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체는 옵티마의 뒤를 잇는 기아의 핵심모델로서 시장에서 가장 큰 볼륨을 창출해줘야할 모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차 자체의 수준과 직접 연관성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고 싶었다.

NF, SM5, 토스카, 로체의 중형차 4인방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지 못하는 로체의 가장 큰 핸디캡은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NF가 시대를 따르는 철저히 트랜드 따라잡기 디자인에 충실했다면 로체는 NF와의 독립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약간 작아보이는 몸집에 테일램프만 젊은 감각과 무장해 첫인상이 고급스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광고에서 강조하는 스포티하고 날렵한 이미지로 극복하기 버거운 부분이다.

시승차는 LEX20 로 2.0 자동변속기 모델이었으며, 215/50.17에 JBL오디오까지 무장한 고사양이었다.
세타 엔진의 질감은 베타의 그것보다 훨씬 성숙했고, 특히 정차했을 때 진동은 시리우스 엔진을 사용하던 옵티마시절과 비교도 안되게 향상되었다.

엔진의 절대 파워는 10수년째 변화가 없지만 토크 분포가 좋아졌고, 갈수록 지혜로워지는 변속기의 혜택으로 확실히 주행 반응성은 옵티마에 비해 좋아졌다.
4단 변속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듯 보일 수도 있지만 토스카를 제외하고 경쟁차들이 사용하지 않는 5단 변속기는 현대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기아의 의지만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가지 가감속 상황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토크컨버터가 바빠지고 TCU가 고려하는 요소들이 많아지는데, 아무튼 손발이 잘 맞고, 이는 NF와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화되어 있다.
앞좌석 시트의 착촤감과 질감도 좋고, 특히 내외부의 조립에서는 시장의 약자로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패널간의 단차와 실내 내장제를 조립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외에서 현대, 기아 차종의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계기판의 조명은 개기일식을 표현한 특이함과 센스 때문에 지루하고 일관된 계기판의 보수성을 극복하기 위한 신선한 시도로 평가하고 싶다.

센터패시아쪽의 각종 버튼들의 조작감도 좋고, 특히 공조장치의 작동방식이나 조작질감도 일품이다.
현대와 기아가 합병되고 난 후 기아가 현대에게서 배운 좋은 점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감성질감 향상 부분일 것이다.

엔진의 파워는 경쟁차들과 엇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따로 주행성능이 높다 낮다를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경쟁차들에 비해서 차별되는 부분을 위주로 본다면 일단 단단한 승차감과 예리한 핸들링이 경쟁차에 비해 장점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세팅의 묘미와 경쟁차와 차별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과감한 TV광고를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이차가 가진 핸들링 장점이 세일즈 포인트로 바뀌어 고객에게 주는 혜택(Benefit)으로 승화되는 것은 국산 중형차를 구입하는 구매층의 기호와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핸들링과 승차감은 필자같이 독일차를 주로 몰고 스포티한 주행을 자주하는 부류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정도로 국산차 특유의 지나치게 헐겁고 중심이 명확하지 않은 불분명한 핸들링에서 확실히 탈피했다.

데뷔당시 아반테 플랫폼을 사용했느니 구설수에 오른 것에 대해 필자는 전혀 게의치 않는다.
핸들링은 지오메트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팅의 노하우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전륜 더블위시본이 맥퍼슨보다 무조건 핸들링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다만 데뷔직후 인터넷을 통해 마치 로체는 NF보다 염가에 조립되었다느니 하는 오해를 살 수 있는 글들이 올라와 분위기를 망쳤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로체의 핸들링과 세팅의 노하우는 경쟁차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세팅이다.

와인딩에서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길 때 가속패달의 가감에 차의 모션이 영향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운전의 재미는 증가한다.
다만 일반인들이 운전하는 이런차에 이렇게 예민하고 스포티한 핸들링은 어울리지 않기 때
문에 적당한 선에서 절충하는 것이 관건이다.

로체는 코너에서 가속패달과 브레이킹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코너를 탈 때 확실히 기존 국산 중형차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집어넣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적당히 단단한 서스펜션은 일본의 스포티한 모델이나 독일차의 그것과 대적할 수준은 당연히 아니라하더라도 국산차중에서는 고속에서의 안정성이나 노면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는 것이 로체를 운전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로체가 제품으로서 아쉬운 점은 뒷좌석에서 듣는 소음의 수준이 앞좌석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 정도이다.
고속도로에서 100km/h이상으로 달릴 때 타이어 하체 소음이 트렁크에서 공명되듯 증폭되어 뒤통수에서 다가온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이러한 방음상의 문제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뒷좌석 공간이 넉넉하고, 조수석 앞좌석의 경우 발을 상당히 깊이 밀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만족도는 외부에서 약간 작아 보이는 이미지와 크게 대조된다.
작지 않은차가 작아보이는 억울함은 경쟁차들과의 싸움에서 패할 수밖에 없는 주요 요인중 하나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로체는 제품자체의 수준이나 품질에서 경쟁차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예전에 소나타와 크레도스가 양립하던 시절 크레도스의 약간 더 우월한 주행성으로 소나타의 약삭바른 상술을 절대 극복할 수 없었던 교훈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금의 현대와 기아의 관계는 그당시 두차종이 보여주었던 제품의 구성차이를 결코 만들지 않는다.

소나타는 우리나라의 국민차이다.
누구나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소나타는 한국인의 기호와 성향을 잘 보여주는 기준역할을 하는 차량이라는 뜻이다.

소나타를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시장의 반응이 차가워 진다는 것을 로체는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NF와 차별되는 고객층을 상상했다면 NF보다 5세에서 10세 낮은 연령층을 타겟으로 설정했을 것이고, NF보다는 조금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날렵한 이미지와 스포티한 이미지를 추구했던 기아 마케팅 전략의 표현인 현재의 로체 TV시리즈 광고는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 미스이다.

로체를 구입할 수 있는 실구매 계층이 스포티한 이미지의 중형세단을 살 정도로 아직 국내의 소비자들이 너그럽지 못하다.
고리타분 할 정도로 그들의 기호는 단순하고 획일적이다.
게다가 로체는 NF와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면서 스포티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아무런 요인 자체가 없다.

실제 차가 가진 능력과 광고로 표현하는 차에는 엄청난 갭이 존재하고, 전문가들이 감지해낼 수 있는 정도의 핸들링 차이를 무지한 고객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차가 가진 핸들링의 장점은 일반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상당히 힘든 부분이다.
현재 풀모델 체인지를 서두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제품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약간의 외형변화나 페이스 리프트를 약간 앞당기는 전략에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tool을 만드는 것이 로체의 판매를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상품성이 없는 차도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잘 팔리기도 한다.
로체는 현행 디자인과 스타일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약점이 없다. 이 약점을 극복해 시장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test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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