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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멀리 퍼지진 않길 바라는거라.. 제 블로그에도 올리지 않을 예정이니 꼭 부탁드립니다.


한달 전, 아수라를 분해하고 처분하면서..
그 차와 지내왔던 수 많은 시간들이 아련하게 지나갔었습니다.
그리고 내 기억속에서만 묻히게 될 수많은 배틀과 사연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몇가지는 적어서 기록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아시듯.. 배틀 직후에는 이런 이야기를 적기 꽤 힘듭니다.
특히나 상대 차량이 희귀하다거나 알만한 차라면 폐가 될 가능성도 크고..
제 차 역시 굉장히 눈에 띄는 차 였기때문에.. 제 출퇴근길도 피곤해 질 수 있었죠.

그러다가 여러가지 이유(다음차를 위한 전략적 노림수까지)로 차를 분해하면서
지금 적는 '이제는 말할수 있다' 시리즈를 적어보고자 결심했었습니다만..
바쁜 일도 좀 많았고 귀차니즘도 겹쳤고 해서.. 못적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호텔방에서,
미뤄왔던 이제는 말할수 있다 시리즈의 첫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아마, 제 차(아수라)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신 분이라면..
가장 궁금해 할만한 배틀이라 생각하는 문제의 R8 과의 배틀부터,
단도직입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적어보렵니다.


아마 2007년 늦여름 경이었습니다.
당시 제 차의 스펙은 대략 450 마력, 아수라 버젼2.0 시절이었죠.
대략 당시의 아수라의 스펙을 참고삼아 먼저 적어놓습니다.

투스카니 2,0 GL 2003년식 / 6단 미션 스왑(엘리사 종감속)
카니발 터빈 트윈터보 / 오메가 1mm오버 단조 피스톤 / 판돈 단조컨로드 / 독립식 트윈배기
풀부스트 1.9바, 최고출력 450hp/7000RPM, 최고토크 50kgm/5700RPM
플럭션GT 에어로파츠, 스페셜 본넷 덕트, 좌우 색이 다른 투톤 도색(일명 아수라백작 도색) 


2007년 8월 말,
광주에 회의가 있어 내려갔다가, 광주 부모님 댁에 들렀었습니다.
와이프에게 출장 회의가 끝나면 일찍 올라오겠다고 했는데,
오랫만에 만난 동생과 수다를 떨다보니, 시간이 꽤 늦어버렸죠..

빨리 올라가야겠다 생각하고 11시 넘은 시간에 광주의 부모님댁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슬슬슬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속도를 올리고 있었죠.

그래도, 평소 웬만해선 혼자 지나친(?) 과속은 하지 않는 얌전한(?) 성격이라,
적당히 170km 정도 속도로 종종걸음으로 상경하고 있었는데..

백양사를 지나칠때쯤 뭔가 앞에 기묘한 차가 보입니다.


'차가 뭔가 넙적하고 낮네.. 뭐지 저거?'

낮고 넙적한 차체에 네모난 테일램프.. 각지게 꺾인 사이드미러..
처음 생각했던 차종은 GTO 정도로 생각했습니다..만,
GTO 와는 다른 느낌인데 뭘까? 뭐지 저거? 한참 고민했었죠.

그 차는 150km 정도의 속도로 보이고, 저는 160km 정도 속도..
다른 차선에는 티뷰론이 보이는데,  이 티뷰론은 뭔가 눈치가 묘합니다.
뭔가 의식하고 있달까.. 기묘한 옆 차를 보는건지 저를 보는건지..

암튼 좀 신경쓰여 잠깐 속도를 줄일까 하다가,
와이프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다시 속도를 살짝 올려 지나쳤습니다.
지나치면서 본 그 차는 자세히는 못봤지만 뭔가 기묘하더군요..

그래도 얌전히 저를 지나쳐 보내길래 곧 신경끄고,
오히려 왠지 곧 튀어나올듯한 티뷰론쪽을 보려는데,

갑자기 아까 그 차가 제 뒤로 다가와 붙습니다.
눈 밑에 이어진 기묘한 LED 라인.. 뭐야 저거.. 무슨 헤드라이트가 저렇게..
설마 이거 얼마전에 xx드림에서 봤던 그...R8??

