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의 데뷔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복스터와 부속의 상당수를 공유했고, 엔진이 수냉식으로 바뀐 것에 대한 초창기 거부감이 실제로 작지 않았다.




현재의 996은 복스터와 차별화하기 위해 헤드램프의 디자인을 바꾸어 급한 불을 끈 셈이지만 초창기 996이 데뷔했을 때 911의 마스크가 복스터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911매니어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996은 911이 변천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전세대와 비교해 가장 큰 변화를 가한 차종으로 평가된다.




일단 커진 차체와 냉각방식이 바뀐 것을 비롯해 실내디자인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
시승차는 99년형으로 3.4리터에 300마력을 발휘한다. 2002년형부터 신형 M3를 의식해서인지 3.6리터로 배기량이 늘어나고 출력도 20마력이 더 부여되었다.




포르쉐 컨버터블은 북미에서는 상당히 눈에 띄는 컨셉이고, 고성능 로드스터의 표본일지도 모른다.
시승차는 옵션인 하드탑을 가지고 있었고, RUF 18인치 휠을 장착하고 있었다.
프레임이 없는 도어이지만 여전히 열고 닫을 때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시동을 걸면 들리는 음색은 좀 더 부드러워졌지만 공냉식, 수냉식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면 993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음색이라고 생각한다.




허스키한 기본 보이스에 고회전에서는 좀 더 투명해지는 음색이 포르쉐 수평대향엔진이 연출하는 음향과학이다.
달리는 주행감각은 993보다 이곳저곳이 약간씩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여전히 객관적으로 무거운 스티어링 휠이지만 993에 비해 가볍고 클러치 패달도 가벼워졌다.
공회전에서도 충분한 토크를 생산하기 때문에 클러치 미트시키는 것에 익숙해지면 일반적인 승용차 몰 듯 운전할 수 있다.




4000rpm에서 7000rpm까지는 타코미터에 따로 색칠을 해두고 싶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포르쉐를 즐길 수 있는 영역이고, 등뒤에서 다가오는 음색이 워낙 독특하고 포르쉐만의 독보적인 사운드이기 때문에 쉽게 질리지 않고, 스포츠 드라이빙을 하는 재미가 남다른 것은 차의 모션이나 주행성능에서만 기인한다기 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에 운전자가 압도당하는 그런 기분이다.




어떠한 조건에서건 가속과 감속 그리고 턴에 자신감이 넘치고, 고속도로의 360도 감아나가는 램프턴에서 몸이 좌우로 쏠리는 정도가 상당히 억제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강하게 세팅된 하체는 차체의 롤을 쉽게 허용하지 않지만 승차감이 터무니없이 단단해 거부감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다.




스포츠카로서 이정도의 승차감이면 양호하다고 생각한다.
전력으로 내몰아치면, 엔진은 300마력을 도로에 힘차게 전달하고 클러치의 연결감도 아주 일품이다.
복스터S와 비슷한 기어비로 4단 7000rpm에 170km/h를 마크하고 4단으로 넘어가면 5단과 6단은 간격이 1,2,3단에 비해 짧다.




컨버터블의 구조적인 약점은 강성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고, 포르쉐라고 예외일 순 없다.
A필러가 아주 강하게 설계되었고, 철저한 보강이 있었지만 쿠페에서 느껴지는 솔리드함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시승코스에서 긴직선에서 내달릴 때의 노면 컨디션은 상하 기복은 없었지만 표면이 약간 거친 도로였다.
전력가속으로 하중이 뒤로 이동하는 순간 앞이 가벼워지고, 노면의 자잘한 충격에 스티어링휠이 순간순간 가벼워지는 느낌은 911이 여전히 안고 있는 핸디캡으로 이해해야 한다.




