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들과 가장 크게 차별되는 부분은 핵심 기술과 진보된 기술의 보유여부이다.

자동차 메이커에서 차를 개발할 때는 포지셔닝(positioning)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가격이다.

포지셔닝에 따라 년간 몇대의 차를 팔 수 있고, 몇대 이상을 팔 수 있다면 가격을 얼마까지 낮춰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나름의 스토리 보드를 만들 수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한 차만들기는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세단모델이나 세대별로 인기가 있는 trend model들이 cash generator가 될 수 있다.

메이커에서 Product range내에 주 히트모델들을 포진 시키고 소위 Niche market이라 불리는 틈새시장에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모델들을 포진시키는 전략은 전혀 새로운 시도도 도전도 아니다.

즉 돈 벌어주는 차와 돈은 못벌어주지만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는 모델들이 철저히 구별되어야 하고, 이런 스페셜 모델들은 일반 양산 모델들이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엄청난 혜택과 비교도 안되는 환경에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입해서 만들어진다.

기술자립을 위해서 일본의 메이커들은 모터스포츠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현재도 투자하고 있다.

스바루와 미쓰비시가 WRC에서, 혼다와 도요다가 현재 F1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혼다는 이미 60년대에 F1을 제패한 경험이 있어 모터스포츠 뿌리자체가 굉장히 견고한 브랜드이다.
필자가 일본 브랜드 중에서 혼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도전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레이스에서의 우승을 홍보의 목적으로 활용해 자사차의 기술이미지를 북돋는 차원을 떠나 결과에 상관없이 도전하는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다.

혼다가 F1참여 역사상 65%의 패배를 자인하며, “우리는 패배에 패배하지 않는다”(We are never defeated by defeat)는 문구로 브랜드 광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 광고는 필자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 광고 카피를 필자의 책상에 붙여놓았을 정도이다.

이번달의 주인공인 인테그라 Type-R로 돌아와보자.
DC5로 불리는 4세대 인테그라 Type-R을 만나기 전 필자는 캐나다에서 DC2(3세대) 인테그라 Type-R 1.8리터 195마력에 Spoon 튜닝된 차를 마운틴 와인딩에서, 그리고 미국 윌로우 스프링스 서킷에서 DC5 RSX Type-S 터보튜닝된 차를 시승해본 경험이 있다.

필자는 원래 독일차 매니어의 한사람으로서 독일차를 좋아하다 못해 사모하는 사람이다.
독일차 매니어들과 일본차 매니어들은 물과 기름 같아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데이터상으로는 일본차가 감성면에서는 독일차가 앞서는 특성에 기인한 이 지루한 논쟁과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독일차 매니어로서 인테그라 Type-R의 주행과 감성을 평가한다면 이차는 지구상 가장 핸들링이 좋은 전륜구동 스포츠쿠페라고 평가하고 싶다.

유러피언의 대표선수로 폭스바겐 GTI와 비교해도 서킷과 와인딩에서 Type-R과 겨루는 것은 버겁다.

필자가 캐나다에서 GTI로 클럽 레이스를 할 때 수많은 Type-R과 몸싸움을 해본 경험으로도 어려운 부분은 어렵다고 인정하고 싶다.

인테그라 Type-R은 2리터 VTEC으로 220마력을 8000rpm에서 생산한다.
6000rpm에 도달하면 VTEC이 작동하여 고속영역을 책임지는데, 이때부터 회전계에 힘이 실리고 배기음도 달라진다.

이전세대 1.8 195마력 사양 엔진에 비해서 VTEC이 작동할 때 훨씬 힘차게 느껴진다.
8400rpm을 꽉꽉 채우는 동안 엔진은 스트레스를 모른다.

굉장히 정밀하게 조립된 엔진의 밸런스는 물론이고, 이렇게 높은 회전수에서 빠른 시프트를 소화해내는 변속기도 경이롭다.

속도계의 눈금이 180km/h까지밖에 없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에 찍힌 속도를 바탕으로 최고속은 실속 250km/h부근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220km/h가 넘어가는 영영에서 쾌적할리는 없다.

이런 고속영역에서는 GTI가 훨씬 쾌적하고 묵직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인테그라 Type-R의 서스펜션 세팅은 공도 스포츠 주행과 서킷에서의 타임어택까지 고려한 세팅이기 때문에 고속에서 노면의 불규칙한 바운드에는 짧은 서스펜션 스트록이 약간 부담이 될 수 있다.

높은 회전수에 철저히 스프린터의 성격을 가진 Type-R의 특성상 가감속이 반복되는 구간이 고속으로 크루즈하는 시간보다 훨씬 즐겁다.

가감속과 좌우로 굽이치는 와인딩 업다운 힐에서 200마력 초중반의 파워를 가진 차들과 경합을 벌인다면 Type-R은 압도적으로 우월한 주행을 약속한다.

코너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제동을 걸고 턴인을 위해 제동을 풀 때 무게중심이 원상태로 복원되는 시간이 극히 짧다.

만약에 제동을 풀어도 무게가 천천히 오는 경우에는 턴인시 push understeering때문에 슬립앵글이 커져 코너에서의 평균속도를 많이 까먹는다.

코너를 도는 과정속에서 가속패달을 밟았을 때 터보엔진처럼 큰 토크가 분출되는 타입이 아닌 전형적으로 회전수로 출력을 만들어내는 엔진답게 가속패달의 가감을 극한 코너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무기로 활용하는 재미와 정교함이 돋보인다.

인테그라 Type-R을 타보면 혼다가 가진 세팅의 기술과 묘미가 엄청나다는 것을 세삼 느낄 수 있다.

그런 노하우와 기술을 맘껏 뽐낼 수 있는 모델과 그 모델을 개발비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하게 하는 경영진이 더 존경스럽다.

일본에서 300만엔 정도하는 이 소형 스포츠 쿠페의 파워트레인에 투입된 기술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이차는 결코 메이커 입장에서는 돈벌어주는 차는 아닌셈이다.

Type-R은 전세계의 젊은 매니어들이 혼다를 칭송하게 만든 존재이며, 이렇게 약간은 맛이간 매니어들이 Type-R에 대한 지식의 강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동경의 강도 역시 함께 높아져왔다.

혼다는 아큐라라는 고급 브랜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중저가 브랜드이다.
사실 혼다에서 만드는 평범한 중저가 차량에서조차 하이테크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저가 브랜드이면서도 특정 세그먼트에 해당하는 차에 기술적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혼다를 떠나서 일본 메이커의 힘이다.

70년대에 저렴한 가격으로 북미시장을 자극하더니 80년대에 높은 resale value를 바탕으로 가격을 떠나 구매가치가 높은 차량으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렉서스를 대표로하는 고급 브랜드를 상륙시키며 영역을 넓히며 미국브랜드를 압박하더니 이제는 미국의 고유상표나 다름없던 SUT(Sports Utility Truck)의 영역까지 넘보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브랜드가 대표적인 미국시장을 필두로 전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원천에는 강력한 독자기술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테그라 Type-R은 국내 브랜드들이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이런차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과 철학을 더 본받아야 한다.

자동차에는 알게 모르게 경영자의 철학이 반영된다. 우리의 경영자들의 뛰어난 경영실력으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메이커로 발돋음했으니 이제 그들이 차를 조금만 더 사랑하는 열정을 소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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