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데뷔한 구형 BMW E34 5시리즈는 96년 신형 E39에 바톤을 넘겨주기까지 결점 없는 명실상구한 스포츠 세단이었다.
89년형 E34 525i나 535i를 타보면, 80년대에 이정도 수준의 차를 이미 생산할 수 있었던 그들의 기술력에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는다.
완벽한 바디 밸런스와 낮은 무게중심은 구지 신형의 등장을 재촉하지 않아도 명성을 유지하기에 충분했었고, 다양한 엔진 베리에이션으로 선택의 폭 역시 다양했다.




구형의 경우 국내엔 520i와 525i 그리고 94, 95년에 8기통 엔진을 가진 530i가 수입되었었으며, 독일 현지와 북미엔 8기통 4리터 사양의 540i도 판매되었다.
날씬한 몸매에 부릅뜬 눈 주변의 분위기에서 카리스마를 느꼈다면 92년 3시리즈부턴 안경을 씌워 점차로 마일드한 마스크로 변해가고 있는 듯 하다.
E39 신형 5시리즈는 탄탄하고 군살없던 E34바디와 비교하면 조금은 살이 찐 듯 뚱뚱해 보이고, 약간은 모범생 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BMW의 존재를 알리기 충분할 만큼 곳곳에 전통의 디자인 계승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어필한다.
Anti round의 일환으로 보이는 창살과도 같이 날카로운 사이드 스크래치는 평범한 터치라고 보기엔 너무도 강렬하고 역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번에 시승한 540i는 M5를 제하고 나면 5시리즈의 최강이자, BMW내에서 손꼽히는 스프린터이다.
여기에 오너에 의해 BMW의 튜닝 파트만을 만드는 Hamman 모터스포츠로부터 바디킷(프론트, 리어 에어댐, 사이드 스컷, 리어 스포일러, 사이드 리어 뷰 미러, 루프 스포일러)과 19인치 휠(Hamman PG-2), 그리고  Hamman 배기시스템이 더해졌으며, 서스펜션은 코니 쇽 업소버에 H&R이 매치되어 있다.
3시리즈는 물론 그러하지만 5시리즈 역시 오너드라이브를 위한 차인지라 아직까지 뒷좌석의 안락도가 그렇게 높지 못하다.
시트는 덩치가 큰 사람을 충분히 소화할 만큼 포근하지만 다리를 위한 공간이 차의 전장과 비교하면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
이그니션을 돌리면 작동되는 엔진은 740i, X5 4.4, 그리고 M5엔진의 5리터 엔진의 모태가 되는 엔진으로서 282마력을 5400rpm에서 만드는 고 토오크 엔진으로서, 스텝트로닉으로 불리는 5단 자동변속기와 결합되어 있다.
수동 6단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북미에서도 수동 6단을 가진 540i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큰 엔진이 공회전 중엔 더위를 유난히 많이 느끼는 모양인지 엔진 스스로 팬을 켜는 시간이 다른 엔진에 비해 길게 느껴진다.
때문에 시동을 걸고 시내주행을 하는 동안엔 팬소리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두툼한 스티어링 휠은 시각적으로도 구형에 비해 작게 보이고, 실제로도 약간 작은 직경을 가지고 있다.
신형 5시리즈가 데뷔하자마자 6기통 520i를 시작으로 523i와 528i를 시승해 본 터라 주행감각 자체는 필자에게 상당히 익숙한데다 코니 쇽 업소버와 H&R 스포츠 스프링으로 세팅된 서스펜션은 더욱 쉽게 차에 적응하게 만든다.
96년 초기 6기통 5시리즈에 장착되었던 변속기와 2000년형 540i에 장착된 5단 변속기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변속질감이 우수하고, 구형변속기가 킥다운을 걸면 약간 멈칫하다가 튀어나가는 느낌이 전혀 없다.
킥다운 뿐 아닌 레드존에서 변속이되는 최대가속상황에서도 변속직후 순간적으로 앞으로 튕기는 느낌없이 그냥 부드럽게 파워가 전달된다.
이 대목은 다이나믹한 차의 거동을 갈구하는 운전자에게 너무 부드럽고 밋밋한 시프트 업이라는 불만의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동승자 입장에선 부드러운 파워전달로 인해 훨씬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8기통 4.4리터 엔진은 그 펀치와 토크가 대단한 엔진이다.
8기통은 미국 머슬카의 전유물로 늘 토크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엔진이지만 미제 엔진이 초반에 너무 큰 펀치를 선사하는 반면 5000-6000rpm에서 너무 싱겁다면, 독일제 8기통 엔진은 엔진회전 리미트가 걸리기 직전까지 확실하게 차를 당겨준다.
머스탱의 8기통 4.6리터 엔진과 비교해 출발을 요란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4500rpm을 넘으면서 시프업을 강요하는 포드의 8기통이 비해 여전히 밀어붙이는 4500-5500rpm 이 1000rpm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컨셉을 대변한다 하겠다.
8기통 4리터가 넘는 엔진이 6000rpm이상 도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관성의 법칙과 연소공학에 의해 피스톤의 부피가 큰 것을 감안하면, 고속에서 작은 실런더를 가진 엔진이 커버할 수 있는 고회전을 감당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양산 8기통 엔진이 6000rpm혹은 그 이하에서 회전이 제한된다.
메르세데스 벤츠 C43 AMG에서도 느낀 대목이지만 강력한 엔진이 초강력 브레이크와 강체와도 같은 서스펜션에 의해 완벽하게 컨트롤된다 것에 다시한번 주목하게 된다.




