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파이어는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합병한 이후 그동안 기술적 교류가 없이 크라이슬러는 크라이슬러대로, 그리고 벤츠는 벤츠대로의 차만들기에 열중하다가 크라이슬러가 벤츠로부터 하드웨어를 제공받아 만든 첫번째 작품이다.



구형 SLK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 브레이크, 공조장치, 등등 기대했던 것보다 구석구석 벤츠의 하드웨어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구형 SLK는 주로 4기통 컴프레셔 엔진을 주력 엔진으로 삼았지만 크로스 파이어는 오직 V6 3.2 엔진만 선택이 가능하다.

쿠페형과 로드스터 두가지 다 나오는 것도 SLK와는 다르다.



218마력의 3밸브 벤츠 엔진과 5단 변속기는 작은 차체의 크로스 파이어에는 충분한 파워를 제공하며, 오픈형 모델인 SLK보다 쿠페형인 크로스 파이어는 차체 강성에서도 한발 앞선다.



디자인은 요즘 크라이슬러의 패밀리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실내에 들어가보면 공조장치, 크루즈 컨트롤, 방향지시등 조정관 등등 벤츠의 것을 그대로 응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스티어링 휠 조차도 벤츠의 것을 사용한다.(에어백 부분의 디자인은 제외)



요즘 최신형 벤츠에는 스티어링 휠이 개선되었지만 크로스 파이어가 가진 벤츠의 스티어링 휠은 9시 15분으로 스티어링을 잡았을 경우 검지와 장지가 두툼한 스티어링 휠 뒷부분의 형상으로 인해 안정된 스티어링 그립을 연출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수동 공조장치의 경우 1단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서 다이얼 조정을 통해 온도를 높이려고 하면 영 반응이 신통치가 않다가 한번 붉은색 영역으로 들어가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파란색 부분으로 잽싸게 돌려놓아도 차가운 바람이 다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거의 1분은 기다려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벤츠의 좋은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는 했지만 나쁜 것도 개선없이 그대로 적용시킨 것은 벤츠에 익숙해있는 운전자들이 벤츠에서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라도 크라이슬러의 고객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즉 뭐든 나쁜 점이 발견되면 크라이슬러니까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실내의 조립 품질은 90년대 초반의 독일차 수준이다.



조립단차가 큰 것은 물론이거니와 틈의 간격이 일정치 않아 한번 풀렀다가 다시 조립한 것 같은 느낌을 주며, 플라스틱 역시 고급성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편의사양은 조광룸미러, 접이식 사이드 미러, 파킹센서, 썬루프, 자동 에어컨 등등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 이외에 요즘 유행인 편의장비는 구경할 수 없다.



2시터 스포츠 쿠페치고 트렁크 공간이 제법 쓸모가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중앙으로 나와있는 머플러 때문에 트렁크에서 물건을 빼거나 넣을 때 시동이 걸려있는 경우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하는 불편은 있지만 보기는 좋다.



시트는 충분히 스포티하게 생겼고, 미끄럽지 않지만 낮은 시트 포지션에 앉으면 마치 엉덩방아를 찢는 느낌을 준다.



시트의 표면은 말랑말랑한데 바로 그 아래 마치 대리석이 깔려있는 것처럼 털썩하고 앉으면 대리석 위에 스폰지를 깔아놓고 그위에 앉는 느낌이다.



운전 자세는 다리를 길게 뻗을 수 있고, 탄력이 좋은 벤츠의 패달을 그대로 밟을 수 있기 때문에 자세는 솔직히 바이퍼보다 훨씬 낫다.



시동을 걸고 냅다 도로에서 가속패달을 끝까지 밟으면 전혀 정제되지 않은 엔진음이 그대로 실내를 꽉 채운다.



아주 스포티하지만 엔진이 구동하는 여러가지 잡다구리한 음색을 한꺼번에 들리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듣고 싶은 좋은 음색만 골라 듣고 싶어진다.



일단 속도가 붙어서 3,4단을 이용해 4000rpm이상을 유지하면서 액셀링을 하면 제법 멋지게 걸러진 깨끗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천천히 달릴 때는 소음이 크다고 느끼지 않는 점은 장점이고, 밟았을 때 확실하게 사운드가 뭔지를 보여주는 적극적인 자세는 차의 성격과 맞는다고 본다.



0->100 km/h 가속력은 6.5초로 우연히 공도에서 마주친 신형 이클립스 3.0 수동 로드스터와 공도 드래그를 펼쳤는데 가뿐하게 재끼는 모습에서 벤츠의 주행성능을 100% 연출해주었다.



제동 느낌도 벤츠의 그것과 비슷하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후륜 255/35.19, 전륜 225/40.18 사이즈를 서스펜션이 잘 소화해낸다는 점이다.



