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서킷에서 만난 복스터의 원조 550 스파이더의 시승기회는 최신형 미드십의 복스터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바디 실루엣에서 풍기는 고풍스런 포르쉐다움과 함께 운전자의 손이 그대로 조향장치와 직결된 듯 몸놀림이 경쾌하고, 요즘 최신형 스포츠카만큼 빠르게 달리진 못하지만 조정능력의 극한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50년대에 이런 수준의 차를 개발했다는 것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복스터 S는 250마력의 수평대향 3.2리터 엔진을 미드에 탑재하고, 브레이크를 보강해 북미에서는 240마력 사양의 M로드스터와 혼다 S2000등과 경쟁한다.




작년 봄 국내에서 2.7리터 220마력 사양의 복스터를 시승해 본적이 있었고, 당시 와인딩을 맘껏 달려볼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다시한번 복스터 최고 사양인 S의 시승을 통해 포르쉐 최고의 카리스마 911과의 엄격한 비교를 할 수 있었다.




이번달 포르쉐 복스터S를 시작으로 993 카레라2와 996 컨버터블을 연이어 연재할 예정이다.
복스터는 포르쉐의 염가판 모델처럼 소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존재가치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유는 550 스파이더가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수냉식 911인 996과 프론트 마스크가 거의 일치하고 실내외 상당부분의 부속을 공유하지만 엔진이 후차축 뒤 탑재가 아닌 차축 앞에 위치한 미드십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996과 같은 실내 모습은 993까지 지켜오던 전통이 너무 많은 부분 수정되어 964와 993에 익숙하다면 좀 어색하기까지 할 정도로 새로운 분위기가 낯설기까지 하다.




계기판은 회전수계가 중앙에 있고, 좌측에 속도계가 있는데, 하단에 디지털로 속도를 표기해주기는 하지만 눈금이 너무 촘촘하게 되어 있어 시인성이 그리 좋지 않다.




시동을 걸면 바로 등뒤에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회전음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옆구리에 뚫려있는 흡기구에 귀를 가까이 대보면, 쓰로틀을 여는 정도에 따라 공기를 흡입하는 생생한 사운드를 곁에서 경험할 수 있다.




포르쉐가 골수 매니어들의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고수하고 있는 그들만의 수평대향사운드는 더 이상 부드러워져선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일만큼 6,7,8,90년대로 세월이 흐르는 과정속에서 음색의 근본을 지키되, 모가난 곳을 다듬는 작업이 계속되었다면, 이제 이쯤하면 될 듯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좀 더 예전처럼 허스키한 음색에 쓰로틀을 많이 열고 회전이 상승하면 음의 두께가 두껍고 맑아지는 그 음색은 포르쉐에 책정된 가격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포르쉐 음향과학의 놀라움에 찬사를 보내게 한다.




기어를 1단에 위치시키고 클러치를 떼는 작업이 시승의 첫단추를 꼽는 것과 같겠다.
역시 포르쉐는 수동으로 몰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팁트로닉의 변속패턴이나 수동모드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속력은 2.7사양보다 월등하진 않지만 빨라진 것은 사실이며, 300마력의 996(2002년부터 3.6리터 320마력으로 변경됨)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




6단 수동변속기가 탑재된 포르쉐의 전통은 1,2,3단의 기어비가 멀고, 4,5,6은 그보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기어비를 가진다는 점을 복스터 역시 따르고 있다.




2단 7000rpm에 120km/h, 3단 7000rpm에 170km/h를 마크할 정도로 낮은 기어비를 가지고 있어, 0-100km/h 가속데이터를 뒤로하고도 단거리 스프린터의 성격보단 고속주행에 초점이 맞추어진 세팅으로 풀이된다.




3.2리터 포르쉐 엔진이 250마력을 부여받았다는 것 자체에 약간 의문을 가졌던 필자는 엔진특성에서 그간 포르쉐에서 감추었을지도 모르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80년대 964, 993, 996을 차종과 연식별루 10여차례 이상 시승하면서 느낀 포르쉐 엔진의 회전특성이라면 3500-4000rpm을 넘어가면서 살아나는 토크특성이다.
출력이 크고 작고를 떠나 고회전 영역에 들어가면서 더욱더 강해지는 펀치의 특성은 세대를 막론하고, 한결같았다.




