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자동차 잡지의 매력에 심취해있을 무렵인 중학교 3학년 잡지에서 본 BMW E34 5시리지의 튀어나갈 것 같은 다이나믹한 모습은 평생 머리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80년대 후반, 지금과 같이 일본차가 기술적으로 숙성되기 전에 탄생되었던 독일제 E34 5시리즈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온보드 자기 진단 기능을 포함해 강한 섀시강성으로 무장하고, 오직 벤츠 W124 E클래스 이외에는 완성도를 가지고 전세계에 E34와 대적할 수 있는 중형세단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88년부터 95년까지 생산된 E34는 필자가 캐나다 유학시절 92년형 525i를 소유하면서 드림카중에 하나였던 차를 손아귀에 넣는 기쁨을 가졌지만 유학을 마칠 무렵 팔 수 밖에 없어 그 인연이 필자와 그리 길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도 거리에서 간혹가다 마주치는 E34 5시리즈는 어릴 때 잡지를 통해 보며 동경했던 기억이 강해서 인지 볼 때마다 자극을 받고 멀리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 나를 돌아보면 그만큼 어릴 때의 기억이 강렬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34의 최고성능 버전인 M5는 실제로 2세대 M5이다.

85년부터 87년까지 생산된 E28이라는 코드를 가진 1세대 M5(285마력 I6 3.4)가 존재했었지만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았고, 존재감도 E34나 E39에 비해 약했었다.



88년부터 91년말까지 생산된 E34 M5는 3.6리터 315마력을 가졌고, 92년부터 95년 상반기까지 3.8리터로 배기량이 커지고 출력도 340마력으로 올라갔다.



단종 직전에는 옵션이던 EDC3기본 장착, 18인치 휠에 6단 수동변속기 그리고 347마력의 최고출력으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이번에 시승한 차종은 94년식에 뉘르브르크링 패키지 사양으로 19mm 스테빌라이저와 EDC3(Electronic Damper Control)를 가지고 있고, Self leveling기능까지 갖춘 사양이다.

물론 5단 수동이며, 6개의 individual throttle body를 가지고 있다.



회전한도는 7200rpm으로 기통당 600cc가 넘는 제법 큰 실린더 용적에도 불구하고 회전한도가 상당히 높고, 실제로도 고회전 세팅의 엔진이다.



E34 M5는 마지막으로 수공으로 만들어진 M버전 차량으로 당시 535i의 기본 차대를 M Gmbh로 가져와 손으로 6주에 걸쳐 조립한 수공 조립 모델이다.



당시 경쟁 차종이었던 벤츠 W124 E500이나 아우디 RS2와 비교하면 무게중심이 더 낮고, 핸들링과 밸런스가 더 우수하다.



요즘에 흔히 볼 수 있는 전자장비는 전혀 없다.

ABS이외에는 아무런 전자장비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고출력 후륜을 다룬다는 것을 늘 잊어서는 안된다.



그만큼 다루기에 따라서는 터프한 면도 강하게 어필한다.

세미 버킷 시트는 감촉이 적당히 단단한 것이 몸에 잘 맞고, 클러치 패달의 탄력이 크다.



가속패달 역시 6개의 쓰로틀에 걸려있어서인지 상당히 무겁고, 이차를 운전하는 운전자의 가속패달 조작만 봐도 이차에 적응이 되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쓰로틀 전개에 따른 파워 분포가 중간 이후에 몰려 있기 때문에 가속패달을 중간 이상 밟았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확실히 구별된다.



시내에서 3000rpm정도를 사용하면서 주행하면, 300마력이 넘는 고출력 세단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40.8kg의 최대토크는 4750rpm에서 발휘되며 최대출력 340마력도 고회전인 6900rpm에서 발휘된다.



