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가 드디어 국내에 정식으로 상륙했다.
롤스로이스의 소유권이 BMW에게 넘어가고 폭스바겐은 벤틀리와 롤스로이스의 영국 공장을 챙기는 쾌거는 롤스로이스가 BMW에게 넘어갔을 당시에는 폭스바겐이 손해를 보는쪽으로 평가되어졌었다.

하지만 벤틀리가 폭스바겐 산하로 들어오면서 폭스바겐이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이득은 작지 않다.

여기서 잠깐 폭스바겐 그룹에 대해 살펴보자.
폭스바겐은 내부에 크게 폭스바겐 브랜드와 아우디 브랜드로 두 카테고리로 브랜드의 캐릭터를 정하고 있다.

폭스바겐 브랜드 산하에, 폭스바겐, 부가티, 벤틀리, 스코다 그리고 아우디 브랜드 산하에 아우디, 람보르기니, 세아트가 포진하고 있다.

폭스바겐 브랜드에 부가티와 벤틀리를 꽉잡고 있는 이유는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력에 대한 홍보를 통해 폭스바겐 그룹 전체를 홍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볼 수 있다.

부가티는 이미 베이롱을 출시함으로 인해 주변에서 불가능하다했던 400km/h이상의 최고속과, 1000마력이라는 상징적인 두가지 숫자를 충족시킨 세계 최초의 차량으로 태어났다.

초고성능 수퍼카를 설계하면서 일반 양산차 수준의 혹독한 테스트과정에서 혹한, 혹서 테스트를 실시했던 스토리는 전세계 자동차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토리이다.

전 폭스바겐 그룹 회장인 피에히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현재의 자동차 역사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베이롱이 예정보다 2년이나 더 걸려서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뚝심이 보통이 아니다.

베이롱에 투입된 모든 기술력은 전적으로 폭스바겐 R&D에서 책임졌으며, 실제로 핵심 엔지니어들이 모두 폭스바겐에서 파견된 인원이다.

베이롱에 탑재된 W 16기통 엔진은 폭스바겐 W12 엔진에 4기통을 덧붙인 것이며, W12엔진은 폭스바겐이 91년부터 양산했던 VR6엔진을 두개 붙여서 만든 엔진이다.

W12엔진은 폭스바겐 페이톤과 아우디 A8에 실리는 것은 물론 벤틀리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에 탑재되기 때문에 12기통 엔진중에서 현재 세계에서 단일 엔진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엔진이기도 하다. 당연히 생산량은 내구성 및 품질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벤틀리의 최고봉은 Arnage로서 구형 롤스로이스를 베이스로하며, 오너가 원하는 사양으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정해져있지 않다.

심지어 차의 크기와 폭도 오너가 원하면 정할 수 있을 정도니 기타 자질구레한 것들의 선택의 폭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폭스바겐이 페이톤을 개발할 때는 이미 벤틀리의 신형 모델들을 고려했었고, 페이톤의 베이스 샤시를 개발할 때 이미 600마력 이상의 파워트레인이 올라갈 것을 고려했다.

파워트레인으로 선택된 W12 6.0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이미 이태리 나르도 서킷에서 폭스바겐의 컨셉트카 W12를 통해서 최고속 내구성 테스트에서 350km/h최고속으로 8000km를 쉬지 않고 달려 12개의 세계기록을 갈아치웠을 정도로 내구성과 완성도는 이미 검증이 되었었다.

여기에 페이톤과 벤틀리가 공유할 수 있는 서스펜션의 기초 지오메트리는 물론 에어서스펜션을 포함하는 언더바디, 그리고 피에히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4존 클리마트로닉등이 벤틀리의 플라잉스퍼와 완전히 동일한 사양이다.

원래는 2005년도쯤 폭스바겐 R60라는 이름으로 페이톤 600마력 W12 트윈터보를 출시해 벤츠의 AMG모델과 경쟁하려했으나 벤틀리 때문에 시장 투입을 포기했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시승한 벤틀리 플라잉스퍼는 이처럼 폭스바겐 그룹과 브랜드, 그리고 위에 나열한 배경지식이 없이는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없는 차이다.

