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테드에 가입한지는 십수년 정도된 묵은 눈팅회원입니다.

 

그간 눈팅이 체질화되어 버리니 글하나 올리기도 쉽지 않았는데...

 

얼마 전 인제서킷에서 만난 이종권 회원님께서 제차에 부착된 테드스티커를 보고 반갑게 인사도 해주시고 함께 식사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수 있어서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다만 처음엔 눈팅 회원이라 좀 머슥한 면도 있었고, 그래서 커뮤니티에 참여도 좀 하고 해야겠구나...하고 생각(만)하고 있던 참에 고결님의 티코 부활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도 그 정도의 스케일은 아니지만 비교적 패키징(?)이 잘 되어 있는 material이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4부 정도 분량인데요, 편의 상 구어체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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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매서웠던 어느 12월 초순경...

 

여느때와 다름없이 정체가 극심한 아침 출근길이다.

 

기상시간이 지나도록 필자를 잡고 놓아주지 않던 포근하디 포근한 침대탓이었을까.

 

회사 정문까지의 거리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미적거리는 차속과는 달리 야속한 시계는 쉬지 않고 달린다.

 

전날 지각자는 엄벌(?)에 처하겠다는 본부장의 전체 메일이 자꾸 머리속을 휘저으며 오른발을 재촉하게 만들때쯤

 

어느덧 마지막 교차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저 신호만 받으면 지각은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앞차에 바짝 붙어 교차로를 건널때쯤

 

갑자기 앞차의 꽁무니가 확 들린다.

 

'급정거다!!'

 

지금 생각해도 거의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브레이크페달을 힘껏 밟았다.

 

 

 

 

솔직히 설수 있을 줄 알았다.

 

 

 

 

프론트 4P, 리어 확장 디스크 등으로 무장한 필자의 GTI였기 때문에 제동 성능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차디찬 노면과 안전거리 미확보에는 장사가 없었다.

 

쾅소리와 함께 찌그러져가는 본넷이 슬로우모션으로 내 눈앞에 펼쳐진다.

 

 

 

 

의아했다.

 

 

 

분명 크래쉬 직전 속도는 20km/h남짓이었기 때문에 범퍼만 좀 찌그러지고 말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재 시동한 엔진은 부조가 심했지만 일단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면 안되니 갓길로 차를 뺀다.

 

내려서 본 흰둥이의 상태는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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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저속에서 박았는데 저 모냥이 되었다.

 

그 이유는 상대편 차량 범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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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퍼에 새겨진 선명한 폭스바겐 마크가 그 답이었다.

 

급 정거로 SM5의 범퍼가 들려 올라간 상태에서 마찬가지로 급정거하던 흰둥이의 한껏 노즈다운된 전면이 범퍼대 범퍼가 아닌 범퍼대 그릴로 받아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잘 보면 흰둥이의 범퍼는 말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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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차대에 가해진 충격은 없어서 사고차 낙인은 면했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이내 현실적인 걱정이 뇌리를 파고 든다.

 

'견적은 얼마쯤 나올까...??'

 

일단 필자는 100%가해자이기 때문에 상대 차주에게 정중하게 사과한 후 보험처리를 진행하고

 

아침부터 희의가 예정되어 있었던 터라 어딘지 모를 보험사 협력정비업체로 견인 후 부랴부랴 출근하였다.

 

 

 

그날 일이 손에 잡혔을리가 없었다.

 

자차를 들지 않았다는 것은 나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차량 구입 후 자차를 들었으나 16년간 자동차보험금이라는 것을 타 먹어본적이 없어 지난 1년간 뺐었다가,

 

갱신일때 다시 자차를 가입하려 했던 터였다.

 

갱신일은 사고일로부터 3일 뒤였고 이미 자차 가입용 사진을 모두 찍어뒀던 터라 가뜩이나 쓰린 속이 더 아려왔다.

 

 

뭐 어쩌겠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은 해야한다.

 

사고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파손 상태를 추리해나갔다.