그리고선 제 뒤에서 노골적인 배틀의사를 표시하더군요.
(상향등을 켰던듯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그리고 순간..
머릿속에서 배틀 스위치가 탁 켜졌습니다.
(제 경우, 스위치가 켜지면 갑자기 인격이 전환됩니다)

오호라.. 해보자는거냐?
무슨 차인 줄은 모르겠지만, 나도 고속도로에선 근 2년간 무패거든?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정도의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면서, 5단 시프트다운과 악셀을 깊이 밟아누르면서, 풀부스트.

1.9바 450마력 풀부스트의 파워를 전개하면서 튀어나가자,
뒤 차도 역시 파워를 전개해서 따라옵니다. 대략 거리는 10m 정도의 거리 차이.

오 이것 봐라?
너도 파워는 만만치 않다는거냐?
오랫만에 좀 비슷한 체급의 상대를 만났구만. 즐겨보자!!

그대로 서로 풀파워를 전개한채로 거의 직선에 가까운 고속구간을 내달렸습니다.
큰 차이는 안나지만 조금씩 거리가 벌어지는게, 파워는 제 쪽이 약간 위더군요.

그대로 250오버 상태로 밀어붙이다가 앞쪽에 좌코너가 다가옵니다.
여긴 호남고속도로 특유의 꽤 각이 큰 연속 좌우 S 자 코너..
지금 브레이킹에 들어가야 코너를 안전하게 돌아나갈 수 있을 듯 한데,
여기서 브레이킹을 할 경우 왠지 뒷 차에게 거리를 좁히거나 추월할 기회를 줄듯한 느낌.
머리가 쭈삣쭈삣 서는 기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스치더군요. 

일단 브레이킹 대신 악셀 오프.
테일램프에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엔진브레이크로 감속합니다.
그리고 뒷차와의 거리가 당겨지기 시작하지만 코너를 돌기엔 오버스피드.

해버릴까..? 해버릴까..?
예전부터 가끔 진짜 강적을 만났을때 반쯤 어쩔수 없이 쓰던..
스스로 '필살기' 라고 부르던 그걸 노려보기로 결심합니다.

머리가 쭈뼛거리는걸 꾹 참다가 한계점에서 브레이킹과 함께 코너 진입..
브레이킹으로 차의 중심을 앞으로 당겨서 접지를 앞으로 당겨서 뒷 바퀴 접지를 낮추고,
차를 옆으로 돌려서 한 차선 정도를 사이드 슬라이드.

본능적으로 카운터를 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차를 슬라이드 시킨 후,
다시  핸들을 풀고 풀악셀로 가속하며 코너를 탈출했습니다.
(FF차를 관성드리프트 시킬때는 두려움을 못이기고 카운터를 치면 차가 돌아버립니다)

1차선에서 2차선 끝까지 날아가긴 했지만, 깔끔하게 흔들림없이 슬라이드 클리어.
깔끔히 '필살기'를 클리어하며 쾌감과 함께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합니다.
뒤를 바라볼 여유도 없이  바로 반대방향 우코너가 다가옵니다.
이전 좌코너를 돌고나서 재가속으로 속도는 200 직전. 이번에도 깔끔하게 클리어.

다시 이어지는 직진. 호남 터널까지 풀부스트로 가속해나갑니다.
직빨이 나오고서야 룸밀러를 볼수 있을 만한 여유가 생겨서 룸밀러를 바라보지만,
첫 코너 직전까지 추격해오던 차가 안보입니다.

..어라?

속도를 줄입니다.
확실히 코너에서 내가 추월당하진 않았으니, 뒤에 있는건 맞을텐데?

속도를 100km 정도까지 떨어뜨린채 뒷 차를 기다립니다.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 설마 사고난거야?
아니면  완전히 서행하는건가?

그때 처음에 봤던 티뷰론이 빠르게 달려옵니다.

어.. 너도 왔냐.. 잊어버리고 있었군..
왠지 저를 의식하고 온듯, 제 옆으로 다가오면서
뭔가 메시지를 말하려는 듯이 비상등과 함께 속도를 줄입니다..

이미 완전히 아드레날린 상태였던 저는..
티뷰론이 나랑 다시 2라운드를 뛰자..라는 메시지로 생각하고,
다시 풀부스트 가속으로 달려나갑니다...