플라잉스퍼에 앉아 시동을 걸 때의 뿌듯함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시동을 거는 동작은 버튼이나 키를 통해서 할 수 있고, 시동이 걸릴 때의 그 특별함은 12기통 엔진을 가진 사람의 특권이다. 이런 시동음을 매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전세계에 극히 적을뿐 아니라 아주 특별한 행운아들이다.

시동이 걸렸을 때의 배기음이 음량이 조금 컸던 것에 일단 놀랐고, 차를 움직이는 순간에 배기음의 실내 투입은 페이톤의 그것보다 2배 이상 과감했다.

벤틀리는 최고급 승용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최상의 럭셔리와 스포츠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차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롤스로이스와는 베이스가 같았다고해도 상품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시내를 달리는 플라잉스퍼의 운전감각은 552마력이라는 힘의 크기를 쉽게 선사하지 않을 정도로 점잖았다.

일반적인 고속화도로에서의 얌전한 주행에서도 액셀링으로 느끼는 힘의 크기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2.5톤의 무게 때문에 이런 묵직함을 느꼈던 것이 아님은 풀rpm을 사용해 풀가속을 해보면 바로 증명이 된다. 즉 일상적인 주행만으로 플라잉스퍼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플라잉스퍼의 W12 6.0 트윈터보 엔진의 회전 영역중에서 가장 힘이 몰려있는 부분은 5500rpm~6500rpm까지이다.

일반적으로 터보 엔진이 부스트가 급격히 상승하는 지점이 중속인 점과 비교하면 실제로 주행중 느낄 수 있는 강력한 펀치를 최대한 뒤로 밀집시킨 세팅이다.
이러한 의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차가 힘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이 센 것은 누구나 다아는 사실이지만 “내가 얼마나 힘이 좋은줄 알아?”라는 거만함은 일상주행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벤틀리가 추구하는 “우아한 힘”이다.

플라잉스퍼는 필자가 여러대의 수퍼카를 타본 경험으로도 대단히 빠른차이다.
풀rpm을 사용하면서 가속할 때의 맹렬함은 이대로 천국에 다다를 것 같은 쾌감을 선사한다.

1단 60km/h 2단 100km/h, 3단 160km/h, 4단 200km/h, 5단 275km/h, 6단 300km/h일 때 6000rpm 부근을 가르키며 힘의 여유는 여전히 남아있다.

5단에서 6단으로 넘어가는 순간인 275km/h에서는 변속이 진행되는 과정속에서 이미 속도계가 5km/h를 더 올려 변속이 마무리된 시점에 280km/h를 재빨리 지나쳐가고 있는 속도계의 바늘을 경험하게 된다.

300km/h가 이렇게 쉽고 안정적이게 돌파한다는 것은 때론 너무 허무하지만 벤틀리외 다른 독일제 고급세단들이 250km/h 리미트에 묶여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을 벤틀리는 자신만만하게 “우리는 신사협정으로 정한 속도제한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차가 가진 능력을 운전자가 원하면 맛볼 수 있는 너그러움으로 이해하고 싶다.

최고속이 311km/h이고 계기판상으로 320km/h로 달리는 장면은 여러 해외 잡지를 통해서 소개되었다.

완벽한 샤시와 에어서스펜션은 300km/h에서 만나는 완만한 코너도 그냥 공략하는 무모함을 줄 정도지만 공도라는 예의상 280km/h로 낮춰서 코너를 돌 때의 짜릿함은 이런 영역을 충분히 돌파하는 스포츠카나 수퍼카로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세단은 비단 단단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렇게 강하게 설계된 바디는 아쉽지만 추돌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만 고려하지 않는다면 플라잉스퍼의 바디가 해낼 수 있는 안정감은 가히 이차를 최고의 세단에 포지션 시키기에 충분하다.

