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한 위치의 직장으로 옮기게 된 바람에 나이 마흔을 넘어 뒤늦게 면허를 따면서부터였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도 생초보인 아내가 여기저기 접촉사고를 낼 것이라고 생각해서, 큰 차나, 새 차는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참 쪼들리고 있는 형편에 비싼 차는 어차피 언감생심이었기도 하고요. 그래도 정떨어질 만큼 까다로운 제 천성이 어디 갈까요,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민해서 차종과 연식을 결정했습니다. 작으면서도 실속있는 차, 흔하지 않고 개성이 있는 차, 적은 예산 범위 안에 들어오지만 초라하지 않은 차....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내, 불혹을 넘긴 아내가 탈 차인데 (아직 허세를 다 떨어내지 못한 탓이겠지만) 경차를 사주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차- 2002년식 칼로스 세단입니다.

 

디자인으로 보면 5도어 해치백인 칼로스V가 정답이었지만, 초보인 아내가 사고라도 당하면 하다못해 트렁크라도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걱정에 조금 못생긴 세단형으로 골랐습니다. 연식은 오래되었지만 그대신 옵션은 거의 다 갖춘 고급형으로 했고, 색깔은 세차를 자주 할 리 없고, 접촉사고를 무수히 내리라 예상되는(^^) 아내를 위해 평범한 연금색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내가 접촉사고를 잘 내지 않더군요 (흠....) 차를 몰고 출퇴근하기 시작한지 훌쩍 6개월이 지나도록 딱 한번 주차하다 뒷문과 뒷휀더를 긁은 게 전부입니다. 오히려, 아내가 일하는 건물의 주차관리인이 반대쪽 뒷문과 휀더를 깊이 긁어주셨고요 -_-

 

