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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지인과 차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버님의 인생에 12기통으로 마침표를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너무나 멋진 표현 아닌가요?

차를 좋아하시고 연로하셨지만 오너드라이브를 하시는 아버지께 12기통을 한대 복원해서 선사하겠다는 그런 맘을 아들이 가지고 있다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정말 행복한 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들분은 차에 정통하거나 아주 심취해있는 매니어적인 성향은 결코 아니셨습니다.

그저 지나다니는 좋은 차들을 보면 눈여겨 보는 정도이지 본인 스스로 매니어라는 생각은 커녕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머리속에 12기통에 대한 로망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나중에 차를 한대 구하면 복원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싶다는 말씀에 그런 목적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어드바이스를 드리겠다고 답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배기량이나 실린더 숫자의 의미는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배기량이 얼마냐고 묻지 않고 이차가 몇 기통이냐고 묻는 질문을 여러번 듣다보니 더욱 더 엔진의 사이즈를 가늠하는데 실린더의 숫자는 부각이 됩니다.

 

6리터 엔진의 12기통 사이즈는 12기통 엔진으로는 표준이고 이보다 약간 작거나 아니면 약간 큰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린더당 용적 500cc정도의 6리터 12기통이면 정말 준수한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께서 W140 S600의 존재를 아시는 경우 당시의 차의 위엄이나 포스에 강한 인상을 받으셨을테고, 폭스바겐의 기함인 페이톤 W12 6.0도 12기통이라는 이유 때문에 폭스바겐에 12기통이 있었냐며 차를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12기통의 개체수가 많지 않다보니 12기통만을 이용해서 차를 만들던 벤틀리의 플라잉스퍼와 컨티넨탈 GT도 주력 판매모델을 8기통에 좀 더 포커스를 두는 등 이러한 움직임은 12기통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던 아스톤마틴도 예외는 아닌 그런 상황이지요.

 

이렇게 사람들 머리속에 기함(Flagship)의 이미지는 배기량이 크고 8기통은 좀 흔하고 12기통이 정답이다라고 생각하시는 어쩌면 좀 고전적이면서 막연한 고집같은 것들이 어르신들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20년전 모대학 이사장님이 저희 집에 오셨다가 가실 때 W140 S600을 기사가 차를 대놓고 VIP를 모시고 골목을 빠져나갈 때 들었던 그 엔진음과 배기음은 당시 들었던 그 어떤 소리와도 달랐고, 독특하면서 부드럽고, 고급진 그런 기억입니다.

 

차를 좋아하는데 있어서 차를 반드시 많이 알아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 느낌이 좋다. 그 사운드가 좋다는 바로 그 느낌. 몸이 받아들이고 머리속에 어떤 것이 연상되는지에 대한 그런 부분들은 차를 많이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지요.

 

터보에 풀타임 4륜에 몇마력이고 0->100km/h가속시간이 얼마고, 그런 것들은 기함의 영역에서 그 기함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요소들입니다.

12기통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워낙 귀하고 이런 엔진들이 장거리를 달리고 오랜시간 관리가 가능할 정도가 되려면 이미 만들어진 엔진 자체의 완성도가 엄청난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엔진 내부의 마찰부위가 훨씬 광범위하고 때문에 정밀도를 요하는 수준이 작은 엔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보면 이런 초정밀을 요구하는 엔진이 완벽하게 작동될 때의 매력과 의미는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리가 까다로우니 당연히 잘관리된 엔진들의 가치는 남다른 것이고, 차에 대한 기술적 이해보다 앞서는 오감으로 차를 느끼고 뭔가 이상하다 정도를 느낄 줄 아는 오너의 센스도 엔진 입장에서는 감사한 배려일 것입니다.

 

이런 12기통의 매력이 단순히 가장 커다란 구조를 가진 대배기량이라는 엔진의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어 여기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그 순수한 동경심은 인류가 자동차를 통해 보여주었던 위대한 유산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12기통 엔진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표현 정말 너무나 멋지고 낭만적이며, 그동안 제가 경험한 살아숨쉬는 12기통 맥박이 제 가슴속에서 뛰게 만드는 듯한 그런 느낌입니다.

 

-test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