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노트를 즐기려면 볼륨업!!
박화요비만 틀어놓지 않았더라도 사운드가 훨씬 생생했을텐데 아쉽네요.



독일 A3 아우토반에서 잠시 같이(?) 달렸던 F430입니다. 배틀 혹은 versus라는 단어조차 쓰기 힘든 상대이지만 우측추월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1차선이 막히면 금세 꼬리를 잡을 수 있더군요.
 
뒤따라오는 차가 있으면 무조건 자리를 내주고 우측추월이 철저히 금지되는 아우토반의 교통법규가 부러울 때도 있지만  위와 같은 상황이면 참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무법천지 고속도로가 고출력 스포츠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행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고의 위험은 훨씬 높죠.
 
아래는 제 홈피(http://www.donga.com/e-county/column/column_06_pe.html)에 올렸던 내용의 일부 발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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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무제한, 노면이 좋고 시원하게 뻗은 도로, 영민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운전자들, 게다가 공짜.
바로 독일의 아우토반이다. 빌리홀리데이를 들으며 운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아우토반을 달려보고 싶을 것이다. 기자는 그동안 몇 차례 아우토반을 달려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단숨에 독일의 아우토반만 2000km를 내질렀다. 물론 빌리홀리데이 CD도 가지고 갔다. 이제는 아우토반에 대한 미련도 없고 환상도 없다.

▼아우토반의 현실▼
아우토반을 실컷 달려본 소감을 먼저 말하라면 예전보다 재미없고 속도를 내기도 힘들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반과 2000년에 이어 세 번째 아우토반에 오른 것인데 그 때보다 통행량이 훨씬 늘어났고 속도무제한 구간도 상당히 줄어들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유럽연합의 출범과 동구권의 급속한 경제성장, 자동차보급률의 증가 등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독일 아우토반의 통행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때문에 평균 주행속도가 한국보다 높기는 했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아우토반의 속도무제한에 대한 환상은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끝났다고 말하고 싶다. 10년 전보다 승용차의 평균 출력은 20% 정도 높아졌지만 아우토반의 평균 주행속도는 20% 이상 감소한 것 같다.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아우토반의 주행속도가 계속 떨어지고 속도제한구간도 늘어나자 일부 독일인들은 유료도로로 전환해서라도 ‘세계 최고속’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아우토반은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낮 시간대에 대충 흐름에 맞춰 달리면 휴게실 한 차례 방문을 포함해 서울~부산거리(약 420km)를 4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는 수준이다. 평균주행속도가 120km/h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평균 120km/h가 나오려면 속도를 낼 수 있을 때는 꾸준히 150km/h 이상을 달려야 하고 속도무제한 구간이 나오면 180km/h 정도는 뽑아줘야 달성 가능하다. 중간 중간 60~80km/h가 제한속도인 공사구간과 체증구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주행했던 아우토반의 속도무제한 구간은 20% 정도에 불과했고 70%는 제한속도 100~120km/h, 나머지 10%는 공사구간이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대부분 제한속도에서 20~30km/h 더 높은 속도로 달렸다. 드물게 제한속도와 상관없이 도로상태가 좋으면 180km/h 이상으로 정속주행(?)하는 운전자도 있었지만 속도무제한 구간이라도 150~160km/h가 대세였다. 대략 200km/h로 달리면 1차선을 내줘야 할 상황은 거의 없었다.

10여년 전 아우디 80(1800cc 수동 5단)으로 속도무제한 구간에서 180km/h까지 올렸지만 1차선에서 1분을 버티기기 힘들었던 때와는 달랐다. 거기다 30분 이상 속도무제한 구간이 이어지는 곳도 없어 10~20분 정도 달렸다싶으면 곧 속도를 줄여야 한다. 독일 교통당국은 속도무제한 구간이라도 사고예방과 고속주행 중 과다배출되는 공해물질을 줄이기 위해 운전자들에게 130km/h를 권장한다. 독일인들은 아우토반에서 속도무제한으로 달리던 시절을 무용담처럼 후세에게 들려줄 때가 곧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에피소드1▼
그래도 아우토반은 아우토반이다. 간혹 만나는 스포츠카들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운전을 지겹지 않게 해줬다. 6월 8일 낮 12시10분.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출발해 독일 뉘르부르크링(유명한 서킷이 있는 곳) 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독일 남부지방에서 본으로 향하는 A3 아우토반을 흐름에 맞춰 1차선에서 150km/h로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주파수가 높은 배기음이 들린다. 페라리 사운드였다. 룸미러로 보니 500m 정도 뒤에 '이탈리안 레드'가 얼핏 보였다.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붙였다. 속도계는 10초안에 180km/h까지 올라갔지만 더 이상 1차선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이미 룸미러는 정열적인 빨간색으로 꽉 차있었기 때문이다.



