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reet Battle란에 쓰는게 맞을까 싶어 좀 고민했는데, 배틀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점 당했으므로) 보드에 적습니다.

* 다른 곳에 적었던 글을 옮겼습니다. 

 

 

 

 

 

저는 차 안에서 음악을 듣길 좋아합니다. 음악 듣기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음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긴 하니까요. 그래서 새로 음반을 구입하게 되면 응당 차를 몰고 나가곤 합니다. 집에서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거리에 살고 있는 제 친구는, 그럴 때마다 제 목적지가 되어주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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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핑계

 

 

저번 달 이맘때쯤, 음반 두장을 산 저는 늘 그렇듯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오밤중의 방문을 준비하라고. 그리고 CD 두 장을 챙겨넣고 시동을 걸었죠. 차는 내부순환로를 지나 서해안고속도로위에 올랐고, 저는 조금씩 비가 와서 젖어가고 있는 노면을 무리하지 않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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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직전, 신정네거리

 

 

 

 

팔곡분기점을 지난 곳. 2차선에서 조용히 달리고 있던 제 옆 1차선으로 엄청나게 빠른 차가 지나갔습니다. 나안시력 1.6을 자랑하는 제 눈으로도 좇기 힘든 굉장한 속도. 까만색, BK, 380, GT윙, 흡배기(이건 소리로) 까지 파악을 한 시점에서 그 차는 킥다운을 한 뒤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습니다. 흔들림 없는 칼끝같은 직진가속. 감히 쫓아가 볼 엄두도 나지 않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제 차에서 느낀 상대속도로 따지면 280km/h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정말 굉장히, 엄청나게 빠른 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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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비슷해서 주워 온 사진. 까만색 BK, 커다란 윙, 배기 튠

 

 

 

 

친구를 만나 차 얘길 꺼냈습니다. 오는 길에 엄청나게 빠른 BK를 한대 봤는데, 올해 본 차중에 가장 빨랐다-고 했더니 차상착의車相着衣를 묻더군요. 본 대로 대답해드렸죠. 흡배기 튠에 커다란 윙이 달린 까만색 BK 3.8. 과급여부까진 모르겠고-까지 얘기했을 때 무릎을 치며 말하더군요. 아는 차고,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있다고. 뭐! ㅋㅋㅋㅋㅋ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500마력을 상회하는 경기차고, 준 프로급 드라이버가 오너이며, 경기가 끝나서 리버리킷을 제거한 뒤 번호판을 달고 공도용으로 사용중인 차'. '당연히 롤케이지와 내장싹털을 포함한 경기용 튠이 되어있고, 드라이버도 괴물인데 왜 덤볐느냐고'. 아니 덤비긴 누가 덤벼. 그냥 내 옆을 말도 안되는 속도로 지나갔고 난 어버버하고 있었다니까? 

 

캔콜라를 홀짝거리다 내던지고는 지하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지하 1층과 지하 2층을 샅샅이 훑었죠. 어딨어 어디? 늘 세우는 자리는 여긴데 이상하게 오늘은 없네? 이 새벽에 없는 거 보니 아까 본게 그차가 맞나보다. 나중에 만나뵙게 되거든 쭈구리 카이맨이 우러러 보고 있다고 말좀 전해 달라고 하고 복귀했죠. 비 오는 고속도로를 거꾸로 거슬러 다시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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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그 곳

 

 

 

 

서서울 요금소를 지나 내부순환로로 향하는 길. 옆에 비상등을 켜고 까만색 승합차 한대가 따라붙더군요. 설마, 카니발로 도발을?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그 카니발은 명백한 풀스로틀로 가속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까만차 풍년이구나- 싶어 앞으로 보내고 뒤쪽에서 속도를 조금씩 올렸는데 정말 끝도 없이 밟으시더군요. 아니 카니발로 저 속도가 가능하단 말야? 하는 시점까지 꾸준히 가속한 그 차는 굉장한 좌우요동Rolling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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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 온 사진. 그랜드카니발

 

 

 

 

 

로워링을 한 것도 아니고, 별도의 바디킷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까만색 그랜드카니발. 하지만 그 차는 위태로운 거동으로 대단한 속도를 내고 있었죠. 저러다 브레이크라도 밟으면 승합차가 잭나이프를 하는 진풍경을 볼 수도 있겠다 싶은 속도로. 지켜보는 제가 더 불안해서 속도를 줄였습니다. 그 차는 최소한 190km/h를 마크한 채로 편도 2차선의 내부순환로로 들어갔구요.

 

며칠 뒤, 저는 카니발을 타는 형을 만났습니다. 이 날의 이야기를 꺼냈죠. 까만색 그랜드 카니발을 만났는데 정말 목숨 내놓고 운전을 하시더라. 특징이 전혀 없는 굉장히 평범한 차였다. 도로방향과 날짜, 시간을 상세히 묻더니 누군지 알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뭐야 이거,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과속실명제라도 시행되고 있었나? ㅋㅋㅋㅋ 나중에 혹시라도 당사자를 만나게 되면 빽미러에 점으로 남았던 그날의 그 흰색 카이맨이 안전운전하시라고했다고 말씀 좀 전해달라고 하고 말았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때로 주변의 차가 보이는 행동에서 운전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깜빡이는 켜지 않았지만 왠지 쭈뼛쭈뼛 거리는 차는 끼어들고 싶어하는 것이고, 어딘지 모르게 산만한 차는 다른 데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이며, 조용히 제 갈길 가고 있는 차가 느닷없이 브레이크를 밟기 몇 초 전에 뒤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피해가기도 하죠. 차디랭귀지Cardylanguage는, 때때로 그 움직임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너무 상쾌하게 달려서 뒤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재밌는 차가 있는가 하면, 자기 차선 잘 지켜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불쾌하고 불안한 느낌의 차도 도로에서 만나곤 합니다.

 

같은 날 절 앞질러간 이 두 대의 차는 그런 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성격이 느껴졌습니다. 차종도 정 반대였지만 운전자의 성향도, 기술도, 감정 상태도 다르게 보였죠.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하룻밤에 겪기엔 특히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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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능합니다

 

 

 

 

 

상호작용interaction은 가면을 씌워도, 보호구를 둘러도, 차 안에 있어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 차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차들을 향해 말을 걸곤 하죠. 끼워주면 고맙다고 육성으로 말하고, 실례를 저지르면 미안하다고 중얼거립니다. 옆에 동승자가 있다면 웃으며 설명하죠. 내 마음은 분명 전해졌을 거라고. 네, 아마 다들 알아들으셨을 겁니다. 이런 경험이 없으시다면, 다른 차들의 언어를 주의깊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쓴다는 의미가 명백히 내포된 이름이 붙은 공공도로公共道路에서, 주변을 달리고 있는 차들은 기분좋은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