이번엔 5시리즈의 서스펜션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접근할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차가 정차중에 유지하는 무게중심이 50:50이라 해도 주행중에 이 밸런스는 셀 수 없이 자주 깨지고 흐트러지게 된다.
때문에 50:50무게배분을 가진 차종이라고 모두 같은 몸놀림을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게배분을 뒤로하고 가장 이상적인 자세교정을 위한 조건은 바로 브레이크 패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그리고 반대로 가속패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무게중심에 정차중에 유지하는 그 위치로 얼마나 빨리 되돌아가느냐로 요약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브레이킹을 마친 직후 패달에서 발을 뗄 때 앞으로 쏠렸던 무게중심이 원래의 자리로 얼마나 빨리 되돌아가느냐, 가속중 가속패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뒤로 이동했던 무게중심이 제자리로 얼마만큼 빨리 되돌아가느냐와 무게중심의 이동폭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자 핸들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핸들링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 한다면 코너에서 얼마만큼 빨리 안 미끄러지고 도느냐하는 일차원적인 평가방법에서 제동 후 턴인(turn-in), 가속 후 브레이킹, 제동중 조향 등등을 모두 고려한 평가방법으로 좀 더 진화시켜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 드라이빙도 어느정도까지 한계에 접근시키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코너에 진입전 강한 브레이킹을 해야하는 조건을 놓고 보면, 제동시 앞으로 쏠렸던 무게중심이 제자리로 재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턴하는 순간 브레이크 패달을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뒤가 밖으로 흐르는 현상에 대한 대비를 항상 하지 않으면 안된다.
코너진입 전부터 60km/h로 항속을 하면서 코너를 돌아나아나가는 상황과, 고속에서 강한 브레이킹으로 속도를 60km/h까지 떨어트린 직후 제동없이 턴을 하는 상황은 진입속도와 스티어링을 조작하는 순간 운전자의 동작이 같다할지라도 완벽하게 다른 조건이라는 말이다.
BMW 5시리즈를 오랜시간 운전하면서 수없이 많은 상황을 연출하며, 깨달은 내용은 무게중심의 원위치 이동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과 이동폭이 적다는 것이었다.
테일리프트와 전륜이 들리는 스쿼드 현상을 통틀어 대변하는 피칭이 그만큼 적고 특히 제동시 뒤가 뜨는 대신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가 자동차 본연의 도구로서 점차로 그 평가가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현상황에서 세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는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만한 스페셜 차종의 부족, 브랜드 파워의 부족 등으로 요약된다 하겠다.
540i는 6기통 5시리즈만큼의 판매를 보이진 않지만 BMW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항상 고성능 차종을 기억하고, 선망한다.
때문에 자동차 경주에 사용되는 머신이 양산차와 다른 부품을 사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스에서 얻은 차량의 이미지를 양산차에서 떠올리는 것이다.




각 차종별로 이미지를 리드할 수 있는 고성능 사양의 차종은 나머지 하위 그레이드 차종의 이미지까지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540i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차종이다.
아직까지 포니를 기억하는 외국인들에게 현대라는 브랜드는 너무 이미지가 약하다.
도요다가 소형차메이커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새로운 이미지 창출에 대한 부담감과 딜러를 독립시키는 비용을 감수해 가면서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혼다가 아큐라를 닛산이 인피니티라는 새로운 이름의 브랜드를 창조했듯 우리에게도 자동차만을 떠올리게하는 강력한 브랜드의 개발, 더불어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만한 고성능 차종이 필요한 때이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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