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E34를 시승했다.
한국에 놔두고 온 E34 M5가 그리운 마음에 일과후 편도 80km를 내달려 E34 535i를 시승할 기회를 만들었다.

88년부터 93년까지 만들어진 535i는 211마력 최고속도 237km/h를 자랑하는 당시에는 상당한 성능의 스포츠 세단이었다.

89년부터 95년까지 만들어진(웨건이었던 투어링은 96년초까지 생산)M5와 병행해서 만들어졌다는 점과 535i의 연관성은 M5가 535i의 베이스 샤시를 그대로 M디비젼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왠만큼 바디의 골격이 갖춰진 535i의 바디를 가져와 2주간 수공으로 만든 차가 M5이다.
E34 M5는 BMW 역사상 마지막으로 실내외, 파워트레인을 수공으로 조립한 차종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535i는 캐나다(북미버젼은 207마력)에서 수동과 자동을 모두 타보았고, 한국에서 91년식 자동변속기를 타본 적이 있다.

시승차는 16만킬로를 달린 수동변속기 사양이었고, 후기 사양인 93년식이었다.
캐나다에서 내가 소유했던 92년식 184마력 사양 525i와 동일한 쑥색 컬러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색상이기도 하다.

E36의 조금은 허술한 바디강성과 비교하면 E34는 훨씬 강하고 견고한 바디를 가진데다가 동시대에 나온 벤츠나 아우디에 비해 월등한 핸들링 성능을 가지고 있다.

내기억이 맞다면 535i에 얹힌 M30B35엔진은 하이드롤릭 리프터를 사용하지 않는 기계식 밸브간극 방식을 가지고 있다.
M5역시 마찬가지 방식이며, 특유의 '착착착'하는 음색이 아주 아름다움의 극치를 발휘한다.

단순한 구성과 견고한 내구성은 알피나의 선택에 의해 터보를 장착하고 370마력으로 재탄생되기도 했던 엔진이다.

시승차를 몰고 아우토반에 올렸다.
요즘 독일차 6기통 3리터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가속성능은 220km/h에 가까워지면 탄력이 많이 죽지만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아우토반을 달렸을 차종들을 생각하면 월등한 고성능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미 만 4년을 소유한 340마력 사양 M5가 240km/h에서도 가속패달을 지긋이 누르는 것만으로 260km/h를 순식간에 찍는 화끈함에 익숙해있다보니 535i의 가속력에 큰 감흥은 느낄 수 없지만 4000rpm이 넘어가면서부터 시원하게 6000rpm을 찍는 모습이 과거 녹슬지 않은 실력자의 모습인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에 있는 중고차들을 타면서 느끼는 점은 좋은 도로여건으로 인해 하체의 부싱류의 수명이 최소 한국에서 굴러다니는 독일차들과 비교해 3배 이상의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일 중고차들은 킬로수가 높은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상태는 좋은편에 속한다.
도로가 매끈해 큰 충격을 받을일이 없으니 하체가 잘 상하지 않고 아우토반의 때론 가혹한 주행환경을 고려해서 설계된 독일 엔진이 늘 신나게 달릴 수 있는 여건이 가능하니 엔진이 제대로 길이 들어 있다.

16만킬로를 탄 엔진은 새엔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메인트넌스를 한 구형 독일엔진의 실린더블럭은 이제 길이 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535i를 아우토반에서 내려 국도를 통해서 차고지로 향할 때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에 도로의 정보를 정확하고 세련되게 전달해주는 충실함은 E34가 여전히 매력적인 차라는 것을 보여준다.

E39에 비해 오히려 손쉬운 메인트넌스와 최근 BMW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Design heritage는 BMW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완변한 제동밸런스와 날카로운 엔진반응은 한성깔하게 생긴 부리부리한 눈매와 너무도 완벽한 매칭이 아닐 수 없다.

E34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예비오너들에게 권하고 싶은 차종은
전기형 SOHC 2밸브 175마력 525i(91년까지 생산, 수동 5단 자동 4단)
후기형 DOHC 4밸브 184마력 525i(92년부터 95년까지 생산에 유로버젼은 5단 자동변속기, 북미버젼은 4단 자동변속기 탑재)
535i 자동 혹은 수동(자동은 4단 변속기)
540i 자동 혹은 수동(수동 6단 변속기, 자동 5단 변속기)  

한국에서 수동 BMW가 거의 없으니 자동이라해도 위의 차종들은 상태가 좋으면 재미있는 일상용차가 될 수 있다.
단 5년은 함께 동거동락할 마음의 준비없이 독일차를 맛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저 독일차를 소유하고픈 욕심만으로 10년이 넘은 차를 구입한 이후 겪을지도 모르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는 마음과 경제적 준비없는 상태에서 감당하기에 때론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E34의 전세대 모델인 E28이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차종이 되다보니 E34가 나름 클래식 취급을 받기도 하는 한국에서 E34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오너라면 BMW의 차만들기와 철학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BMW를 동경하는 젊은 매니어들에게 바라고 싶은바는 최근에 나온 E60, E90 정도를 소유했거나 시승한 경험으로 BMW는 이렇다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공개된 BMW가 보여주는 드라이빙 감성과 기존 수십년간 BMW가 보여주었던 그 감성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최신 BMW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BMW전체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고 하찮은 일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E34는 BMW의 정말 값진 견본이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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