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변속기 vs 수동변속기 주제로 댓글은 이따금 썼지만, 글로 올리는 건 처음이네요.
그냥 주절주절입니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요즘은 제 차를 제외한 다른 차를 운전할 일이 있으면 거의 자동변속기(이하 오토) 입니다.
업무용인 M400 스파크는 직결감이 기가 막히게 좋은 CVT이고,
어제도 운전했던 스포티지(4세대/QL)는 힘이 펄펄 넘치는 2.0 R 디젤엔진에 6단 오토였습니다.
이젠 낡은 1톤 트럭 정도나 수동일 뿐입니다.

성능과 내구성 면에서, 수동이 더 좋다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수동변속기는 다루는게 서툴면 클러치 디스크와 커버는 물론 플라이휠까지 해먹기 일쑤고,
노면 여건이 좋지 않은 곳에서 요철을 지날 때 클러치를 밟고 지나가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
유체컨버터가 달린 오토와는 달리 수동은 부싱과 마운트 이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요소가 없어,
바퀴와 직결된 엔진에 조금이라도 더 회전충격의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는 걸로 압니다.
변속시 클러치 연결이 부드럽지 못하여 변속충격을 주는 경우도 마찬가지겠고요.
여러 모로 번거롭기만 할 뿐, 장점이 그다지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서킷에서 내달릴게 아닌 한, 토크컨버터식 오토미션도 미션오일쿨러 넣고 오일 자주 갈며 탔더니
고장 없이 정말 잘 달리더라는 얘기는 정설이 되어버린지도 오래된 것 같아요.
실제로 언덕배기 올라가보면 오토 차량들 아주 빠르게 잘 달리더군요.

이런 현실에서, 세컨이나 취미용도 아닌 오래 탈 데일리 메인카로 3년 전후 연식의 차량을 구입하면서
굳이 수동변속기를 선택한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극히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인 것으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좀 별종처럼 비추어지는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대중의 선택은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체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없고,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그보다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다수에게 선택을
받는 것이겠지요.

테드에는 수많은 고수 및 현업 종사 회원 분들께서 계시기에 정말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미천한 운전 실력에 수동변속기 매니아임을 자처하지 않아도, 한때 오토미션으로의 전향을 주변에서
환영해 하는 것 같으면서도 내심 불안해했을 정도로 제겐 이제 골수 수동 이미지가 있나 봅니다.

하지만 남이 수동 산다고 하면 말립니다. -_-ㅋ 편한 오토 냅두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고.

저는 2003년에 2종 보통으로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1종이 아닌 2종을 굳이 선택한 건, 집의 차가 오토였기에 운전학원에 다닐 때만이라도 가솔린 승용
수동 차를 운전해보고 싶다는 단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운전병으로 입대하여, 당시만 해도 빼도박도 못하고 무조건 수동변속기만 운전해야 했습니다.
당시 오토보다 잘 나가는 건 인정하겠는데, 너무 어려워서 정말 고생했던 기억입니다.
뭔가 몸을 써서 움직이는 일은 나중에는 곧잘 적응하지만, 처음에는 적응이 굉장히 더딘 편입니다.
적응되기 시작할 때쯤 전역하여 또 주구장창 오토만 운전하는 동안 수동은 또 무뎌졌습니다.

그러다가 7년 전쯤 시골에 취업을 하여 자차가 필요해지면서 굉장히 오랜만에 수동 차를 접했습니다.
처음엔 재밌었는데, 금방 불편해지더군요. 울컥거림 없이 운전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부산 운전할 때면 오토 생각이 간절해지더군요.
그런데, 그 뒤로 계속 중고차를 전전하는 동안은 수동만 선택했습니다.
연식 오랜 차량을 사려니 아무래도 오토는 연비 면에서 불리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다 첫 신차는 경차 CVT를 선택했는데, 뽑기 실패인지 벨트 슬립 등 트러블을 계속 겪었고,
이후 두 대 건너 NF 2.0 오토를 사서는 그걸 계속 탈 줄 알았습니다. 정말 편안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적으로 아주 설득력 있는 패밀리카이면서도 거추장스런 레브매칭 없이 편하게 내달릴 수 있다는,
생활 속에서 차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악한 출퇴근 연비를 제외하면 너무나도 만족했었습니다.
안락함과 무난함, 운전 재미까지 소유해본 모든 차들 중 그 만족도가 압도적으로 최고였습니다.
다만, 세타1 MPI 엔진도 스커핑 이슈는 피해가지 못해서 블루핸즈에서 오버홀 진단을 받았었지요.
오토미션 오버홀에 부식된 하체 교체까지 하고 오래 타야지 생각하던 어느 날 사고로 폐차했습니다. ㅠ.ㅠ