처음에 이차를 보았을 때 SLK에는 없는 19인치가 크로스 파이어에 적용되었을 때 필요한 부가적인 서스펜션 튜닝 작업을 크라이슬러의 기술력으로 과연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차를 타는 동안 내내 19인치로 인한 불안정함이나 튕기는 느낌이 전혀 없이 기대보다 2배는 좋은 승차감을 보여주었다.



크로스 파이어의 쇽업소버가 발휘하는 유연성은 차체에 비해 좀 지나치게 오버사이즈된 19인치 후륜을 잘 소화해내는 점에서 벤츠가 하드웨어를 제공하면서 덤으로 세팅까지 신경써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했다.



처음에는 샤시세팅에 대한 믿음이 없었지만 그런 선입견이 고속주행을 하는 내내 사라지더니 본격적으로 고속화도로에 올려 놓고 전속력을 달려보니 평지에서 240km/h, 내리막에서 에어컨켜고 248km/h를 마크하는 것을 끝으로 최고속을 마크했다.

2단 110km/h, 3단 165km/h, 4단 220km/h 5단 5600rpm에서 248km/h를 마크했다.



벤츠 변속기는 반응이 늦지만 믿음직스럽고, W210초기 모델까지 사용하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세련된 변속기이다.



다만 수동모드를 좌우로 선택하게 되어있는데, 도대체 왜 수동모드 기능을 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로직으로 되어있다.



폭스바겐, 아우디, BMW는 가속패달 끝에 킥다운 스위치가 있다.

수동모드를 선택하더라도 킥다운 스위치를 밟고 있으면 운전자가 체인지레버를 수동모드로 쳐도 말을 듣지 않고 최대가속력을 연출한다.



다만 이 스위치를 밟지 않고 있는 동안에는 최소 회전수만 확보가 된다면 운전자가 시프트 업을 할 경우 변속을 진행시킨다.



벤츠의 것은 가속패달을 끝까지 밟지 않고 2/3정도 밟은 상황에서도 +방향으로 조작해도 때론 변속을 시키지 않는다.



변속기의 로직이 운전자의 명령을 씹어버리는 것은 가속효율을 떨어트리는 운전자의 오동작을 보정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을수도 있지만 수동변속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고속에서 프레임레스 도어의 기밀성 역시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고속안정성은 말그대로 독일차다.



크라이슬러의 인상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이 글의 전반부에 언급한 내용이외에 주행성과 관련된 부분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고속주행중 급제동을 걸면서 부득이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야하는 상황에서 밸런스를 유지시키는 능력이라든지 110km/h로 숨을 죽이면서 좁은 램프를 감으면서 돌아나가는 상황에서의 샤시의 우직함 그리고 액셀링에 반응하는 모션등 역시 벤츠의 작품이다.



이차를 이틀동안 타고다니면서 안에서 운전하다가 내려서 차를 보면 처음에는 깜짝놀랐다.

이유는 운전할 때는 벤츠였는데, 내려서 보면 크라이슬러이기 때문이다.



벤츠가 300C에도 플랫폼을 제공하는 등 앞으로 크라이슬러와 벤츠는 하드웨어를 공유 아니 벤츠가 일방적으로 기술을 크라이슬러에 제공하는 식의 공유가 많아질 것이다.



벤츠 입장에서는 울며겨자먹기로 그동안 갈고 닦은 단단한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크라이슬러 입장에서 벤츠의 하드웨어에 대한 대대적인 광고를 할 것이고 품질이나 마지막 세팅부분에서 조율이 안될 경우 둘다 욕을 먹을 수 있는 부담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벤츠는 하드웨어를 제공하면서도 크라이슬러에서 만드는 차량이 주행성능에 있어서만큼 제대로 표현되는지를 감독해야하는 귀찮은 의무까지 짊어지게 된 것이다.



크라이슬러가 고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벤츠의 하드웨어 공유를 떠벌리면 떠벌릴수록 벤츠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즉 벤츠는 잃을 것이 많아도 크라이슬러 입장에서는 얻는 것 이외에 잃는 것이 전혀없다.

이미 벤츠에서 사용하지 않는 플랫폼을 저렴한 가격에 가져왔기 때문에 비용면에서 이득이고 굳이 벤츠의 구형 플랫폼을 가져왔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고객들은 벤츠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구형기술인지 신형기술인지 디테일한 것을 들추는 것에 무관심하다.



다시 크로스 파이어로 돌아와서 이차를 충분히 타보고 느낀 총평은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은 차라는 점이다.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 없고 차자체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평가한다면 크게 흠잡을 곳이 없고, 엔진의 경우에도 현재 벤츠에서 사용하는 엔진인 점도 장점이다.



부족한 옵션은 저렴한 가격탓으로 돌리면되고, 눈에 띄는 디자인도 사람의 눈길을 많이 낚아 채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입성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한국땅에서 차가 가진 내용만으로 승부를 펼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지만 좋고 나쁜 것은 구별해서 고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틀동안 발견한 내용중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타고 다니는 내내 재미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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