복스터S는 출력에 걸맞는 충분한 가속을 발휘하긴 하지만 4000rpm이후 어떤 힘이 상승하는 경계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조금은 밋밋하게 뻗어나간다.




이부분에 오해를 없애기 위해 언급하고자하는 필자의 생각은 911의 카리스마를 지키기 위해 원래 3.2리터 수냉식 수평대향이 만들 수 있는 출력이 출고당시 디튠된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911과 비슷한 하부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엔진의 위치가 후차축앞이냐 뒤냐에 따라 코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직선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복스터S는 각이 작은 60km/h-80km/h로 연속해서 돌아나가는 와인딩로드에서 가속패달에 따른 언더스티어를 충분히 연출할 수 있다.




이이야기는 왠만한 코너각과 속도에서는 후륜이 가속패달 조작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코너탈출시 좀 더 과감하게 가속패달을 밟고 튀어나와도 후륜이 911에 비해 미끄러지는 빈도가 적다는 뜻이다.




911과 비교하면 레이아웃의 장점이 실제 주행에 크게 작용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조정이 수월하며, 길게 감아돌아가는 코너에서 스티어링 조작 각도가 커짐에 따라 뉴트럴에서 오버스티어로 바뀌는 지점이 아주 명확하기 때문에 궁둥이가 밖으로 빠지는 순간을 예측할 수 있다.




각단 3000rpm에 2단 52km/h, 3단 72km/h, 4단 90km/h, 5단 106km/h, 6단 130km/h를 마크하는데, 1단에서 3단까지는 레드존인 7000rpm에서 변속하면 다음단에 5000rpm에서 시작되는데, 반해 4,5단의 경우 다음단에 6000rpm에 물리게 설정되어 있다.




엔진에서 가장 자신있는 영역의 사용이 4,5,6단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저,중속 가속에서 느끼기 힘든 고속주행성능이 고단 영역에서 더욱더 강조된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복스터는 실력이 대단한 차종이다.
이는 911과의 비교를 통해 내린 결론으로, 911이 초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전처럼 되물림되었던 불리한 엔진레이아웃의 핸디캡이 복스터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911이 38년동안 지켜온 후차축 뒤에 엔진이 탑재된 것에 대한 핸디캡을 끈질기게 세팅의 묘미로 해결했고, 포르쉐의 핸들링은 차를 아는 매니어일수록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차가 가진 근본적인 핸디캡인 고속주행시 전륜이 가볍게 느껴지는 점과, 궁둥이가 무거워 후륜이 밸런스를 잃으면 컨트롤이 어렵다는 점은 구조적인 결함에서 오는 점이기 때문에 설계를 바꾸지 않으면, 진보되는 정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복스터는 애초부터 안고 있던 핸디캡을 550 스파이더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미명하에 과감하게 미드십을 택했고, 911의 카리스마에 상처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실력을 뽐내었지만 차가 가진 잠재력을 고려했을 때 오히려 911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911의 생산을 중단할 계획으로 928을 개발했지만 911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매니어들을 회유하는 것에 실패해 프론트 엔진의 928이 911의 대체차종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은 당시 한동안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911을 이미지리더로 내세우고 있는 포르쉐의 입장에서 시장에 새로운 이름 '복스터'에 현재 포르쉐에서 활용할 수 있는 A급 파워트레인이 올라갈 경우 911이 타격을 받을 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복스터의 파워트레인 레이아웃에 쿠페형, 그리고 911수준의 파워를 가진다면, 911은 전설속으로 사라져야하는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911의 후속모델이 등장한다면 V8 미드십일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외국의 보도자료를 근거로 한다면, 포르쉐가 앞으로 50년 이상을 더 버틸 수 있는 파워트레인 레이아웃이 현재의 RR구조가 아니라면, 대안은 미드십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앞으로 복스터 레이아웃을 바탕으로 진화될 미래의 모습이 새삼 궁금해진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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