반면에 브레이킹에서는 유독 자신이 있는 것은 충분히 뒤가 무겁기 때문에 제동중에도 무게중심이 앞으로 지나치게 쏠린다는 느낌이 거의 없고, 강하게 제동을 가해도 동승자나 운전자가 느끼는 감속G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브레이크 패달을 밟는 감각 역시 993까지의 911과 차이가 난다.
993까지는 바닥에서 솟아올라온 패달을 가지고 있고, 패달의 말랑말랑한 부분의 유격이 거의 없었다.
패달이 움직이는 만큼 제동이 되었던 과거의 911과 비교하면 약간의 유격을 허용했고, 좀 더 일반적인 패달감각으로 변한 것 같다.




제동은 일제 스포츠카들이 아직까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순정으로도 충분히 강하고, 이것도 부족한 오너라면 붉은색 터보용 캘리퍼로 교체할 수 있다.
고속주행을 전제로 설계된 차이기 때문에 1,2,3단을 사용한 순간펀치보단 250km/h를 넘어서 보이는 꾸준한 지구력에 더욱 감동하는 차가 911이다.




요즘 대부분의 차량이 스티어링 휠이 지나치게 가벼워져 손가락하나로 쉽게 다루지만 911의 것은 이렇게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성질의 스티어링 감각이 아니기 때문에 정자세로 스티어링을 잡고 속도가 높아지는 것에 긴장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911로 완만한 고속턴을 경험해본 운전자라면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엔진이 후차축 뒤에 탑재된 레이아웃의 특징으로 초고속에서 일단 한번 조타를 가하면 마치 자동으로 전륜을 중심으로 뒤가 감기듯 궁둥이가 선회라인을 벗어나지 못하게 전륜이 코너의 중심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고속턴에서 스티어링의 수정을 가하는 경우 후륜의 모션이 크기 때문에 밸런스를 잃지 않게 좀 더 정교한 조작을 요구한다.
단 완만한 코너를 220km/h정도에서 시작해 가속을 해나가는 상황이면 전륜이 살짝 밖으로 빠지는 정도의 슬립앵글을 유지하면서 언더스티어를 내며 감아나간다.




고속에서 턴을 할 때 갑자기 단숨에 가속패달을 놓는 동작은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좋다.
뒤가 무거운 구조는 빗길에서 궁둥이가 밖으로 빠지는 확률 역시 높다.
포르쉐는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정비성이다.




포르쉐가 고성능에 빠르다는 것을 모르는 카마니어는 없지만 포르쉐가 정비성이 아주 떨어지는 차종이라는 것을 아는 마니어는 드문 것 같다.
클러치 디스크를 교환하기 위해 엔진을 통째로 내려야하는 차종이 911이다.
스파크 플러그하나를 교환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엔진오일 용량은 수냉식으로 바뀌면서 9리터로 줄긴했지만 공냉식일 땐 12리터가 필요했었다.




헤드개스킷은 수시로 점검해야하는 항목이고, 신형으로 올수록 전기장치의 고장도 제법 많이 보고된다.
성능이 뛰어나고, 빠른 차를 소유하고 있는 오너에겐 더불어 숙제도 많은 것 같다.
일반양산차였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불합리한 점을 가지고 있지만 포르쉐는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다.




996의 전반적인 주행감각은 스포츠카의 원초적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옛것에 대한 향수가 그립기도 한 것은 포르쉐가 그간 지켜왔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전통의 고수에 과감한 변화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이해에서 시작된다.




전통과 역사만 외치며, 구세대의 결함을 감추고 미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니어들에게 있어서 포르쉐를 포함한 몇몇 차종은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하고, 옛것의 고수를 강력하게 외치지만 메이커에서는 앞서나가는 진보없인 퇴보뿐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옛것이 영원했으면하는 순간적인 마니어들의 바램에 얽매여 진보에 무감각해지면 결국은 외면당하고 마는 잔인한 현실을 포르쉐는 잘 안다.




까다로운 마니어들의 입맛에 100% 만족감을 줄 수 없을지라도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확신이 섰다면 변화에 불응하는 불평불만도 감수해야하는 것이 훌륭한 자동차 메이커로 평가받는 제조자의 크나 큰 의무이자 책임인지도 모르겠다.




포르쉐는 진보하는 메이커이다. 역사와 전통만 믿고 게으름을 부린 전례가 없다.
앞으로 미래의 포르쉐가 추구할 방향제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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