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을 맞이하고 3주간 정말 꿈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제대로 관리 받지 못했고 몇가지 거슬리는 문제점들을 발견! 하지만 당장 타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추후 몰아서 손보려 했죠. 그런데 닦어내도 여기저기서 곧 다시 비추기 시작하는 오일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누유가 아닌데다 워낙에 오일이 많이 들어있는 차라 ‘이정도는 으레 감수하고 타는게 993이지 않나..’ 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를 했습니다. 더구나 누유를 완벽히 잡으려면 천상 엔진을 내려야 하니 임시 조치를 해 놓구 추후  싹 잡아내는게 비용면에서 절약도 되고 해서 참고 또 참었습니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논리로 저 스스를 억제하고 있었는데… 모든게 무용지물 이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993의 구입 자체가 어차피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보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일이니 차가운 머리로 판단하지 말고 뜨거운 가슴으로 판단하기로 결정...


그 놈의 뜨거운 가슴으로 판단 하는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더군요…

바로 다음날 차는 입고 되고… 전 후련했습니다~ 식욕도 살아나고 소화도 잘되고…




리어액슬이 떨어지고...




엔진이 내려오고...




미션도 내려오고...




미션도 열고...

 

 

그러나 차를 올리고 993을 이루는 구성품들이 하나씩 내려오고… 일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소한 문제점들이 계속 발견되고 주행에 별 영향이 없는 아주 사소한 문제들도 눈으로 보니 왜 그리 거슬리는지 이걸 하려면 또 저걸 해야 하고 도대체가 작업의 범위를 일정선에서 제한 해야하는 통제력을 거의 상실…

문제가 있는 부위가 발견 될 때마다 조건 반사적으로 부품을 구하기 위해 독일과 미국에 수십 번 전화를 하고… 메일을 날리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지인들을 연일 성가시게 하고… 용답동 센터 부품담당자와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되었고… 일과 중에 틈만 나면 지하 작업장으로 달려가 전등을 들고 993 밑으로 기어 들어가 있고… 다리가 저리고…

이렇게 약 2달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오고 그 동안 벌어진 일들을 차분히 정리 해보니..

 

밸브커버커버 가스켓&체인커버 가스켓 교체 – 젤먼저 눈에 확 띄인 누유 부분이라 별수 없었음. 대부분의 993들의 고질적 문제인 이것을 잡기 위해 시작된 작업이었는데…

 

결국은…

엔진마운트 & 미션마운트교체 – 엔진 내린김에… 경화가 시작된 듯 하다!

몇몇 씰& 오링들 교체 – 엔진 내리고 나니 몇 군데서 추가로 누유발견…

디퍼렌셜 리데나 교체 - 미션 내리는 과정에서 누유발견…

하체부싱류 전체교체 – 몇몇 터진 부싱들만 교체하기 머해서… 그리고 패키지로 사니 싸다.

리어멀티링크 암류 전체 & 프론트 로워암 교체 – 터지거나 구리스가 세고 부싱만 따로 안 팔어서…

유량센서 & 가스켓교체 – 유량체크가 되다 안 되다 해서 센서를 자세히 들여다 보다가 누유까지 발견…

앞유리교체 – 살짝 금도 가있고 결정적으로 그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돌을 맞았길래 해가 위에 있으면 앞이 잘 안 보일정도라…

헤드라이트 커버 & 안개등,시그널 교체 –역시 오랜 세월동안의 돌자국…

2단싱크로 & 슬리브 세트, 록킹볼 교체 – 주행 중 악셀오프시 2단에서 기어가 그냥 빠지는 증상이 있어서…

클러치 & 압력판 교체 – 교체의 필요성은 못 느꼈지만… 우연히 창고에 굴러다니는 신품 발견!^^

993RS 프론트&사이드 에어로파츠 장착 – 멌있어서… 이미 예전에 언젠가 993을 사면 달려고 사놓았기 떄문… 왜 그리도 일찍 샀을까? 보관도 힘들었음… (RS리어스포일러는 더 보관 하기로결정! 급격히 떨어지는 993의 뒸라인을 질리도록 감상 후 장착 예정…^^)

퀵쉬프트 장착 – 이것도 아주 예전에 사재기… 오래전 시승에서 5단 넣기에 내 팔이 약간 짧음을 느꼈음…

스트럿바 장착 – 이것도 아주 예전엔 일본 출장 갔다가…

페달장착 – 이건 스트럿바랑 같이 구입…

케이블&플러그 교체 – 머 오래 됐고 엔진 내린김에… (수명이 남었어도 엔진 내린김에 바꾸는게 덜 눈치 보인다..ㅜㅜ)

카페트교체 – 다 헤졌으니깐… 빵구도 났다!

