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재욱입니다.

지난 4월 부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자동차 기자로 복귀하게 됐습니다.
그 사이에 잠시 휴식시간이 생겨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내 차로 제주도 여행"에 나섰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해외 여행이라도 다녀왔겠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 보겠나 싶어... 부랴부랴 준비를 했네요.

내려갈 때는 완도에서 배를 타고, 올라올 때는 목포로 들어왔습니다.
국내선이라 승하선 절차가 딱히 복잡하진 않지만, 여전히 BMW 차량은 리콜 미대상 증명서도 떼야 하고... 귀찮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국산차는 크기로 선적료가 나뉘지만 수입차는 배기량으로 나뉘는지라 4.4L는 최대요율인 것도 아쉽고요 ㅠㅠ

어쨌거나 매번 렌터카만 이용하다가, 아끼는 내 차로 제주도를 누비니 확실히 색다른 시간이었습니다.
사진마다 조금씩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540i_jeju_res-1.jpg

완도에서 새벽 2시 반에 배를 타면 5시 10분쯤 제주항에 내립니다. 타기 전에는 승선권도 끊고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하선 시에는 곧장 항구를 나와 도로로 나섭니다.

첫 날 배에서 내리자마자 찍은 사진인데, 전날 서울에서 완도까지 장대비를 뚫고 내려간 피로+자기도 애매하고 깨있자니 피곤한 애매한 뱃시간의 여파로 완전 녹초가 됐습니다. 결국 이 사진만 찍고 곧장 찜질방에 가서 한숨 자고 나왔더랬죠.
 

540i_jeju_res-3.jpg

첫 날에는 제주도에 사는 지인을 만나 여기저기 숨겨진 임도 탐방을 했습니다. 순정 지상고지만 썩 높지는 않아 가벼운 숲길만 둘러보고 왔는데, 확실히 초록이 우거진 제주의 숲길은 아무 데나 세우고 찍어도 절경이네요.
 

540i_jeju_res-6.jpg

임도길을 오르다보면 갑자기 탁 트인 초원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진에는 잘렸지만, 저 풀밭에서 스냅사진을 찍는다고 고생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저는 벌레를 싫어하기 때문에 풀 근처에도 가지 않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540i_jeju_res-11.jpg

제주도는 산을 오르다보면 주변 식생의 변화가 도드라집니다. 초입에는 활엽수가 많더니, 조금 경사를 오르니까 빽빽한 삼나무숲이 나옵니다. 시원시원하게 뻗은 삼나무들이 마치 유럽 어딘가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킵니다.
 

540i_jeju_res-13.jpg

꼿꼿한 삼나무 느낌을 살려보려고 세로로도 찍어보지만, 비루한 사진실력 탓에 대단한 감성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차가 잘생긴 덕에 조금 낫습니다.
 

540i_jeju_res-16.jpg

제주 쪽에서 하루를 보낸 뒤, 둘째날에는 5.16 도로를 넘어 서귀포로 갑니다. 이 길을 지날 땐 늘 날씨가 좋아서 몰랐는데, 전날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히 끼니 또 느낌이 충만합니다.
제주에 올 때마다 사진 찍는 곳에 세우고 한 장 남깁니다.
 

540i_jeju_res-18.jpg

내려오던 날 비를 맞아 더러워졌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멋진 내 차 사진 많이 남기기"였으므로, 세차용품도 들고 왔습니다.
날이 개자마자 셀프 세차장에서 세차를 하고, 세차장 카드는 기념품으로 챙깁니다. 제가 언제 또 제주도에서 셀프 세차를 해 보겠어요.
 

540i_jeju_res-20.jpg

신창 해안도로를 따라 달립니다. 푸른 바다와 줄지어 서 있는 풍력발전기가 퍽 이국적입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풍차가 열심히 도는데, 태연자약하게 4.4L의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제 차를 보면서 약간은 죄책감도 듭니다.
 

540i_jeju_res-22.jpg

서귀포 어드메에 있던 산길을 지나며. 로컬 지인에게 추천받아 가 본 길인데, 제주도라면 여러 번 와 봤지만 이런 근사한 길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마음만은 이탈리아 남부의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540i_jeju_res-38.jpg

1100도로도 올라가 봅니다. 매번 넘는 산길이지만 내 차로는 처음 가 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정상에는 마땅히 사진 찍을 스팟이 없습니다. 결국 기름도 넣을 겸 다시 하산하는 도중에 거린사슴 전망대에서 한 장 찍어봅니다. 펜스 앞에 나무가 좀만 적어도 훨씬 멋진 풍경이 될 것 같아 아쉽습니다.
 

540i_jeju_res-39.jpg

산방산 앞에서. 사실 찍으려고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하필 문을 닫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려고 보니 주차선도 그려지지 않은 넓은 주차장에 배경으로 산방산이 기가 막히게 걸리는 겁니다. 그래서 식당 주차장에서 한 장 찍어봤습니다.


540i_jeju_res-40.jpg

이번 여행은 제주도에서 보낸 시간이 총 5박6일, 내려가는 날은 무박으로 배를 탔으니 7일 간의 여행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됩니다.

몇 년 전 렌터카를 타고 지나가다 봐 뒀던 스팟인데, 아직도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다시 한 장 찍어봅니다. 바다 넘어 보이는 나즈막한 섬은 가파도입니다.


540i_jeju_res-42.jpg

같은 스팟에서 카메라 위치를 옮기면 또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제주도는 어디든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림이 됩니다.
 

540i_jeju_res-47.jpg

마지막 일몰을 바라보며. 낮이고 밤이고 벌레가 너무 많아 차 앞은 버그킬로 가득했는데, 포토샵으로 열심히 지웠습니다.
 

540i_jeju_res-50.jpg

마지막 사진. 일몰을 찍으려고 기웃거리다 우연히 들어간 골목길입니다. 석양을 쪼이면서 산방산과 한라산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는,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멋진 스팟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540i와 함께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습니다.
서울 번호판이 달린 EF를 타고 왔어도 좋았겠지만, 기어비 작업 후 100km/h에서 5단 3,000rpm을 돌리는 녀석을 타고 배를 타러 왕복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네요. 208은 현지에서 렌터카로도 많이 굴러다니고 있으니, 사진빨 가장 잘 받는 녀석을 데려왔습니다.
그나마 요새 유가도 싸고 여행물가도 괜찮은 편이라 해볼만 한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 총 경비는 왕복 선적료+승선료가 대략 35만 원 정도 들었고, 전남 왕복+현지까지 총 200L정도 연료를 소모했습니다. 뭐... 제주도 왕복 항공권이 5만원에 뜰 때도 있고, 하루 1~2만 원짜리 렌터카도 있는 시대에 무슨 낭비냐 싶지만, 그래도 내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여행이지 싶습니다.
바이크로는 많이들 가시는 것 같지만, 자동차로도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신다면 강추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한일관계도 좀 풀리면 일본 투어도 가 보고 싶습니다. 유럽에 갈 때마다 차 타고 수천km씩 여행하는 그들이 부러웠는데, 이렇게라도 비일상적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무더위에 이어 장마가 쏟아집니다.
테드 회원님들 모두 건강하고 무탈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