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생각지도 않게 스킵바버의 2-day Advanced Course를 다녀올 기회가 생겨서 플로리다에 위치한 Sebring International Raceway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고맙기도 하고 해서, 기왕 플로리다 구경도 할겸 가족들이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로 총출동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우리 딸, 아들녀석은 디즈니월드에 떨궈놓고 저는 올랜도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시브링으로 향했습니다.

 

레이싱스쿨이 아침 7:45에 시작하기 때문에 저는 오전 5:45 정도에 출발해야 했습니다. 시브링에 거의 도착하니 겨울이라 그런지 7시를 전후해서 동이 트더군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다행히 구름만 끼어있고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라도 플로리다는 아주 남쪽이라 기온이 회씨 40-60도 (한 5도에서 15도 정도 되려나요?)여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브링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 입구의 모습. 사실 이 사진은 이튿날 사진입니다. 첫날 밤 비가 내렸고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서 이틀째 오전 세션은 빗길 주행을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인디카와 나스카가 워낙 유명세를 떨치기 때문에, F1이나 스포츠카 레이싱 (프로토타입 이나 세단류의 경주차량)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 한 듯 싶습니다. 거기에다가 내구레이스는 더더욱 인지도가 별로 없죠.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랜드암 시리즈의 "24 Hours of Daytona" (데이토나 수퍼스피드웨이)와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의 "Petit Le Mans" (10시간 내구 레이스 - 로드 아틀란타) 및 "12 Hours of Sebring" (시브링 레이스웨이) 등은 미국 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내구 레이스입니다.

 

클래스룸 벽에 걸려있는 역대 12 Hours of Sebring 우승차량의 사진입니다. 차량도 차량이지만, Sterling Moss, Phil Hill, Jacky Ickx, Juan Manuel Fangio 등등의 유명 F1 드라이버 및 A.J Foyt 같은 인디카/나스카 명장, Steve Millen 같은 GT카 드라이버 등등이 모두 시브링 챔피언 명단에 올라 있더군요. 참고로 사진에는 안나와있지만 09년에는 아우디 R15 디젤이, 10년에는 푸조 908 디젤이 우승했었죠.

 

시브링 서킷은 약 1/3 정도를 2차대전 당시 사용했던 비행장의 활주로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Turn 16 직전부터 사진의 결승선을 통과하여 Turn 2 직전까지가 콘크리트로 포장된 예전의 활주로이지요. 피트주로의 노면 상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면이 장난이 아닙니다. 콘크리트 노면 부분은 제1회 대회가 개최되었던 1952년 이후 한 번도 재포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론,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는 구간도 그리 노면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ALMS 시브링 내구레이스 중 노면으로부터 오는 충격때문에 스티어링휠을 잡은 엄지손가락이 탈구가 되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시브링의 노면은 악명이 높습니다.

 

포뮬러카 팀들이 먼저 주행에 나섭니다. 저는 이번에 포뮬러카를 탈 뻔 했다가, 마지막에 MX-5 쪽에 자리가 생겨서 원래 바램대로 MX-5 스쿨에 참가했습니다.

 

2 day Advanced Racing School은 처음에 참가했던 입문 3 day 스쿨과는 달리 떼주행을 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도 높지만 그만큼 박진감도 더했습니다. 추월은 16번 코너에서 17번 코너까지의 백 스트레이트, 17번 부터 1번까지 프론트 스트레이트, 그리고 5번 코너부터 7번코너까지의 거니 벤드에서 자유로운 추월이 허용되었고, 그 외 구간에서는 선행 차량으로부터 수신호를 받아야만 추월할 수 있었습니다. 스트레이트 구간에서는 모든 차의 성능이 같기 때문에, 스트레이트로 이어지는 코너에서 충분히 속도 차이를 벌려야만 힘겹게 추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저와 함께했던 14번 차량입니다. 범퍼에도 배틀 데미지가 상당했고, 운전석쪽 펜더 역시 많이 우그러져있었습니다. 지난 번 라구나 세카에서는 차량들의 겉모습이 상당히 양호했었는데, 시브링의 차량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영광의 상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시브링은 블라인드 고속코너가 많고, 런아웃이나 그래블 피트없이 벽으로 둘러쌓인 구간이 많기 때문에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도 17번 코너에서 시속 100마일로 스핀아웃을 해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었고, 이틀에 걸쳐 다른 이들의 MX-5 5대가 파손되는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왼쪽에 머리가 허여신, 아우디 S8 오너 Gary형님.. 따님이 제가 다니는 학교 4학년이랍니다. 이틀동안 많이 친해져서 돌아오는 5월 졸업식 때 만나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습니다. 가운데는 외환딜러이신 Adam 형님. 차종은 911 카레라S. 그 옆 Craig씨는 458 이탈리아를 몰고계십니다.

 

이번에도 참가자분들의 차량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페라리, 포르쉐 뭐 이런 건 이제 지겨워서 사진 찍지도 않습니다만, SL65 블랙 시리즈는 하나 찍어 놓아야 겠기에 찍었습니다. 오너이신 Bob형님 왈, "이거 키트카요. 트렁크 열면 VW엔진 들어있다니깐."

 

콜드 피트에는 이렇게 역대 우승차량들의 명판이 걸려있습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역시 페라리와 포르쉐, 그리고 아우디더군요. 그 와중 일본의 닛산, 토요타도 가끔 보였고, 미국차는 과거에는 많이 보였지만, 96년에 올즈모빌이 있던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포르쉐 포르쉐 포르쉐 포르쉐.. 나중에 2000년대로 들어가면 아우디 아우디 아우디 아우디...