지금의 차로서 세 번째로 수동으로 되돌아오니, 이제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합니다.

요즘 오토 차들은 TCU에 아주 독심술을 심어놔서 기똥차게 말 잘 듣고 기름도 적게 먹는데 도대체 왜???
전자식 스로틀이 보편화 되면서 수동이 딱히 재밌지도, 감각적이지도 않고 더 이질적인데 도대체 왜???
나중에 결혼이라도 하게 되어 또 다시 오토로 바꿔야 하면 보통 낭비가 아닌데 도대체 왜???
경기용으로 쓸 차도 아닌 데일리용 메인카인데 도대체 왜???
NF 오토는 답답한데도 잘 타놓고 도대체 왜???

자동차란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고, 감가상각도 있어 쉽게 바꾸어선 안 될 물건인데 하도 고민이 되니
답답한 마음에 마스터님께 우문(愚問)을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들어, 가족이나 지인들의 오토 차량을 자주 운전할 기회가 생기면서야 이런 고민도 사그라들었습니다.

예전 4단 시절의 오토는 반응이나 가속 모두 수동보다 답답하고 연료 게이지가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악셀을 어지간히 밟아도 킥다운 없이 쭉 늘어지며 어느 시점에서 슬립감 없이 느긋이 가속이 가능했던 반면,
최근 다단화된 오토는 악셀을 조금만 더 밟으면 킥다운 되잖아요.
운전자의 의도에 더욱 기민하게 반응하게 된 거고, 어떻게 보더라도 수동보다 훨씬 나을 수 있는 장점인데.
그냥 쭉 밟고 있으면 될 것을...
킥다운 될 때 기어가 빠지는 느낌이 들어 악셀을 뗐다가 다시 밟으니 기어가 안 들어가고 연신 붕붕거립니다.
(밟음 : 가속 의도로 받아들이고 쉬프트 다운 → 뗌 : 쉬프트 업 → 다시 밟음 : 또 쉬프트다운 → 기어 안 걸림)
그러다 악셀을 서서히 떼면 쉬프트업 되면서 일순간 차가 앞으로 울컥 합니다.
하다하다 수동모드로 놓으니 밟아도 기어가 안 바뀌길래 그렇게 그럭저럭 갑니다.
악셀을 가볍게 밟을 때의 슬립되는 느낌이 신경쓰이니, 최대한 빨리 고단 기어로 넣고 악셀을 꾹 밟습니다.
오토미션의 구조는 잘 모르지만, 왠지 토크컨버터에 유압이 꽉 차서 슬립되는 느낌이 적어진 것만 같습니다.
뭔가 힘이 꽉 찬 느낌, 좋습니다.
... 연비가 안 나옵니다. 옆자리에서 차주가 그냥 D에 놓고 가라, 정신 사납게 무슨 짓이냐고 버럭 합니다.
물면허로도 누구나 다 운전하는 차로 생쇼를 합니다.

