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궁금하시진 않겠지만, 3년째 남의 차를 모는 대리운전 자동차생활에 뭔가 갈증을 느낍니다.

그래서 뭔가 글로 써보고 얘기해보고 싶네요. 만족도 높은 자동차생활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다른 차에 욕심부리지 않고 자기 애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배워가는 데 초점을 두는 거...?

저는 그건 알바때문에 직업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매일 만나는 다른 차들의 장점이 안 느껴질 게 아니니까요 ㅠㅠ

 

하여튼 3년째인데 대리운전은 아직도 재밌습니다. 재밌는게 대리운전밖에 없어서 문제죠.ㅋㅋ

대리운전에서 제일 힘든건 운전도, 주차도, 손님이랑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손님을 찾아다니며 방황하거나 뛰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저는 2년 전부터 대리운전에 전동킥보드를 활용하면서 그 힘든 부분이 없어져서 그런가, 이제 대리운전은 저에게는 오락과도 같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갈증을 느끼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새로운 자동차를 만나는 데 어려움이 없어져서? 어쩌면 단순 체험이 제 목적이 되기 때문에 자동차를 깊이있게 배우지 못해서 갈증을 느끼는 걸까, 자문해보면 그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 신용으로 처음 산 차, 아반떼 할부금도 다 갚은 김에 겸사겸사... 

제가 어떤 방법으로 자동차를 좋아해왔는지 되짚고 싶네요.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고 ㅎㅎ

그게 앞으로 제가 만족도 높은 자동차생활을 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쓰려고 보니 다른분들은 어렸을때부터 어떻게 자동차를 좋아해오셨는지 여러 역사가 궁금하네요. 

댓글로 남겨 주시든 보드에 써 주시든 감사히 읽겠습니다.

 

미성년자 때는 드포프, 로지텍 드라이빙 포스 프로로 게임 [테스트드라이브 언리미티드]를 즐겼습니다.

사실 그 게임 관련해서 이것저것 찾다가 여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게임 카페인가? 하고 들어왔는데 아니더라구요.ㅋㅋㅋㅋㅋ

케이터햄 세븐을 제일 즐겁게 플레이했습니다. WTCC오피셜 게임으로 넘어와서도 케이터햄을 즐겨 픽했구요, 고회전에 대한 갈증으로 이것저것 골라보다가 라디칼 머신을 플레이해보고 완전히 반했습니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회전수가 너무 즐거웠어요. 이때부터 자연흡기 고회전 머신이 최고라고 주변에 떠들고 다닙니다. 근데 라디칼이 자연흡기 맞나요?ㅋㅋㅋ

 

2012년, 21살. 제 운전연습 겸, 아버지 장난감 겸, 노량진에서 광어 떼올 겸 아버지가 사주신 프라이드1.4 수동입니다. 

해치백에 비해 덜 세련된 디자인에 콤플렉스를 느꼈지만, 디자인이야 어쨌건 제가 수동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차입니다. 23살 때쯤, 제가 입대하면서 탈 사람이 없어지자 아버지가 상사에 넘겼고 지금은 동남아 어딘가로 팔려나갔습니다. 눈툭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 각도에서 보면 나쁘지 않게 생겼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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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직후부터 제대하기 전까지는 자동차에 굶주린 개처럼 모터트렌드를 보며 가끔 자동차 그림을 그렸습니다. 

군대 환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덕질이었습니다.

주로 컷어웨이 일러스트 모작을 그렸습니다. 가끔씩 산업디자인교재 책에서 본 머신들의 디자인을 좀 바꿔 그려보기도 했는데 그건 너무 조잡해서 보여드리기 부끄럽네요. 전공자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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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의 자동차인 S2000. 의경은 PMP반입이 허용됩니다. 덕분에 거의 매일 Gan San의 S2000 뉘르부르크링 주행, 세나의 NSX주행 영상을 볼 수 있었죠. 그의 세련된 발놀림과 계기판 캠에 RPM 오르내리는 것만 보고 있어도 경찰청 시계가 잘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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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즐겁게 그렸던 바이퍼입니다. 이 그림부터 0.3미리 샤프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림의 디테일이 조금 좋아졌죠.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바이퍼? 무식하게 엔진만 큰 차 아닌가?" 하고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과 사진으로만 차를 배운 중2병 자동차마니아의 전형이 아닙니까?ㅋㅋㅋ 

그런데 그리면서 바이퍼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구요. OHV밸브 작동방식 동영상도 여러번 돌려보면서 되게 신기해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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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여기까지 그렸을 때쯤 전역을 했습니다. 전역하고 나니 다시는 그림에 손이 안 가더군요.

군대에서 억눌려 있던 자동차 욕구가, 마치 금 간 증기기관처럼 그림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뿜어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전역날 오후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발렛파킹장에서 면접을 봤습니다.

한 3달 해보니 발렛파킹은 차를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더군요. i8, 팬텀, 플라잉스퍼, R8... 몰아봐야 주차밖에 못해서 감질나 죽겠을 때쯤 동료가 대리운전 알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하는지 가르쳐달라고 졸랐습니다. 

 

대리운전 시작하고 나서는 뭐 별천지였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하는지점이 여의도라서 그런지 독일 3사 차들은 너무 흔하게 몰았고 포르쉐나 마세라티, 외에 다른 고성능차들도 맛볼수 있었습니다. 제 자동차인생이 개막한 느낌이었습니다. E63 그 과격함에 머리털이 쭈뼛 서보기도 하고, 파나메라가 더럽게 무겁고 쾌적함과 거리가 멀다는 것도 느끼고... BMW(F바디)는 별로고 아우디는 딱 적당하네~ 하며 혼자 얄팍한 자동차 품평을 하면서 대리운전에 적응해갈 때쯤 

 

대리운전을 하면 학교를 다니면서 할부금도 내고 자동차를 유지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고회전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당시 핫했던 최신 모터사이클 야마하 R3을 사고 싶었는데요.

아버지가 "죽을 놈 안 키운다" 시며 그거 사면 의절을 각오하라고 하셔서, 쫄아서 아반떼 AD수동을 샀습니다.

2016년 1월부터 현X캐피탈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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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부로 노예계약 해지.

뒤늦게 아반떼 스포츠 나오는 거 보고 현대자동차가 싫어졌습니다.

지금이라도 팔고 할부를 다시 시작할까? 하는 내적갈등이 많이 있었는데 다 물리쳤습니다. ㅋㅋ

사실 못 물리쳤구요 지금은 벨N에 뽐뿌 받고있네요. 지를 능력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반떼가 아니라 제네시스 쿠페 중고를 샀더라면 배울 게 더 많지 않았을까 싶네요.

 

자동차생활로서 대리운전의 한계는, 운전해볼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점도 있지만 만날 차종을 고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번주 폭우 때문에 대리도 못 나가고 시뮬레이터 G27만 잡고 로터스 엑시지, 86, 혼다 S2000, 마쯔다 RX-8, 케이터햄 슈퍼세븐, 래디컬 SR... 대리운전으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차종을 몰아보고 싶은 이상을 그리고 있다보니 좀 답답했나 봅니다.

보드에 86산 후기도 올라오고 벨N산 후기도 올라오는 걸 보며 욕구는 차오르는데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도 저 자신한테 좀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ㅎㅎ 회원님들이 차를 어떻게 좋아해오셨는지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혹은...

자동차생활을 어떻게 만족하며 즐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셔도 감사히 듣겠습니다.

 

KakaoTalk_20180831_130653976.jpg제 차에 들인 유일한 사치입니다. 구형 벨로스터 휠, 되게 잘 어울리지 않나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