요즘 BMW에서는 8000rpm을 돌리는 E46 M3의 엔진도 존재하기 때문에 7000rpm을 돌리는 엔진이 그리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630cc가 넘는 실린더내의 용적과 피스톤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관성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화염전파속도에 대한 부담이 경량 실린더와 비교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실린더 용적이 큰 엔진이 고회전을 마크한다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체인지레버를 넣고 빼는 느낌은 스트로크가 길어서 그다지 스포티하진 않다.

다만 요즘 흔치 않은 수동변속기를 모는 재미가 기본적으로 밑바닥에 깔려있을 뿐이다.

가속패달에 힘을 주었다.



5000rpm에 이를 때까지 토크가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하고, 그 이후에도 7000rpm을 넘어 회전한도에 걸릴 때까지 토크곡선의 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게 뻗는다.



2단 100km/h를 찍는데 걸리는 시간은 제원상 5.9초이다.

고속화도로에 올려 3단부터 시작해 가속을 해보면, 시내의 짧은 거리에서 가늠할 수 있는 엔진의 힘보다 훨씬 큰 힘을 경험할 수 있다.



그만큼 고회전 영역에 힘이 집중적으로 실려있다는 뜻이다.

3단 160km/h를 넘어서 4단 바톤 터치 그리고나서 마지막 주자인 5단으로 바톤을 넘겨주는 시점이 210km/h이다.



210km/h에서 시작된 5단 가속은 한번도 쉬지 않고 270km/h를 단숨에 점령해 버린다.

이때가 7000rpm이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250km/h 속도제한 장치는 제거된 상태이다.

5단의 200km/h이상의 영역에선 엔진이 어차피 고회전으로 돌고 있기 때문에 이 엔진의 몰려있는 힘을 맘껏 사용한다.



240km/h로 항속하는 상황에서 오른발의 부담이 전혀없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240km/h항속에서도 풀쓰로틀을 통해 260km/h를 넘어가는 속도계 바늘을 쉽게 볼 수 있다.



250km/h영역의 크루징이 엔진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오일온도가 안정적이고, 하체의 댐핑도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EDC는 노말모드와 스포츠 모드 두가지가 있는데, 스포츠 모드에선 상당히 하드해진다.

노면의 바운스에 저항하는 능력이 노말모드보다 훨씬 강해져서 애프터 마켓 서스펜션에 대한 갈증이 전혀 없다.



요즘 DSC(Dynamic Stability Control)가 장착된 BMW의 경우 트랙션 컨트롤과 자세 제어 장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노면의 기복이 있는 곳에서 300마력이상을 저단에서 남용해도 급격한 모션이 억제되지만 E34의 경우 코너에서 가속패달을 잘못 다루면, 여지없이 파워 오버스티어로 돌변해버리기 때문에 후륜에 집중된 고토크의 파워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전륜 235/45.17 후륜 255/40.17사이즈 타이어는 전륜 8J 후륜 9J휠에 조립이 되어 있다.

넉넉한 타이어 사이즈와 휠폭은 이 녀석이 본격적으로 작정을 하고 태어난 녀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여전히 매력적인 주행성능과 늘 맘에 드는 고속 브레이킹 밸런스는 한시대를 풍미했던 지존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충분하다.



단 오래된 BMW의 경우 조향부분 부싱류의 수명이 짧고, 유격을 발생시켜, 스티어링 휠이 조금 느슨해지는 현상 때문에 처음 운전하는 사람들에겐 넓은 타이어의 노면타는 현상과 함께 직진안정성을 의심하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E34 M5는 타는이의 이해를 요구하는 폭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세단처럼 보이지만 그 뒷면에 운전자에게 요구하는 잔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그 기준은 바로 운전자에 달려있다.



E34 M5를 어느 정도까지 몰아붙이느냐에 따라 차의 일생이 끝나는 시점까지 525i와 같은 성격으로도, 또는 911과 아우토반에서 나란히 달릴 수 있는 터프가이로서 운전자는 안락과 긴장의 영역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testkwon-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