 3단으로 갈까 고민이 되더군요. 어짜피 같은 기어비기 때문에 물리는 알피엠 역시 같지만, 부스트를 믿어 보기로 하고ㅎㅎㅎ  3단으로 꼿아 넣었습니다.
'빵빵빵' 그 친구는 이미 R32 최대 토크를 뿜어내면서 민첩하게 움직입니다.
FT360이 랙이 별로 없는 터보기 때문에 3단에서도 듬직하게 치고 나갑니다만, 25mph에서 보여준 N/A R32가 상대적으로 더 민첩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였고 곧바로 FT360이 차이를 벌려놓았습니다.

③ 60mph
약간 고속 롤링이기에 다시 한 번 의사를 물어봅니다.
무슨 '못먹어도 고' 도 아니고... 아무튼 쏘기로 했지요.
순간 포럼에 대두되었던 Best Gear 투표가 기억이 났습니다.
예전에 권영주님이 여러차례에 걸쳐 R32의 시승기를 올리셨고, 서킷에서의 코너탈출시에도 R32의 3단에 대해 언급을 하신것 대로 N/A R32의 최고 인기 기어는 3단입니다.
그러나 FT시리즈 튠을 한 사람들의 기어투표에선 4단이 최고 인기 기어에 등극을 했었지요. 이유는 풍부해진 토크에 기인한 더 넓은 영역대의 속도를 3단처럼 커버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그 기억이 들자마자 주저없이 4단에 꼿아 넣었습니다.
'가자~'
땡기자 마자 N/A 3단을 넣은 R32를 25mph 롤링때와 비슷하게 제껴버립니다.
순정 3단이 보여줬던 감동의 한 두 배 정도 되는 느낌을 4단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차는 고속으로 달리고 있던게 아니야~'라는 걸 말하려는 듯 속도계는 정신없이 치고 올라가는데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5단으로 바꾸고 또 신나게 쏘는데 뒷편에서 하이빔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렇게 롤링스타트는 끝이 났지요.

-----------------------------------(에필로그)-----------------------------------
차를 세우고 얘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 모습을 살펴보니 열을 받기는 커녕 뿅 가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자기도 너무 터보 달고 싶다고...
'임마~ 내가 니 마음을 어찌 모르겠냐~?'
휠도 똑같이 산 따라쟁이인데... 어느날 불쑥 자기는 "FT400달았다고~ 달리자~" 할 날이 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언젠가는 '무림의 고수'에게 당할 날이 오겠지만, 현재로선 득의양양, 자신감 만빵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