그 외에 와이퍼교체(유리가 안 닦이니깐…), 에어컨 필터2개교체(냄새가 나니깐…), 오일필터2개 교체교체(오일 갈었으니당근…)

 

그리고 이쯤에서 거의 이성을 상실 기어이…

전체도색 – 도저히 광택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상태였음. 검은색도 좋지만 약간 펄을 추가하고 싶어서…^^

휠교체 – 순정 17인치도 이쁘다… 하지만 18인치는 되어야 자세가 나온다…

매니폴드&중통&엔드머플러 교체 – 순정 사운드도 좋지만 기왕이면 박력있는 공랭사운드를 강조… 그리고 솔직히 요새 차들에 비하면 안 나간다.

흡기필터교체 – 배기 했으니깐…

Dme 칩튜닝 – 흡, 배기를 했으니깐…

 

찜찜한 부분이 좀 있지만 다행히 이쯤에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머 이미 한참 오버를 해서 돈도 다 떨어졌고…

6번 실린더 밸브 가이드 고무가 나간 듯한 증상이 보여 헤드를 열어 이 참에 헤드 쪽 이라도 오버홀을 할까 했는데 머 당분간 타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판단 되고…

암튼 극적인 타이밍에 잔고가 바닥난 게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엔진을 내려 둔 채로 다시 추가로 부품들을 오더 해야 했고 그러면 헤드 연김에 피스톤, 실린더 외 부수적인 부품들도 구해 아예 엔진전체 오버홀을 감행했을 거고… 미션도 오버홀 하고 아마 작업시간이 한달은 더 지연 됐을 텐데…무엇보다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만난지 3주만에 차를 떠 놓고 2달이 지나니 빨리 993을 타고 나가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 이었습니다.

그렇게 훗날을 기약하며 작업을 마무리 짖고 2달만에 다시 시동을 거는 순간 미완의 작업이라는 찜찜한 기분은 싸~악 사라졌습니다. ‘시동이 안 걸리지 않을까?, 체크등이 뜨면 어쩌지?’ 하며 조심스레 키를 돌렸을 때 993이 새 배기관으 로 더욱 우렁차게 거친 숨을 토해내는 순간… 그 순간 제 온몸의 세포로 느낀 희열을 말이나 글로는 설명이 불가능 합니다.^^

 

 

짜잔~~~




테스트주행을 해보니 엔진은 더욱 부드럽고 힘차게 돌아 주고 헐거웠던 하체의 느낌 또한 짱짱해 해 졌고 핸들링도 한층 날이 서있고… 아무튼 만족 만족 대만족입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차를 몰고 여기저기 돌아 댕기며 993과 데이트를 해서 기분이 좋아지고 좀 차분해 지고 나서 2달간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니 뭘 그리 조급해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제가 바보 스러웠습니다. 앞으로 이 차와 짧지않은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 왜 그리도 한번에 모든걸 끝내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엔진을 또 내리면 어때서 난리법석을 떨고…  이렇게 2달간 경험으로 993의 컨디션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 뿐만 아니라 차를 대하는 저의 됨됨이도 많이 성숙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변에서 원래부터 올드카 매니아 였나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올드카 매니아도 아니고 차량복원을 즐기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최신형 모델들이 등장할 때 마다 언제나 설레고 궁금해 못 참겠고 타보고 싶고 타보면 갖고 싶고… 하며 살고 있는 아주 보편적인 자동차 매니아일 겁니다.
근데 왜 993을 입양해 골치 아픈  씨름을 하느냐고도 묻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이 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10대~20대 초반에 저는 90년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 같은 방대한 정보의 매체가 없었고 자동차 전문지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습니다. 달랑 2~3개 있는 조악한 월간지를 통하거나 그래도 모자라면 외국서적을 찾아 보거나…

 

그랬었죠! 지금에 비해 같은 정보를 취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고 그 노력의 과정도 지금과 비교하면 더 낭만적이고 감성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클릭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최신모델들의 정보나 동영상까지 내 방에서 쉽게 얻지만 저는 예전에 993이라는 차를 알기 위해 비오는 날 명동 중국 대사관 근처의 외국잡지 서점을 뒤지고 다니고.. 영어잡지를 읽기 위해 사전을 펴 놓고 어렵게 독해해 가며 정보를 얻고… 잘못 해석해 몇 년 동안 틀린 정보를 가슴에 품고 살고… 심지어는 그림이라도 보려고 일본, 독일 잡지도 사가며…

그 때 제가 어렵게 취한 정보들 속에는 993을 비롯 959, e39 M5, Elise, NSX, F40, F50, Mclaren F1같은 차들이 당시의 최신모델들이었죠! 그 때 내가 좋아하는 차들은 정보를 취하고 매료되어 가는 과정이 정말 치열했고 매니악 하다 보니 그 빡셈 만큼 제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제가 빠져있던 차들은 아직도 저를 설레게 하고 제겐 언제나 최신모델들 입니다. 아무래도 아직 순수했던 시절에 순정을 바쳐가며 탐닉했던 차들 이여서 그런지 지금 화려한 쇼룸에 번쩍 거리며 전시되어 있는 최신모델도 그 차들만큼 절 설레게 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절벽 위의 장미같던 993이 이제 우리집 차고에서 언제나 저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제게 993은 영원히 절 설레게 하는 최신모델 입니다.