 

파손이 예상되는 부품들의 가격을 각종 수입 부품 유통망을 통해 알아보았다.

 

 

아...근데...

 

부품들이...

 

속된말로 X라 비싸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국산차 대비 기본 2~3배다. (참고로 흰둥이는 필자의 첫 수입차다.)

 

 

이거 뭔가 내가 생각보다 큰 사고를 쳤다는 숙명적인 느낌이 밀려온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바로 흰둥이가 견인되었다는 정비업체로 향했다.

 

다행히(?) 폭스바겐 정식사업소는 아니고 일반 정비공장으로 보인다.

 

차량의 상태를 살펴보니 다행히 엔진까지는 데미지가 없어보인다.

 

씁슬한 마음으로 흰둥이를 한번 스윽 스다듬고 있는데 안에서 직원들이 마중나온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 자리에 앉았다.

 

사장이라는 분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가견적서를 내미는데...

 

 

아....

 

견적이...

 

900이란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람이라도 스쳤다고 판단되는 부품은 몽땅 견적서에 집어넣은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차값이 얼만데 견적이 900이라니...

 

 

 

가견적서의 모서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눈치챈 사장이 애써 필자를 위로하려 든다.

 

일단 중고 부품을 알아보겠다. 싸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잘 처리해주겠다. 장안평에는 없는 것이 없다..

 

수리기간을 물어보니 작업시간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지만 부품수급문제로 한 석달은 줘야 한단다.

 

국산차는 이정도 사고면 수입차의 1/3정도면 되겠지만 수입차라 부품값 비싼거는 고객님도 잘알지 않느냐,

 

그리고 수리 중에 미처 예상치 못한 소소한 브라켓이나 호스류까지 수급하려면 그 정도 시간은 줘야 한다...가 주요 골자였다.

 

 

 

아놔... 이 경남 창원에 수입차가 얼마나 많이 굴러다니는데 석달이라니...

 

일단 생각해보고 수리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고 돌아온다.

 

 

 

 

집에와서 가만히 앉아있으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

 

아니 900이라니...900이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타이밍도 절묘했던것이...

 

부동산 막대금 일자가 다가오고 있던터라 900이라는 돈은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수 없었을 뿐더러, 이 역시 아반떼 사러갔다가 그랜저 계약한 꼴이 되어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부족한 자금 사정에 소비 심리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을 시점이었다.

 

그러나 본넷이나 범퍼는 모르겠지만 라지에이터나 인터쿨러등 성능관련 부품은 절대 중고품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사고차 전문 매입자에게 넘길까...'

 

솔직히 이 생각까지 거의 기울었었다.

 

 

그러나...

 

민트급 주행거리

(매물을 구할 당시 6세대를 찾고 있었으나, 이 녀석의 투명한 히스토리와 민트급 상태에 매물로 뜨는 순간 바로 데려와버렸다.

2년 전 입양 당시 적산거리는 39000km였다.)

 

큰맘먹고 복원한 정품 리볼버 휠...

 

브레이크 보강 킷입맛에 맞게 스프링과 댐핑값을 커스터마이징한 일체형 서스 등등

 

파츠 하나 고르는 것도 얼마나 따지고 따져서 골랐던가...

 

 

민트급 썩차라고 얼마나 아껴탔는데...

 

이렇게 보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필자도 후륜으로 갈아타볼까 하는 생각에 요즘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참이었으나

 

일단 이 녀석은 원래대로 살려놔야겠다.

 

 

성능관련 부품은 신뢰성있는 신품으로 교체하되 수리비용은 최소로 한다.

 

그럼 공임은 1순위로 빠져야 하는 대목이다.

 

대충 구글링 해보니 엔진을 제외한 전면 부품들은 볼트만 조이고 풀 줄 알면 할수 있을 것도 같았다.

(테크니컬한 부분은 아니란 뜻일 뿐)

 

나머지는 의지만 있다면 해결가능한 요소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어보였다.

 

 

결정은 내려졌고, 녀석은 필자의 집앞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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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고독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