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의 공냉식 엔진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었고, 카레라 4가 투입된 이후 993터보를 포함한 이후의 터보 모델은 GT2를 제외하고는 4륜 구동 시스템을 가진다.



그동안 경험한 포르쉐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녀석은 55년식 550스파이더였고, 80년대 초반과 후반 모델들에선 철창에 갖혀있는 듯한 느낌, 즉 강인한 쇠냄새에 매료되었다면, 993은 내 나이와 주로 내가 경험했던 차들과 비교한다면 충분히 구별되는 특성 때문에 다분히 현대적이면서도 아이덴티티의 희생이 적었다는 이유로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고, 996에선 포르쉐의 첨단 기술로 숙성의 극한을 보여주지만 개인적으로 복스터와 공유하는 실내 인테리어와 프레임레스 도어에 익숙해지려면 약간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번에 시승한 92년형 964터보는 3.3리터 320마력 후륜구동이다.

5단 수동변속기였으며, 오너의 극진한 관리하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컨디션과 주행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냉식 포르쉐를 다시만난 것은 지난 2001년 여름 이후니까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실내에 들어가서 각종 장치류들을 둘러보면 70년대 후반 현대 포니모델과 비슷한 점이 많다.

누르는 스위치가 아닌 잡아당기는 류의 레버들이 많고, 스위치에 아무것도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선루프나 파워 사이드 미러를 조작하려면 한참을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한다.



시동을 걸면 들리는 털털거리는 음색은 포르쉐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부드러움과 너무도 동떨어지고 밸런스가 좋을 것이란 기대를 하지 못한다.



운전석에 앉아 시트 포지션을 잡는데, 자세 수정을 미세하게 15번은 한 것 같다.

대충대충 운전자세를 잡는 것은 고성능 차를 대하는 예의가 아니라는 점과, 워낙 조작과 조정을 위해 상당한 물리적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만 흐트러진 자세에서도 차를 다루는 감각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커다란 스프링이 안쪽에 들어박혀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만들 정도로 무거운 바닥에서 솟아난 클러치 패달과 브레이크 패달의 감각은 993까지는 거의 동일하다.



나중에 911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하체 운동을 게을리하면 안될 것이 어지간하게 건강한 하체도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몰면 무릎이 시릴지도 모르겠다.



허리부근에서 다가오는 음색은 개인적으로 다른 그 어떤 엔진과도 음색을 비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회전의 허스키함 뒷면에 고회전에서 엄청 고르고 투명한 음색을 낸다는 이유로 최고의 사운드로 평가하고 싶다.



흡기나 배기공명음에 의존한 사운드가 아니라 엔진 자체가 돌아가는 소리를 100%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가...



1단에서 2단으로 변속할 때 클러치를 제대로 연결시키면, 조수석 승차자 머리가 헤드레스트에 부딪치듯 강한 펀치로 밀어붙이는데, 2단 7000rpm에서 140km/h를 마크하며, 3단은 180km/h까지 가능하다.

4단 6500rpm에서 220km/h를 마크하고, 5단 7000rpm에서 계산상 290km/h를 달릴 수 있는 기어비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조작, 예를들어 변속기는 가볍지만 브레이킹과 클러치 조작, 스티어링 조작이 엄청나게 무겁고, 차자체가 장갑차와 같은 무게감을 주는데, 어지간히 고출력에 적응이 되어있는 운전자라하더라도 출력의 크기를 떠나서 이와같은 기본적인 조작의 능숙함을 가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소질이 있는 운전자는 시간만 투자하면되지만 소질을 떠나 운전에 아무런 철학이 없는 운전자가 964터보의 기본조작을 익히는 것은 시간투자만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그들에겐 달구지나 경운기와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전륜 205/50.17, 후륜 255/40.17 P-zero타이어는 노면을 엄청 많이 타기 때문에 스티어링을 어설프게 한손으로 잡는다거나 스티어링휠에서 너무 멀리 앉으면 순간순간 좌우로 튕기는 911을 통제하지 못한다.

뒤통수에 공냉식 엔진의 사운드가 부딪치면 발끝까지 그 감동이 전해져, 손과발이 겸손해짐과 동시에 독일식 스포츠카 만들기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긴다.



중미산으로 가는 도중 엔진의 회전 특성을 파악해보니, 대략 3600rpm에서부터 토크가 급격히 상승하고 7000rpm까지 토크 하강없이 그대로 밀어붙인다.



시프트 업 후에도 rpm이 4000rpm이상에 걸리기만하면 순간적으로 튕기듯 밀어붙여주기 때문에 운전자는 노면의 상황에 따른 차의 모션에 집중해야 한다.



노면이 좋지 않은 곳에선 변속을 위해 스티어링휠에서 오른손을 잠시 떼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중미산 입구에서부터 업힐로 가속을 해나갔다.



오르막은 RR엔진의 911에겐 전륜이 더욱 더 가볍게 느껴지긴 하지만 코너에선 여지없이 오버스티어를 주의해야한다.



스티어링 휠을 90도 이상 꺽으면 그 반발력이 더 커지는 느낌으로 코너 중에 가속패달 조작에 따른 차의 모션변화가 크고, 후륜이 밖으로 나를 땐 엄청난 육중함에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300마력 오버의 비슷한 출력대의 일제 후륜 스포츠카와 비교한다면 클리핑 포인트를 빠져나와 풀쓰로틀로 치고나오면서 후륜이 밖으로 살짝 빠지는 느낌이 구별된다.



일단 빈도가 작다는 점과 911이 코너에서 엄청나게 평형성이 좋은 것으로 인해 좌우 바퀴의 지면에 대한 하중량차이가 적어 출력을 후륜에 최대한 실어도 안쪽 바퀴의 공전으로 인한 쓰로틀 오버스티어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다.



단  후륜이 흐를 때 그 시작점을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이 느끼기 힘들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아주 미세하게 흐르는 그 순간에 대한 대처없이 방치해두면 911의 궁둥이가 한계를 넘어 튕기면 엄청난 무게로 밖으로 내던져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964터보는 993 카레라2와 비교해도 다루기가 훨씬 어렵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블로우 오프 밸브가 없는 터보엔진의 액셀 오프시 꿀럭임에 대한 제어도 운전자가 신경써야 하는 대목이다.



가속패달을 서서히 놓아야 차가 울컥이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는 가속패달을 밟는 것보다 놓는 것에 더 집중해야 밸런스를 잃지 않는다.



제동력은 두말하면 잔소리일정도로 제동시 거동 밸런스와 바퀴에 가해지는 제동력이 무지막지하지면 오른발의 힘의 강약에 이보다 더 정밀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964터보는 엔지니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한다.



요즘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타겟으로 해 차를 팔아야하는 마케팅적 측면이 엔지니어의 입김보다 강한 시점에서 포르쉐 964가 개발될 때까지만 해도 마케팅쪽에서 과연 엔지니어링에 관련된 발언에 한마디나 제대로 했을까?

찍소리도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커다른 쇳덩이를 깍아서 만들어낸 것과 같은 강성은 911이 구조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차만들기에 대한 기본기가 차별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간 숙성에 숙성을 거듭해 포르쉐 주행철학에 대해 책 몇권은 나올 정도로 신봉하는 매니어들이 탐구하게 하고, 그속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는 즐거움을 부여한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언젠가 가지고 싶은 911을 소유했을 때를 위해 대비하고 준비하는 과정 역시 행복하고 의미가 있으리라.



964터보는 나를 단세포 생물로 만들었다.

단점을 찾고 싶지 않은 몇 안되는 차인 것이 분명하다.

-testkwon-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