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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재욱입니다.

올드카의 매력에 빠져 최근 몇 년간 여러 대의 차를 타 봤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영원한 로망, W140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이 차를 데려오면서 평생의 굵직한 드림카 중 한 대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1995년식 W140 S600입니다. 전기형의 파이널 버전입니다. 아무래도 후기형에 비하면 손이 많이 가지만, 비교적 양호한 내·외관과 북미형의 노란색 리플렉터, 무엇보다 녹색 번호판에 홀려 덜컥 가져와버렸습니다.

가져오자마자 W140 전문가이신 마스터님께 인스펙션을 의뢰했고, 그 뒤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작업들을 조금씩 하면서 우선 불안감을 덜고 타고 다닐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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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140은 세기말 메르세데스-벤츠 오버 엔지니어링의 정점이라는 매력도 있지만, 디자인 그 자체의 완성도도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굉장히 뚱뚱하고 권위적인 모습이지만, 쭉 뻗은 후드와 한껏 뒤로 밀려난 캐빈룸, 길쭉한 트렁크의 비례감은 상당히 우아합니다.

소위 '각벤츠'라고 불리는, 기교 없는 디자인이 심심해 보이다가도 군더더기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면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존재감은, 과연 'S-클래스의 왕'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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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 세단인 S-클래스, 그것도 최상급 모델인 6.0L V12 엔진의 S600인 만큼, 유지비 측면에서는 지금껏 경험했던 차들보다는 확실히 부담이 큽니다. 4.4L V8 엔진의 540i와 비교해도, 단순 기통 수로만 계산해도 1.5배나 많기 때문에 차의 기에 눌린달까요. 애프터 파츠가 굉장히 보편화되고 저렴한 BMW에 비하자면 운신의 폭도 적어서, 확실히 만만하게 볼 차는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1995년 당시 대치동 아파트 석 채 값이 넘었던 차를 소유하고 운용하면서 느끼는 가치에 비한다면 굉장히 저렴한 비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몇 달간 크고 작은 기본 정비를 마치고 아직도 손볼 부분이 있지만, 소위 말하는 '정비빨'을 잘 받아 투자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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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돼서 망가진 촉매를 교체하면서, "러시아 마피아처럼 배기음을 잔뜩 질러보자!"는 생각에 중통과 엔드머플러까지 배기 튜닝을 했습니다. 엄청난 배기량의 V12 엔진답게, 배기음 역시 엄청나게 만들어졌습니다 ㅎㅎ

등장 매니폴드까지 달아 F1 소리를 내는, 정신나간 일본 튜너들에 비하면 얌전한(?) 소리지만, 지극히 점잖고 보수적인 외관과 화끈한 배기음의 괴리감이 주는 즐거움은 대단합니다. 대형 세단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걸 좋아하는, 저 같은 변태들에게 딱 맞는 세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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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필러에 붙어 있는 V12 뱃지는 S600만의 자존심입니다. 도어에 바짝 붙어있는 뱃지의 위치가 생뚱맞으면서도, 굉장히 유니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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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내에서도 자연흡기 V12 엔진이 탑재된 차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에, W140 S600의 가치는 더 높게 느껴집니다. 자동차와 얽힌 여러 숫자들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데, 600도 분명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숫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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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운전을 시작한지 10년이 됐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EF S를 시작으로 여러 대의 차를 경험하면서 서로 다른 차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기회를 준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지난 10년 간차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력을 쌓고,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막 시작하는 S600과의 카라이프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을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맞이한 2020년입니다.

더불어 S600의 롱텀 리뷰를 탑기어 코리아 매거진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올드카의 험난한(?) 여정을 재미있게 풀어보고자 노력 중입니다. 온라인 판에서도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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