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재욱입니다.

연초부터 몰아친 미증유의 역병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아직까지도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의 삶에 큰 변화가 있었을 줄로 압니다.

저 또한 이런저런 변화를 겪는 와중에, 카라이프에도 제법 많은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열심히 차를 줄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또 클럽 1만씨씨 회원이 돼 있네요...
전기차가 자기 혼자 차선 잡고 달리는 시대에 왜 이런 취향을 타고 나 사서 고생인가 싶지만,
매년 세금 고지서를 9장씩 받아다 내는 스스로의 성실 납세를 자랑하고자 근황 토크를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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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메인은 208 GT라인(a.k.a. 잔망이)입니다.

바야흐로 탈 디젤 시대라지만, 아무렇게나 밟고 다녀도 23km/L의 연비를 내 주는 디젤 딸딸이 이기에
몇 년째 하고 있는 장거리 통근의 고마운 발이 돼 주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타는데 세차할 때 말고는 사진을 안 찍어서 세차장 사진밖에 없네요...

경제성, 유니크함, 운전 재미를 모두 갖춘 요즘 보기 드문 바게트 젊은이입니다.
단점이라면 일상 주행에는 부족하지 않은 99마력의 최고출력이 고속 추월에는 영 모자라다는 것과,
오렌지색 소형차인 탓에 여성 초보운전자인 줄 아는 성격 고약한 택시들의 길막에 시달린다는 점입니다.

드러워서 큰 차로 기변을 할까 몇 번이나 고민을 했지만,
푸조의 살인적인 감가를 보면 그냥 오래오래 타면서 뽕 뽑아야겠다 싶습니다.
푸조는 중고로 사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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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도 당연히 잘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차들이 바뀌어도 한결같습니다.
잔망이를 들인 이래로 세컨드 자리로 물러난 탓에 3년동안 친구 집에 세워져 있었는데,
연말에 주차공간이 넉넉한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오랜 이산가족 생활을 청산하게 됐습니다.

지난 봄 제주도까지 무사히 잘 다녀와 주고, 주인의 팍팍한 삶을 이해하는지 말썽도 거의 피우지 않습니다.
비록 오늘 아침에 히터밸브호스가 터져 견인차에 실려가긴 했지만요.
그래도 4.4리터의 아름다운 비즈니스 세단을 소유하는 데에 이 정도 유지비면 실로 혜자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전히 잘 달리고, 사자후를 내며, 우아합니다.
앞으로도 쭉 제 라인업의 플래그십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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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라인업에 영입된 9-3은 어느덧 2년차를 맞이했습니다.
올해 가장 손을 많이 본 녀석인데, 의외로 부품수급도 수월하고 부품가도 착해서 컨디션 올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작년에 백연이 솔솔 나와서 불안불안하더니, 결국 장렬히 블로우를 겪었고,
엔진 오버홀 이후에 저압터보에서 에어로 터빈으로 터빈업 및 맵핑까지 마쳤습니다.
하체를 리프레시하면서 로워링을 더해 어딘가 빙구같던 프로포션도 도로용 비행기답게 손봤습니다.
최근에 딜딜하던 브레이크까지 고쳤는데... 어휴 쓰다보니까 뭔 짓을 한 건가 싶네요.

어쨌거나 고속도로의 황제답게 사공이와 함께 달려도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의외의 준마입니다.
내년에는 거의 플라스틱이 다 돼 가는 타이어를 새것으로 갈고 좀 더 달리기 세팅을 다듬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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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가장 최근에 영입한 2001년식 시트로엥 잔티아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베르토네 디자인에 유압식 서스펜션을 단 잔티아와 XM에 로망이 있었는데,
정말 아주 우연한 기회에 너무나도 상태가 좋은 차를 덥썩 가져오게 됐습니다.

아직 데려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엔진오일만 갈고 살살 타고 있습니다만,
부싱이란 부싱은 다 털려나가 덜그럭거리는 상태에서도 방지턱을 평지로 만들어주는 환상적인 승차감이 일품입니다.
감히 비교하자면 내로라하는 요즘 에어 서스펜션 차량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어딘가 트렌드와 타협해 버린 듯한 후기형 디자인은 살짝 아쉽지만,
온 몸으로 아방가르드를 표현하는 프로포션과 로우라이더도 울고 갈 차고조절식 유압 서스펜션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합니다.
이제 갓 복원을 시작한 만큼 내년이 가장 기대되는 유망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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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두 바퀴 친구입니다.
사실 작년에 모터바이크에 입문해 꾸준히 이것저것 타고 있었는데,
"썩차는 충분히 많으니 오토바이는 새 걸 타자!"던 다짐은 개나 줘 버리고 결국 오토바이도 썩바이크로 갑니다.

2006년식 모토구찌 그리소 850입니다. 국내 개체수가 10대 미만이라 긴 잠복 끝에 구했습니다.
차들에 비하면 새것이지만, 언제나 사선(死線)을 달리는 게 두 바퀴인지라, 이쪽에선 충분히 노땅 취급이더군요.

모토구찌의 상징적인 세로배치 V-트윈 엔진은 신선한 고동감과 화끈한 배기음을 선사하고,
그런 모토구찌 중에서도 아주 유니크한 디자인의 소유자라 세워 두고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이탈리아제는 왠지 걸핏하면 고장날 것 같은 이미지지만, 다행히 잔고장도 적은 기종이라고 합니다.

오토바이와 스키는 시즌이 정반대라, 이맘때면 슬슬 주차장 행입니다.
늦가을에 데려와 아직 많이 손을 못 봤는데, 결국 이 친구도 내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가지 싶습니다.
비시즌동안 로또라도 부지런히 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5대를 합치면 총 22기통, 10,850cc의 배기량을 지니게 됐습니다.
여러 선배님들의 화려한 라인업에 비하자면 거의 잡탕밥 수준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한 대 한 대가 뚜렷한 색깔과 장점을 지녀서 매번 갈아 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제 SUV만 한 대 있으면 되겠는ㄷ...

주차도 힘든 곳에 살면서 해괴한 수집욕만 커 져서 지금은 5대가 모두 흩어져 있는 황당한 상황입니다만,
곧 이사만 하면 처음으로 모든 차가 한 자리에 모이는 감격스런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날이 오면 멋드러지게 가족사진 한 장 찍어 줘야겠습니다.

심한 일교차에 한동안 잊고 살던 미세먼지까지 기승인 요즘입니다.
테드 회원 여러분 모두 건강 챙기시며 늦가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재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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