서행 차량에 막혀 안절부절하는 페라리 F430


길이 뚫리자 쏜살같이 멀어져가는 페라리(속도무제한 구간임을 알리는 좌우의 사선표지판)



잠시 2차선으로 옮겨 페라리를 추월시킨 뒤를 따랐다. 동시에 소니 P10 디지틀카메라의 전원을 켰다. F430이었다. 490마력에 최고속도가 310km/h에 이르는 무서운 녀석이다. 왼손으로 스티어링휠을 잡고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조작하며 빨간 궁둥이를 쫓았다. 한국에서 수많은 차종을 극한까지 테스트하며 익힌 풍부한 초고속주행 경험이 Over 200km/h에서도 한 손으로 운전하며 카메라까지 만지작거릴 여유를 갖게 해줬다. 물론 벤츠의 고속주행안정성도 한몫했다. 동영상에서 카메라의 앵글이 갑자기 크게 흔들린 것은 카메라를 잡은 손으로 변속기를 스포츠모드로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E240의 속도계는 200km/h를 넘기며 힘겨워 하기 시작했지만 페라리에게는 무덤덤한 속도일 따름이다. 앞서 달리던 차들 때문에 함께 200km/h로 잠시 주행하다 길이 뚫리자 페라리는 심장까지 울리는 사운드만 남기고 까마득히 멀어져만 갔다. 계기판은 210km/h를 넘겼지만 그렇게 느리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F430이 콩알만해진 뒤에도 여전히 '페라리 노트'는 아우토반을 진동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차선에 150km/h 정도로 서행하는 차들이 나타나면서 금세 빨간 꽁무니가 보인다.

그렇게 차선이 뚫리면 멀어지고 앞차에 막혀 곧 다시 잡고 하기를 몇 차례. 아무리 페라리라도 아우토반에서는 1차선이 시원하게 뚫리지 않으면 우측추월금지 규정을 어기지 않는 한 벤츠 E240도 쉽게 따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앞차에 막혀 안절부절하던 페라리가 갑자기 우측추월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아우토반의 철칙이 무너질 것인가? F430은 2차선으로 바꿔 추월하는가 싶더니 다시 3차선까지 들어간다.

다행히 페라리는 마인쯔 방향의 램프로 빠져나갔다. 우측추월이 아니라 갈림길로 빠져나가려고 차선을 변경했던 것이다. 나가면서도 상쾌한 엔진음을 들려주는 센스는 잊지 않았다. 그 뒤로도 과속은 심심치 않게 목격했지만 우측추월을 하는 차는 아우토반에서 단 한대도 볼 수 없었다. 도로사정이 허락하고 교통법규가 철저히 지켜진다면 어느 정도의 속도는 사고의 요인이 아니었다.


▼에피소드2▼
같은 날 오후 6시경 뉘르부르크링에서 100km(5바퀴)의 서킷체험주행을 마치고 진샤임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A61번 아우토반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속도무제한 구간에서 200km/h를 넘나들며 1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진샤임에 도착해 숙소를 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웬만한 차량들은 미리미리 알아서 피해준다. 간혹 트럭을 추월하기 위해 1차선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있었지만 충분한 거리를 두고 끼어들었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없이 가속페달만 놓아 속도를 줄이면 금세 1차선이 다시 뚫린다. 508마력의 심장을 가진 SL55AMG 같은 차들도 200km/h 정도만 유지하며 출력이 절반도 되지 않는 E240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렇게 얼마쯤을 달렸을까. 멀리서 엔젤아이(BMW 전조등)가 다가왔다. E39 5시리즈. 2차선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가속페달로 킥다운스위치를 눌렀다. 210...220...230...234km/h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아우토반 1차선을 점령하기에는 허약한 심장이다. E240의 V6 2597cc 170마력 엔진은 터질듯한 소리를 내며 “나 이제 한계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엔젤아이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슬금슬금 접근한다. 다행히 커브길이 다가왔다. 출력은 열세라도 커브길에선 자신이 있었다. 한국에서 테스트드라이브를 하며 경험한 수많은 초고속주행, 게다가 방금 뉘르부르크링에서 실력까지 갈고닦았지 않은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코너로 들어섰다. 200km/h까지는 견딜만한 곳이었지만 230km/h를 넘긴 상황에서는 쉽지 않았다.(아무래도 속도무제한 구간이 끝났다는 표지판을 놓친 것 같다.) 게다가 피렐리 P7타이어의 접지력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해 언더스티어가 슬슬 일어나며 차가 조금씩 중앙분리화단 쪽으로 향한다. 다행히 접지력의 여유는 있어서 스티어링으로 궤도를 유지하며 빠듯하게 코너를 돌아나왔다. 이제는 떨어졌겠지.... 슬쩍 룸미러를 봤다. 아니 이럴 수가... 이제는 아예 운전자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이다.(아우토반에서 이렇게 바짝 뒤에 붙으면 중대한 교통법규 위반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40대 중반은 돼 보이는 여성운전자였다. 직선구간이 나오자마자 2차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천히 옆을 추월해 지나간다. 240km/h정도 되는 것 같았다. 엄지손가락을 올려주고 싶었다. 등급을 알리는 배지가 없어 배기량은 알 수 없었지만 배기가스 냄새로 봐서는 디젤엔진은 아니었다. 가속력으로는 볼 때 530i나 535i정도로 추정됐다. 18인치 휠에 타이어폭은 265mm정도였다. 그 정도면 UHP(초고성능)급 타이어다. E240의 타이어는 폭 225mm에 HP(고성능)급이다. 타이어와 출력의 열세로 코너에서 따라잡혔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무서운 독일의 아줌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