 

둘쨋날 아침에는 전날 비와 더불어 안개가 짙게 끼여있던 관계로 젖은 노면을 주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인스트럭터들에게서 얻은 몇가지 팁은.. 아스팔트보다 콘크리트 노면이 도리어 그립이 좋다. 아스팔트 구간에서는 레이싱 라인이 아주 미끄러우니 절대로 레이싱 라인을 따라가지 마라 등등이었고요. 한 가지 팁이라기 보다 지시 받은 사항은 결승선 주위 노면에 그려 있는 체커 플래그 및 스폰서 페인트에서는 반드시 가스 페달에서 발을 떼라라는 것이었습니다. 페인트칠이 된 노면이 굉장히 미끄럽기 때문에 MX-5의 출력으로도 바로 스핀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아스팔트 노면 역시 패치워크가 많고 sealer 등으로 땜빵 처리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코너 중간에 그립이 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젖은 노면에서는 그러한 그립의 변화가 증폭되는 것을 몸으로 팍팍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오전 중에 노면이 다 말라서 오후에는 신나게 몰아 볼 수 있었지만, 빗길 주행 역시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Craig 형님은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우천시용 레이스수트를 따로 입고 오셨습니다. 왼쪽에서 두번째에 서 있는 머리가 하얀 분은 인스트럭터 중 한 분인 Paul입니다. 이 분은 IMSA (지금은 ALMS로 흡수되었죠) GT 레이서로 큰 성공을 하기도 했고, 자동차관련 라디오 진행자로 플로리다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분이기도 합니다. 아래 있는 주행 영상을 보시면 1분57초 정도에 나오는 스핀아웃하는 차량이 이  Paul이 몰던 MX-5 였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지요 ^^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어드밴스드 스쿨에서는 차량들이 모여 달리기 때문에 더욱 박진감이 넘치고 재미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인스트럭터 약 2명 정도가 트랙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뒤따라 붙거나 앞에서 달리면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더욱 학습효과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라구나 세카와 비교하면 시브링 쪽이 MX-5를 가지고 달리기에는 더욱 재미가 있겠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라구나 세카는 고저차가 심해서 출력이 딸리는 MX-5에게는 약간 답답한 면이 있었는데 반해, 시브링은 고속 직선및 고속 코너가 많아서 모멘텀을 유지하면 시원하게 달리는 것이 가능했었습니다. 그리고 라구나 세카는 트랙의 리듬을 잘 타면서 부드러운 주행이었던 반면, 시브링은 "manhandle"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길게 횡가속에 노출이되었고, 노면의 불규칙한 그립을 극복해 나가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이로써 차에 킬마크 하나가 더 늘었습니다.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브링, 라구나 세카, 그리고 라임록 파크. 한국으로 돌아갈 때 까지 미국 내 유서깊은 레이스트랙 5군데 정도를 마스터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습득하는 것이 작은 목표였는데, 그래도 3군데는 넘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참고로 시브링은 5.9km, 라구나 세카는 3.6km, 라임록 파크는 2.4km 정도되니까 데칼들이 서로 스케일이 맞지는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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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7 정도에 보시면 인스트럭터 paul이 스핀아웃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곳은 15번 코너인데, 턴인 포인트에서 부터 약간의 오르막경사 (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가 있는 곳이라 브레이킹을 끝내고 곧바로 가스페달을 약간 밟아서 후륜에 하중을 실어주지 않으면 바로 오버스티어가 일어나는 악명높은 구간입니다. 저도 아찔한 테일 슬라이드를 자주 경험한 곳입니다.

 

그리고 5:10 정도에 보시면 제가 백스트레이트에서 1대, 17번 코너에서 연속으로 2대의 선행 차량을 추월하고 기분이 업되어 달리다가 6:10 정도에서 장렬하게 스핀아웃하는 것을 보실수 있으실 겁니다. 17번 코너는 턴인을 시작하고 난 후 다운쉬프트를 하는 미국 내에서 딱 세 곳밖에 없는 코너라고 합니다. (그 중 다른 하나가 라임록 파크의 1번 코너 The Big Bend이고, 다른 한 곳은 까먹었네요)  제가 스핀아웃한 곳은 5번코너 "Carousel"이라는 곳입니다. 그 곳은 특히나 땜빵 처리된 곳들이 그립이 불규칙한 곳이 많아서 스핀아웃을 많이 하는 장소 중 한 곳입니다. 이번에도 그 곳에서만 2대가 잔디밭을 넘어 벽을 들이받은 코너이지요. 아마도 저는 3대의 차량을 한꺼번에 추월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능력치 이상으로 차를 몬것이 스핀아웃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1번 코너를 돌아가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는데요.. 오후 마지막 세션 때 1번 코너 에이펙스에서 인스트럭터들이 스피드건으로 차량 속도를 측정해 주었습니다. 영광스럽게 저와 Robert라는 양반이 시속 79마일로 돌아서 가장 빨랐고, 3등은 76 마일을 마크했습니다. 위 동영상 마지막 랩에서 1번코너 에이펙스 속도는 81마일이었는데, 실제로 80마일 전후가 MX-5로서는 한계라고 합니다.

ALMS LMP 프로토타입들은 거의 플랫아웃으로 1번코너를 공략한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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