저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운전맛(?)을 알게 된 아내가 차량의 좋고 나쁜 점을 느끼기 시작했고, 거리의 다른 차들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욕심 없는 착한 아내는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싶어하거나 지금 차에 불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자격지심인지 오히려 제가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 지인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깨끗하지 않은 건 아무리 작은 부분도 참지 못하고, 완벽하지 않으면 일초도 마음 편히 갖지 못하는 제가 아내의 차 상태를 용납하기 힘들게 된 건 오히려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야겠지요. 훨씬 좋은 차를 제 출퇴근용으로 쓰고 있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내가 탈 차 역시 내 기준에 맞는 상태로 완벽하고 예쁘게 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생겼다고 할까요. 새 차나, 더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차로 바꿔줄 형편은 안되고, 그렇다고 일이년 안에 경제적 상황이 개선될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결론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내 다른 물건에 대해 언제나 그렇게 해왔듯이 이 칼로스도 새롭고 완벽하게 만들어놓자!    ...... 칼로스 변신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2주일여가 지난 오늘, 마무리가 다 되지는 않았지만 '뉴'칼롱이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단한 차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그리고 최대한의 애정과 정성으로 그 적은 예산을 커버하자' 는 가이드라인을 지킨 그 결과로 태어난 이 녀석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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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히 전체도색을 결정하며, 당연히 제일 오래 한 고민은 색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물망에 오른 후보는, 기아 쏘울의 바닐라 쉐이크, 인피니티 FX시리즈의 플래티넘 그라파이트, 구형 BMW Z3의 스카이 블루 등이었습니다. 최종 결정한 색상은 보다시피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에 적용된 '아이슬란드 블루' 컬러입니다. 일단, 칼로스의 출고시 순정색 중 없는 색으로 하고 싶었고, 세차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되는 색이라야 했고, 칼로스 세단의 사이드 라인이 별로 예쁘지 않은 만큼 바디색상이라도 예쁘고 고운 색으로 하자 라고 생각했고, 획일적인 색 위주의 차량들이 만들어내는 우리나라의 뻔한 도로풍경과 차별화되게 유럽이나 일본의 소형차들처럼 파스텔톤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런 의도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 색상의 특징은 빛의 세기와 광선의 방향,종류에 따라 변화하는 폭이 굉장히 넓다는 것입니다. 해질녘에 찍은 위 사진에서는 꽤 진하고 그린 컬러가 많이 올라온 블루로 보이지만, 지하주차장의 인공조명 아래에서는 진한 청자색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낮의 직사광에서는 아주 밝은 하늘색이 됩니다. 이 색상의 단점은.... 그런 밝은 광선 하에서는 어쩐지 택시의 값싼 색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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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색을 하며 외관을 개선하는데 필요하다고 판단한 외장 파츠들은 과감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결과를 상상해가며 엄선해 교체하였습니다. (멀쩡한 부품들을.....흑..... 저는 환경의 적입니다 -_- ) 헤드램프는 2006년식부터 적용된 블랙베젤 램프로, 범퍼는 하단 립이 강조된 수출형 3도어 칼로스의 것으로, 그릴은 북미 판매형인 시보레 아베오(AVEO)의 순정품을 주문했습니다. 양쪽 안개등 사이는 무광 검정으로 부분 도색해서 조금 더 스포티하게 보이는 것을 의도하였고, 범퍼 하단의 견인고리 커버를 같은 무광 검정으로 하여 포인트가 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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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변신 프로젝트의 가이드라인에 '최소한의 비용'이 들어있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휠의 선택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외관 디자인을 생각한다면 16인치 정도가 적절해 보였지만, 그럴 경우 노면을 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것이므로 초보운전인 아내의 실력을 함께 고려하며 15인치에서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원래 저는 실버 컬러의 휠을 선호하지만 자칫 택시처럼 보일 수 있는 바디컬러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휠 컬러를 (의도적으로) 과장되다 싶을 만큼 드레스업 느낌을 강조하는 검정색으로 하고 림에 레드라인이 들어간 디자인을 골랐습니다. 가격이 저렴한 제품인 것은 물론입니다. 슈가레이 브랜드의 쿠즈 R40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사이드 시그널 램프는 뉴칼로스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클리어 타입을 구입해두었으나, 아무리 힘을 써서 밀어도 저 주황색 구형 램프가 빠지지 않는 통에(-_-;;) 교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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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밋밋하고 껑충한 사이드/리어 라인입니다. 역시 범퍼 하단에 무광 포인트 도색을 고려하였으나, 범퍼 디자인상 아무리 고심해도 색상 경계를 만들 적당한 라인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오히려 극단적으로 심플하게 남겨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보레 레터링도 생략하고 AVEO 레터링만 붙여주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아베오 레터링이 좌측으로 가야 하지만, 설명한 것처럼 심플하게 보이기 위한 발악적(^^)인 고육지책입니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뒷유리 왼쪽면엔 아주 큰 글자가 프린트 된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정.말.초.보 - 죄송해요 흑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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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드레스업은 칼롱이 변신 프로젝트의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입양한 후 양평동 GM대우 정비사업소에서 엔진을 전체 오버홀하였고, 타이밍 벨트, 써모스탯, 워터펌프, 연료펌프 등 주행거리를 감안한 주요부품들의 예방적 교환, 모든 오일류 교환, 활대와 부싱을 포함한 하체 대부분의 교환, 배터리와 제너레이터 교환, 에바 청소 및 실내 클리닝, 오디오 헤드유닛과 스피커 애프터마켓 브랜드 제품으로 교환 등을 돈 생길 때마다 차례로 진행해 왔습니다. 이미 투입된 비용이 이 차의 구입비용에 육박할 지경이 되었으니 바보짓도 이런 바보짓이 없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_-

 

마음 먹은 것 중 아직 하지 못하고 남은 작업은 낡은 대시보드 표면을 해결하는 것과 여자 운전자에게 꼭 필요한데 빠져있는 옵션들을 DIY로 해결할 부분들- 예컨대 윈도의 오토 업다운이라든가 히팅시트같은 것들입니다. 예산이 바닥났기 때문에 일단 돈을 만들어야 하고, 손재주꽝인 저를 구원해줄 고수님, 혹은 천사의 도움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보니 2개월쯤 지나 광택작업도 해주어야 하는데, 그 돈부터 만들어야 하겠네요.... (먼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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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을 진행하느라 제 마지막 필름 카메라였던 EOS 1VHS와 필름스캐너를 처분했습니다. 이십오년 넘는 사진경력을 가진 사람이 필름 스캐너를 팔아치운다는 것은 아마도 가볍지 않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아내는 극구 반대했지만  제가 무식하게 박박 우기고 우겨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좀전에 사진을 찍으러 아파트 앞 진입로에 차를 세워둔 채 바라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기와 스캐너가, 아니 지금까지 들인 고생과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네요.

 

이게 과연,

내가 차를 좋아해서인지, 아내를 좋아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부터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말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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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 DAEWOO 칼로스(수출형: AVEO) 4도어 LK고급형 2002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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