고속에서 강한 엔진은 강한 바디와 토센 디퍼렌셜 풀타임 4륜구동에 의지해 풀파워를 젖은 노면에서도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떠한 노면 조건이라도 풀가속시 차가 흔들리지 않으며, 진짜 힘이 필요할 때 접지력 때문에 트랙션에 눈치를 보면서 가속하지 않아도 된다. 후륜구동 차량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천후 접지력을 항상 구동력의 100% 토해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브램보 8피스톤 전륜 브레이크 디스크의 크기는 405mm로 세계에서 가장 직경이 큰 세단용 브레이크이다. 이런 디스크를 무는 캘리퍼는 8피스톤 캘리퍼이며 페이톤 W12에 장착된 그것과 같다 다만 페이톤은 전륜 디스크의 크기가 365mm이다.

부드러운 엔진과 변속기의 세팅은 기본적으로 D레인지일 때 킥다운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6단으로 항속하면서 가속패달을 끝까지 밟아 충분히 4단 킥다운이 일어남직한 상황에서도 단수를 내리지 않는다.

힘의 여유가 있는 이유도 있지만 킥다운과 급격한 회전수 상승과 폭발적인 가속은 우아한 활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원하면 패들시프트나 체인지레버를 통해 변속할 수 있지만 D레인지에서는 벤틀리의 설정을 존중해야 한다. 이부분은 페이톤의 세팅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때문에 회전수가 낮을 때 가속패달을 깊이 밟았을 때 변하는 배기음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가속패달의 70%이상이 밟히면 배기음이 갑자기 8기통의 머슬의 저음을 동반한 비트를 생산한다.
너무 신기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12기통 엔진이 8기통의 비트를 만들 때도 있다는 것은 언듯 이해가 안되지만 비슷한 종류의 음색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설정을 상상한 엔지니어의 머리속에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다.
발명의 시작은 상상이다. 원하는 것을 만드는 과정과 그것을 완성시켰을 때 그리고 “이제 원하는대로 소리가 나는구나”를 성취했을 때의 그들의 쾌감을 상상해보라.

플라잉스퍼를 시승해보신 분들이 약간 큰 배기음 때문에 구매를 미루는 경우도 간혹있다는 이야기는 나를 슬프게 만든다.

안그래도 모업체의 모차량이 배기음을 줄이기 위해 트렁크 바닥에 흡음재를 더 넣어서 판매한다는 에피소드 역시 제작자의 의도를 무참히 짓밟아야만하는 국내의 시장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고급차는 에쿠스 같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며, 가격을 떠나 에쿠스보다 소음이 크거나 승차감이 단단하면 음색이라는 단어나 안정감이라는 표현대신 불편함과 거칠다는 표현으로 차를 평가해버리고 만다.

벤틀리가 보여주는 모든 표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이 아름답고 멋지다라는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오너가 있다면 정말 멋진 분이 아닐 수 없다.
벤틀리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고급차는 많다.

하지만 기왕 벤틀리를 구매하는 분이라면 주변에서 “차 어때?”라는 질문에 “승차감 좋고 조용해”라는 표현대신 “이차 오디오가 필요없는 차야” “엔진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해”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도 운전석을 빼앗고 싶을 정도로 운전이 재미있어”

벤틀리는 렉서스처럼 왠만하면 누구나 타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고급차가 아니다.
까다로운 오너만큼 벤틀리 역시 취향이 까다롭고, 그만큼 이차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누군지 모를 그분이 타본 다른 고급승용차의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되는 차이다.

시승을 한 후 차가 전해주는 각종 표현법을 정확히 읽었을 때 즉 만든이가 주는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했을 때의 쾌감과 마치 숨은 비밀을 찾아낸 듯한 희열은 특정차를 침이 튀겨가며
열심히 설명하게 만드는 소스가 된다.

플라잉스퍼는 필자가 현재의 경제사정으로는 구입할 수 없는 차임에 분명하지만 그래도 기뻤던 것은 준비가 되었을 때 반드시 가지고 싶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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