그리고 그 여세로 서울TG 까지 달려서,
광주 - 서울 TG to TG 로 1시간 30분(...)을 찍고,
집에 늦지 않게(???) 도착했습니다.
(대략 정상적으로 온다면 3시간 30분일테니 2시간 잡담한 것을 전부 상쇄)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아까 봤던 차가 R8 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허어.. 우리나라에도 이 차가 있었네..

그리고 문득.. 그 차는 어떻게 된걸까 생각이 듭니다.
새삼스럽게 미묘한 불안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혹시 사고가 났다면 xx드림에라도 올라올텐데..
..하지만 이후 며칠이 지나도 그런 이야기는 없더군요.

역시.. 그냥 속도를 줄인거였나?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더군요.

그리고 그냥 저만의 추억으로 잊어버렸는데..
한두달 뒤, 문득 지인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 R8 이랑 배틀 떠서 폐차시켰다며?

...어헉??????!!!!!

좌우 색깔이 다른 투스카니랑 달리다가,
호남고속도로 코너에서 날아가서 사고가 났다더라.
좌우 색깔 다른 투스카니는 네 차 밖에 없잖아.
그 차에 붙어있었다는 샵 스티커도 그렇고..
투스카니 운전자는 완전히 미친 놈이었다고 그러더만..
코너에서 200km로 브레이크도 안밟고 돌았다고..
(사실 안밟은건 아니고, 최대한 브레이킹 타이밍을 늦춰서 슬라이드로 돈겁니다만)

나중에 들려온 뒷이야기는.. 대략 저런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R8을 폐차시킨' 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저와 제 아수라에게 추가되었더군요..-_-
(그 전에는 '다이노 위에서 NOS 를 쓰다가 폭발한' 등의 괴이한 수식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덤덤하게 적습니다만..
사실 그 차가 폐차되었다고 들었을때, 먼저 운전자는 어땠는지부터 묻게 되더군요.
다행히 무사하다고 하자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불확실 속에 잊으려고 했던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사실 배틀중에 상대가 망가지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달까요..
이전까지는 상대가 위험하면 몸을 사리거나, 제 쪽이 여유가 있어서 미리 조심하거나 했지만..
오랫만에 대등한 상대를 만나서 필요 이상으로 한계주행을 해버린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처음으로 고속도로 배틀이 '무섭다' 라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이전까지는 한번도 배틀을 하거나 고속주행을 하면서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지만,
이 이후부터는 한계주행을 해야할때는 팔이 떨리는걸 이를 악물며 달리게 되더군요.
이건 확실히 '게임'이 아닌 '현실' 이란걸 새삼 실감했달까요..

그리고 이후부턴 제가 배틀을 뛰게 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고..
결국 2008년 가을, 차를 분해하고 당분간 고속도로 은퇴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와서 공개적으로 말씀드립니다만..
당시 R8 운전자분께 사과드립니다.

제가 불리하더라도 정석적으로 브레이킹을 하면서 그립으로 돌았다면,
그런 사고는 없었을거라는 생각에 이후 몇번이나 후회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고속도로를 달리시는 현역 러너 여러분께는..
같이 달리는 상대를 적이 아닌 동료로 인식하고 서로를 지켜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네요.
승부의 쾌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같은 세계의 동료로써, 파트너로써 서로를 배려해주시길..


* 이 글을 다른 사이트나 블로그로 퍼가시는 것은 금지합니다.
  너무 멀리 퍼지진 않길 바라는거라.. 제 블로그에도 올리지 않을 예정이니 꼭 부탁드립니다.


P.S..지금은 제 아수라도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해,
완전 분해해서 순정으로 되돌린 후, 도색까지 새로 해서 이전의 투톤 도색을 지워버리고,
지금은 순정이 된 차를 중고차 매매상에 넘기려고 놔둔 상태입니다(바빠서 아직 못넘겼지만)
..굳이 매매상으로 넘기려는건, 저 역시 이 차의 행방을 알 수 없도록 하려고..입니다.

..어쩌면 다음 주인이 우연히 이 차의 내력과 옛날 이름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나름 그 분에겐 재밌는 경험이 될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제게 물어본다면 전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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