결국, 물건을 다룰 때 원치 않는 동작이 일어나는 걸 유독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잘 하든 못 하든 운전 조작을 하고 차의 반응을 느끼는 과정에서 뭔가가 개입하는 것이 도움받는게 아니라
간섭받는 것 같아 거슬리니 굳이 내 손발 바빠도 직접 입맛대로 건드려야 직성이 풀리는 거였습니다.
지금의 차도 수동이지만 전자식 스로틀이라 살짝 애매하여 페달과 1:1 동작하도록 알아보고 있으니...
파워스티어링도 스포츠 모드로 놓아 최대한 모터 느낌이 안 들게 쓰고 있고,
평소에 개입할 일 없는 VDC 정도나 켜진 상태로 두고 있을 뿐입니다.
NF가 편했던 건, 그냥 현행 기어를 물고 버티는 미련함조차 간섭 없이 묵묵하다고 느껴서였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요즘의 똑똑해진 오토미션 만세이고 무척 부럽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저 수동을 타야만 할 것 같습니다. ^^;
나중에 수동 승용차가 없어지면 포터 더블캡이나 다마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_-;;)

사실, 저도 수동은 번거롭습니다.
수동 자체에 매력을 느끼거나 그런 건 처음에 호기심을 느낄 때나 그렇지, 지금은 안 그럽니다.
고로, 수동을 고수한다고 해서 수동 매니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왼쪽 무릎도 안 아프다고 했었지만 솔직히 가끔 시큰거리기는 했었습니다. 괜찮다고 뻥친거죠.
하지만 P-R-N-D를 오가며 기어가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기계장치를 휘리릭 넣었다 뺐다 하는게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후련한게 무릎 아픈 것보다 더 컸습니다. 마음이 편하더군요.
막히는 출퇴근길을 하도 수동만 몰아선지 요즘 수동이 클러치가 편해선지는 몰라도, 이젠 무릎도 괜찮고.

무릎 아프던 시절엔 요령이 생기니 출발할 때를 제외하면 무릎을 안 쓸 때도 있었습니다.
쉬프트업은 클러치 없이 기어봉을 슬쩍 밀어넣으면 착하게도 알아서 스르륵 들어가고,
다운쉬프트는 악셀 한 번 툭 쳐주고 기어봉을 슬쩍 밀고 있으면 어느 시점에서 스르륵 들어가니.
중립은 항속이 되도록 악셀을 살짝 밟은 채로 기어봉을 당기면 쑥 빠지고요.
요즘 차는 rpm이 잘 안 떨어지니 미션 망가뜨릴까봐 안 쓰고 있습니다만...

성능, 연비...? 수동이 딱히 나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일상운행에서는 2.0 GDi 수동 기준으로 가속력은 솔직히 오토가 더 낫다고 느낍니다.
레브매칭이고 뭐고 필요없이 걍 때려밟으면 쭉쭉 나가니, 반응속도 면에서 수동이 낫다고 하기도 애매합니다.
특정 단수 고정 상태에서의 비교라면 확실히 수동이 야무지게 꽉 물고 빠릿하게 반응합니다만...
연비는 출퇴근이든 고속도로든 1.6 GDi 오토랑 비슷하거나 살짝 더 먹네요.

운전 재미...? 옛날 케이블식 스로틀은 발로 엔진을 쪼물딱거리는 듯한 감각이 있어서 재미있었는데,
그마저도 요즘은 전자식 스로틀로 바뀌면서 수동미션 달린 오토차 느낌이라 해야 할지, 재미는 없네요.
무엇보다도 악셀을 놔도 rpm이 안 떨어집니다. 엔진을 옛날 차만치 마음대로는 컨트롤 할 수가 없어요.
요즘 차는 그냥 오토에 최적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막 밟으면 오토든 수동이든 모르겠고 일단 파워 있는 차가 더 재밌더군요.
진정으로 운전 재미를 찾는다면, 출력을 떠나 악셀 반응이 빠릿빠릿해서 엔진을 마음대로 요리하기 좋은
차를 골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로, 제 경우 뭐 하나라도 시시콜콜 간섭하는게 없는 것이 편해서 수동을 타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편안함 자체에 만족할 수 있거나, 이를 위해 내내 조금의 답답함은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평범한게 좋다면 오토...
답답한 건 죽어도 싫다, 번거로워도 차라리 내가 직접 하는게 속편하다, 오토가 울화통 터질 때 비로소 수동...
뭐 그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